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in AUSTAILA(3), 호주에서 발견한 아버지 마음

나는 친가와 외가의 첫 번째 손주로 태어나서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네 분 모두에게 큰 기쁨이 되는 손녀였다. 돌잔치도 63빌딩에서 하고 성장하는 내내 백화점 옷만 입고 자라면서 나는 누가 봐도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춘기가 시작 될 즈음에 아버지가 외도 소식을 들었다. 우리 가족이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아버지의 행동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아버지가 점점 미워졌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나는 학교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고 계속 불만과 반항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 인생을 비관하며 살기 시작했다. ‘왜 우리 가족은 행복하지 못하지?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야 할까?’ 하면서 고민할 때에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부산에 있는 기숙사형 대안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집에서 공주처럼 자라온 내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또래 친구들과 같이 살면서 친해지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다행히 학교 주요프로그램인 마인드강연 시간을 통해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배우게 됐고 가끔 친구들과 다툼이 있고 섭섭한 일도 많았지만 서서히 친구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니게 됐고 이제까지 내가 미워하고 마음을 닫아왔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됐다. 내가 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고 아버지의 마음도 듣고 싶었다. “아버지, 그때 왜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저도 이렇게 슬프게 만들었나요?” 하고 궁금증이 커질 무렵,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이제야 조금 마음을 여는 방법을 배웠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함께 대화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한 없이 울었다. 이젠 아버지의 마음을 들어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펐고 진작 아버지한테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못한 내 자신도 용납할 수 없었다.

좋은 추억이 많은 호주
당시 나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하고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가기 위해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으로 크게 절망에 빠진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당연히 도전하고 무엇이든 경험해야 된다’며 나에게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차마 해외봉사단을 취소하지 못했고 아버지와 가족여행을 다녀왔던 호주로 해외봉사지를 변경 신청했다. 이미 삼촌께서 유학하셨던 곳이고 가족여행도 했던 곳이라 나에게 낯선 곳이 아니었고 좋은 추억이 많은 나라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봉사하며 삶의 진면목을 맛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작년 2월에 호주로 떠났다.
 

 
 
해외봉사자로서 부끄러웠다
나는 호주의 멜버른Melbourne이라는 도시로 갔다. 멜버른은 호주에서 조금 추운지역이기 때문에 햇빛이 없는 날이면 회색도시가 되고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했다. 시드니가 미국을 연상케 하는 도시라면 멜버른은 유럽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의 주 활동은 한글학교 운영과 대학교에서 마인드교육과 선진국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담하는 일이었다. 첫 번 째는 대학교에서 마인드교육 홍보였는데 난생처음 홍보활동을 해보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건전댄스 공연도 하면서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봉사센터 지부장님의 지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마인드교육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내가 생가하고 느끼는 것이 꼭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집에서 워낙 편하게 살아왔던 탓에 봉사하러 왔지만 내가 하기 싫고 관심 없는 일에는 가능하면 빠지려고 하는 내 모습을 봤다. 이전까지는 내가 해외봉사자로서 물불가리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내 모습에 실망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부장님께서 그런 이기적인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에야 올바른 봉사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솔직히 내가 봉사자로서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지부장님이 많이 실망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지부장님은 오히려 나를 이해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국에서 편하게 대학생활 하다가 온 네가 어떻게 처음부터 잘할 수 있겠니. 그런데 내가 너보다 더 이기적인 마음이 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몇 년 동안 봉사센터 지부장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을 때문이야. 나는 내 스스로 작은 도움만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분들은 정말 감사해하고 크게 받으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더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게 되더라고”
지부장님의 말에 감명을 받아서 더욱 내 고민을 쏟아냈고 아버지에 대한 나의 슬픈 마음도 꺼내 놨다. 지부장님이 해주시는 상담을 통해서 나는 잘 몰랐지만 아버지가 딸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고 나와 어떻게든 다시 친하게 지내려고 다가오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또한 호주 사람들과 상담하면서  마약을 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들으면서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섬세하며 작은 말, 작은 행동 하나로 쉽게 다치거나 반대로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과 마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아버지와 나누었던 짧은 대화와 시간들 속에서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깊이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상처 입을 딸을 위해 끝까지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사시길 원하셨던 것이다.

 
 
진심을 헤아리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상황과 사람의 진심을 짐작하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호주에서 1년 동안 봉사하면서 진정한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한 후 그동안 절망하고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죄책감에서 벗어났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나를 지켜보신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했다. 나는 지금 무척 기쁜 마음으로 이 사실을 5살 어린 여동생에게도 조금씩 말해주면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들이 닥칠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보이는 사실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와 마음들을 헤아려서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김혜연_굿뉴스코 호주 12기, 부산외국어대학교 영어학부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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