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부사장인 심수옥 글로벌마케팅실 실장은 업계에서 소문난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으로 꼽힌다. 1987년 미국 왕 컴퓨터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그녀는 2년 뒤 생활용품 회사인 P&G 한국지사로 이직했다. 이후 17년 동안 P&G에서 근무하면서 입사 8년 만에 마케팅 총책임자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위스퍼, 팬틴, 비달 사순 등은 모두 그녀의 히트작이다.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한 만큼 영어에도 능통하지만,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는 한없이 연습에 몰두한다. 어느 정도 원고내용이 입에 붙으면, 회사 내 외국인 임직원들을 불러다 객석에 앉혀놓고 직접 무대에 서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다. 그런 다음 임직원들이 보기에 잘된 점, 잘못된 점, 고쳐야 할 점 등 피드백을 수용하며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을 다듬는다. ‘무대에 서기 1분 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그녀의 프레젠테이션 원칙이다.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인 심 부사장은 실상은 리허설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리허설rehearsal은 ‘반복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rehercier’가 13세기 초중반 영어로 건너와 rehersen이라는 동사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단어다. 원래 공연분야에서 널리 쓰이던 용어였지만 하도 자주 사용되다 보니 이제는 일상어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등 많은 걸작을 남긴 천재 조각가 로댕. 그는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적게는 수십 점, 많게는 백 점도 넘는 습작習作을 만들었고, 그 결과 사람들이 ‘저건 손수 조각한 게 아니라 인체를 직접 석고로 본을 떠 제작한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할 정도로 완벽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로댕의 작품 전시회에는 그의 습작들도 함께 전시될 정도다.
리허설은 때로는 생사를 좌우할 만큼 힘이 세다. 1979년의 어느 날, 북한에서 간첩이 임진강을 타고 내려왔다. 마침 절벽 위에서 보초를 서던 우리 군 초병이 이를 발견하고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수류탄은 터지지 않았다. 안전클립은 제거했지만 안전핀은 그대로 둔 채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전쟁터에서 갑작스레 적과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미처 안전장치도 풀지 않고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는 군인도 있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가 엄습하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습, 즉 리허설이 필요한 것이다. 수백 명의 희생된 세월호 참사만 해도 ‘평소 해경에서 구조훈련을 충분히 했거나, 선박회사가 침몰을 가정한 탈출 리허설만 해 두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느 새 한 학기를 마무리지어야 하는 6월이다. 6월은 대학생들에게 리허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다. 기말고사를 대체하는 조별 프레젠테이션, 각종 발표대회, 아이디어 공모전 등이 집중되니 말이다. 많은 청중들 앞에 서서 물 흐르듯 막힘없이 발표를 진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본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프레젠테이션도 막상 실전에 가면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이 터지기 마련이다. 청중 앞에 서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원고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가 하면, 강의실 컴퓨터에 파워포인트가 깔려 있지 않거나 버전이 낮아 파일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는 사례도 많다. 인터넷에 자료를 올려놓고 ‘쉬는시간에 다운받으면 되겠지’ 하고 맘 놓고 있다가 당일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는 어느 여학생의 경험도 캠퍼스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리허설은 그런 문제점을 사전에 점검하고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정부기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의 홍보와 마케팅을 진행한 차유빈 컨설턴트는 자신의 강연을 듣는 대학생들에게 항상 ‘어익후의 원칙’을 지키라고 권한다. 어익후란 ‘어색함을 익숙함으로 만든 후’의 약자로, 실전에 서기 전 적어도 한 번은 반드시 무대에 서서 리허설을 해 보라는 것. 비록 한 번이지만 그 차이는 꽤 크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맥락효과 등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도 이를 입증해준다. 이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 어익후의 원칙을 적용해 보자.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막상 해 보면 어렵지 않고 재미와 자신감이 붙는다. ‘연습은 실전처럼’이라는 치열한 각오로 리허설에 임하다 보면, 실전무대가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글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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