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위해 봉사했던 김익수

은둔형 외톨이로 풀이되는 ‘히키코모리’는 일본에서 시작하여 최근 한국의 젊은층에 급격히 퍼지고 있는 사회적 병폐 현상 중의 하나다. 일본에서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 봉사했던 김익수 씨는 마음이 고립되고 말문마저 막히는 것이 히키코모리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 영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삼성전자판매주식회사의 디지털프라자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6년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 영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삼성전자판매주식회사의 디지털프라자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6년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2006년 12월, 따뜻한 오사카의 겨울 날씨였지만 유난히 실내가 쌀쌀했던 일본식 가정집 안에서 한국에서 온 해외봉사자 김익수 씨가 다급하게 한 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마사노리! 마사노리! 너 오늘도 밖에 안 나갔어?”
“….”
“왜 대답을 안 해? 아무데도 안 나가고 혼자 있으면 안 돼!”
몇 차례 물었을 때에야 마사노리는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형은 더 이상 나 안 찾아와도 돼. 나는 친구 없이도 살 수 있어.”
“마사노리,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 이렇게 살면 얼마나 슬프고 두려운지.”
마사노리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했다. 그는 마사노리를 마인드캠프에 데려가겠다고 마사노리의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또 다시 찾아온 그의 손에는 여러 가지 과자가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마사노리를 위해 봉사기간 중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돈을 전부 털어서 산 선물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마사노리의 방문과 마음을 두드렸고 결국 마사노리는 집밖을 나섰다. 그가 초대한 캠프장으로 향했고 일주일 간의 캠프 동안 또래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항상 어두웠던 마사노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똑같이 살았다
“일본에는 방이나 특정 장소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사는,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혐오와 자아상실감이 커서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힘들게 한다고 합니다. 마사노리는 눈이 조금 큰 귀여운 중학생 남자 학생이에요. 제가 마사노리를 만났을 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마치 어렸을 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굉장히 안타까웠죠.”
김익수 씨는 자신도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원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터라 새로운 인간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해 자신과 성격이 맞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 반면에 그가 좋아하는 것은 역사 과목이었고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건과 문화를 이룬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아 국사시간에 선생님이 말하는 농담 한 마디까지 귀담아 들으며 공부했다고 한다. 역사학자를 꿈꾸던 그는 대학입시 앞에서 꿈을 포기해야 했고 부모님의 뜻과 수능성적에 맞춰 영남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스무 살 청춘의 그는 원하지 않던 경영학과 공부에 아무런 목표와 성취의지를 가질 수 없었고 그저 친구들끼리 밤늦게 술 먹고 돌아다니면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술에 취해 비틀대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방황하는 자신의 심정과 똑같이 느껴지면서 앞으로 군 입대와 대학 졸업, 취업 등을 위한 미래가 매우 두려워졌다. 한없이 경쟁해야 하는 한국사회에서 자신만이 낙오자가 된 것 같았고 이런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이것이 내 꿈이다
그러던 와중에 동아리뿐만 아니라 봉사에도 전혀 관심 없던 그가 해외봉사를 다녀왔던 선배들이 만든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들과 함께 점심 먹고 스터디 하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던 것이다.
“항상 몇 안 되는 친구들 아니면 혼자서 밥을 먹다가 여럿이서 밥을 먹는 분위기가 무척 어색하더라고요. 그런데 해외에서 봉사했던 선배들은 역시 달랐어요. 각자 봉사경험을 발휘해서 후배들을 잘 살펴줬거든요. 직접 밥을 싸오시기도 하고 고민상담도 소신껏 해주시면서 분위기가 무척 따뜻했어요. 그 분위기에서 저도 자연스럽게 제 고민을 꺼내놓았고 선배들의 위로를 받았죠. 신기한 것은 조금씩 말했을 뿐인데 고민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었어요.”
여름방학이 되고 7월에는 선배들의 소개로 한국 월드캠프에 참석했다. 전 세계 대학생들과 국내 대학생, 캠프 자원 봉사자 그리고 해외봉사 경험자들과 함께 한 달 동안 한국의 아름다운 명소를 관광하면서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졌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면서도 친구들과 즐겁게 대화하며 지내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분명한 변화가 자신 속에서 일어난 것을 발견했다. 가슴 깊은 곳부터 벅차오르는 이런 행복한 느낌을 자신과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선배들처럼 해외봉사자가 되어 마음이 슬픈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일본의 외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한 그는 이듬해인 2006년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부유한 나라로 보이지만 실제 일본 사람들의 마음은 부유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고 살아요. ‘혼네 다테마에’라는 일본말이 있는데
‘혼네’는 일본인의 본심, ‘다테마에’는 겉치레를 말해요. 사람들이 겉으로 봤을 때는 정말 친절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훌륭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내도 속마음을 잘 이야기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약해져 정신적으로 병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일본인들에게 마음을 교류하면서 얻는 행복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1년 동안 일본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면서 느낀 사실은 ‘일본 사람들은 참 외롭다’였다. 편의점은 생선초밥 하나도 사먹을 수 있도록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많았으며 식당에 가도 개인이 먹을 수 있도록 접시 하나 위에 반찬이 단 두세 개 놓여있을 뿐이었다. 어려서부터 남에게 피해주지 않도록 교육을 받았던 일본 사람들은 단정하고 깔끔한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힘들고 외로울 때 자신의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그저 꾹 참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가슴이 아팠고 그들의 아픔들을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도록 하기 위해 전에는 해보지도 않았던 춤과 연극, 노래 등 다양한 공연을 열면서 그들을 감동시키고 웃기면서 직접 가까이 다가가서 대화했다. 히키코모리처럼 마음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고 집안에 박혀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고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먼저 다가가서 말 걸고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립은 혼자 풀 수 없다
“마사노리는 1년 동안 봉사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였어요. 제 예전 모습과 무척 닮아 있는 그 학생과 만나려고  자전거를 타고 하루 40분씩 걸려 찾아갔죠. 아무 반응 없던 마사노리가 서툰 일본말로 하는 제 말을 점점 알아듣더니 자기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단지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방학 때는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숨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두려움을 없애주고 싶었고 또래 친구들이 참가하는 캠프에 데려갔어요.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사귀고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 마사노리가 아주 밝아지더라고요. 나중에는 저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자기도 대학생이 되면 저처럼 해외봉사자가 되어 터키로 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 마사노리의 변화가 무척 신기하더라고요.”
한국에서 선배들의 따뜻한 상담이 고립된 그의 마음을 열었던 것처럼, 마음의 고립은 혼자 해결할 수가 없고 누군가 다가와 같이 교류해야 된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알에서 새가 부화하기 위해서는 어미 새가 따뜻하게 품어주는 온기가 필요하듯 고립된 일본인들에게 진심으로 대했을 때에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는 것도 조금씩 배워갔다.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싶다
봉사하는 동안 실수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일도 많았지만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새로운 행복발견이었고 1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복학했다. 혼자 다니는 것이 익숙했던 그가 이제는 보다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싶어서 스스로 일본어 스터디를 만들어 회원들을 모집했고 자신이 봉사했던 일본에 대해 소개했다. 또한 해외봉사 동아리의 회장이 되어 선배들이 그랬듯이 그도 후배들에게 진솔한 상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학과 공부와 병행하기에도 벅찼지만 그는 또 다른 목표를 품고 학군단에 지원했다.
“20대 나이에 백 명 이상의 병사들을 통솔하며 리더십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이때 아니면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3학년부터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학군단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이젠 더 이상 제 자신의 한계 속에서 비관하며 살기 싫었죠. 그렇게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도전해보고 역량을 키우고 싶었어요.”
그의 대학생활 3년은 도전과 갈등, 고민의 연속이었지만 그것은 그가 한계를 뛰어넘고 즐겁게 살아가는 삶의 방증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의 스토리는 취업 면접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학군장교로 근무하고 전역한 후 20군데 이상의 회사에 취업지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낙방하고 말았다. 그리고 유일하게 최종관문에 오른 삼성전자판매주식회사의 면접에서 그는 무척 당황했지만 일본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과 자기 삶의 변화를 당당히 말했다. 단연 모든 심사위원들의 관심은 그에게 향했고 그의 경험이 고객우대를 중요시하는 회사의 이념과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 2012년 7월 상반기 공채에 합격했다.

능동적으로 일하는 이유
현재 그는 삼성디지털프라자 경주노서점에서 3년차 주임으로 근무한다. 실적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 회사 안에서 동료들 간에 경쟁이 치열할 수 있겠지만 그는 동료의 휴무일에는 부수적인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성실한 사원이다. 매장에서 상품 판매는 고객들이 회사를 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며 매장 전체의 신뢰도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객도 판매사원이 어떤 의도로 자신에게 물건을 추천하는지 느끼기 때문에 단순히 물건을 팔기보다 고객이 필요한 부분을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물건을 판다. 덕분에 일은 늘어났지만 상사들은 그런 그를 더 믿고 중요한 일을 맡겨 줄 때가 있어 더 능동적으로 일한다고.

 
 
그리고 그의 목표는 인사과에서 사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정신없는 매장 업무에서 고객이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고 고객의 마음을 사는 매장업무처럼 회사 사원들이 업무증진을 위해서 필요한 업무환경과 지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일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수익을 얻어서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하는 일에 후원하고 싶다고 소신껏 말하는 그에게서 따뜻한 감성이 느껴졌다. 세상을 향해 그리고 사람 사귀는 것을 두려워하던 그가 해외봉사를 통해 교감과 도전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그를 만나는 고객들은 그에게서 가전뿐만 아니라 5월의 햇살 같이 밝은 그의 마음도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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