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홈 스토리

전화, 핸드폰, 이메일, 문자메세지 등 통신수단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의 소통의 부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요즘이다. 대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고 있지만 마음은 어디에 있고 어디로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이 시대 우리가 겪고 있는 가족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을지 젊은 세대들의 사례를 통해 그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가족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던 서종옥 씨가 오스트리아에서 소통이 되지 않는자신을 본 후, 가족 모두의 마음을 헤아리며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서종옥_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굿뉴스코 9기로 오스트리아를 다녀왔다. 대구과학대학교 아동청소년지도과를 졸업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그녀는 무대연출이나 공연 만드는 일을 배우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혼자 일을 결정하고 해결하는 습관을 버리고 상사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일하길 바란다.
▲ 서종옥_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굿뉴스코 9기로 오스트리아를 다녀왔다. 대구과학대학교 아동청소년지도과를 졸업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그녀는 무대연출이나 공연 만드는 일을 배우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혼자 일을 결정하고 해결하는 습관을 버리고 상사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일하길 바란다.
어린 시절부터 서종옥 씨는 가족을 오해하여 소통하지 않고 살았다. 아버지는 딸을 사랑했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을 때면 답답한 마음에 화를 내곤 했다. 그러나 무슨 말만 하면 혼난다고 생각한 그녀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비물 살 돈이 필요하다’와 같은 꼭 필요한 이야기는 미루고 미루다 출근하시기 직전에 겨우 말씀 드렸다.

대화 하지 않는 가족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3살 어린 여동생에게도 마음을 굳게 닫았다. 그녀의 눈에는 무서운 아버지, 동생만 예뻐하고 챙겨주는 어머니, 자신을 이기려고만 드는 동생이었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가족 누구와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버지와 어머니도 경제적인 문제로 마음이 맞지 않으셨다.
그녀에게 이런 가족 분위기는 힘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적응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어색했고, 삭막한 분위기의 집보다는 밖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 수업이 마치면 놀이터에 가서 놀다가 저녁 즈음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갔고, 중고등학생 때는 하교 길에 곧장 친구 집이나 카페로 가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모든 결정은 혼자서
유치원생 때부터 옷 입기도, 숙제하기도 그녀는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하는 것이 습관 되어있었다. 더 커서는 진로도 가족과 상의 없이 그녀가 결정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요리가 좋아서 요리를 전공하길 원했다. 가정 선생님께서 ‘요리를 전공하기 위해서는 요리 학원을 다니며 필기시험 공부를 해두라’고 하셨고, 그녀는 독학으로 필기시험 공부를 했다. 그러나 학원을 다니며 실기 공부를 해야 했고, 그제야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요리를 전공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요리 학원에 다녀야 하고, 학원비가 필요해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학원을 다녔지만, 결국 시험에서 떨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 수시모집 시기 때, 학과 홍보를 위해 교실을 찾아온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아동청소년지도과에 대해 소개했다. ‘바로 저거야!’라고 생각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대학 원서를 냈다. 그리고 진행된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저 대구과학대학교 아동청소년지도과에 지원서 냈어요.”
“그래. 네가 결정했으니까, 네 인생 네가 살아!”
스스로 학교를 다니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에게 서운함을 느낀 그녀는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해서 대학을 다니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정작 속상하신 건 부모님이셨다. 미래와 연결된 중요한 사항을 두고 부모님과 한 마디도 상의하지 않은 딸을 향해 얼마나 서운함이 컸을까.
  

 
 
오스트리아, 부모님의 사랑을 알려준 곳
대학생이 되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도 잘 놀며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던 서종옥 씨는 어느 날 1년간 해외봉사를 갔다 온 언니를 만났다. 마음의 고향인 그곳에서 행복했다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자신은 어떤지 생각해보았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도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싶었고, 그 언니가 느낀 정말 행복한 인생을 맛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갔다. 알프스 산에서 나무도 심고, 소리 내지 않고 음식을 먹는 유럽의 문화도 배우는 등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새롭게 알아갔다. 특히, 매번 식사 준비를 할 때면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부탁한 것과 다르게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같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제게 소금을 가져와 달라고 하면 저는 기름을 가져다 주었고, 채소를 깍뚝썰기 하라고 하면 저는 편썰기를 했어요. 같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많이 답답해했죠.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며 제가 보기 좋을 대로 생각해버려서 다른 사람의 말은 들리지 않았던 거예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신을 보며, ‘너랑 이야기 하면 답답하다’고 했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무리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도, 철없는 딸은 마음을 닫고 아무 것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표현하는 법이 강하실 뿐인데,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해서 이야기해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고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음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녀는 아버지를 향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느꼈다.
‘아버지는 나를 혼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잘 되길, 멋진 사람으로 크길 바라셨구나.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고, 마음을 닫아버린 나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어머니가 동생만 좋아해주고 챙겨준다고 생각한 것도 오해라는 것을 알았다.
“저는 오스트리아 단원이지만, 유럽 단원들은 주변나라에 가서도 활동을 많이 해요. 유럽은 차로도 쉽게 주변나라로 이동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전화로 어머니에게 교통비 500불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것을 아니까 어머니가 싫어하시지 않을까 염려되었죠. 그런데 어머니가 좋은 경험 많이 쌓고 오라며 어려운 가운데 흔쾌히 돈을 보내주신다고 했죠. 어머니가 얼마나 저를 믿고 사랑하는 지 느낄 수 있었어요.”
그녀는 오스트리아 현지인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독일어가 서툰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며 온 마음으로 언어를 가르쳐 주고,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해맑게 바라보며, 헤어질 때는 엉엉 울며 슬퍼해 준 이들. 
‘1년간 함께한 분들도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시는데,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은 나를 몇 배나 더 사랑하실까?’
오스트리아에서 그녀는 자신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을 더욱더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의 마음도 모른 채 말도 하지 않고 살아온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도.

따뜻한 가족 속에 피어오른 웃음꽃
1년의 해외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서종옥 씨는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표현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동안 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나 몰랐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런 제가 답답하셨죠? 마음 아프시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현재 서종옥 씨는 예전과 달리, 더 넓게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아볼 줄 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말이다. 아버지에게는 ‘일이 힘들지 않으세요?’ ‘몸은 건강하시죠?’ 등 안부를 많이 여쭤본다. ‘그래’ ‘요즘 날씨가 쌀쌀하네’ 하며 길지 않은 대답을 하신다. 전에는 아버지가 짧고 강하게 대답하시면 속상해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어찌됐든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드리는 편이다. 여자는 말을 많이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머니에게는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가족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음꽃을 피운다. 물론 식사 준비나 잔심부름 등을 하며 어머니의 일손도 덜어드린다. 동생에게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고 오해하고 미워한 것이 미안해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려고 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라도 보태준다고.^^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도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시고, 집안 돌아가는 이야기,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 이야기 하신다. 몇 년 사이에 가정에 따스한 기운이 가득해졌음을 느끼며 그녀는 신기하고도 행복하다.  

 
 
계속되는 ‘마음 조율하기’ 연습
대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한 지 2년 만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무직은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 두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버지는 그녀가 정말 일을 그만 둘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왜 같이 상의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셨다.
“난 네가 우선은 회사를 다니면서 학자금 대출을 계속 갚길 바랬어. 몇 년 있으면 결혼도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어디 여건 좋고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하는 게 쉬운 일이냐?”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눈앞에 상황만 보고 일을 그만 두었는데, 아버지가 자신보다 더 깊이 미래를 계획하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아버지와 진작 상의했으면 꾹 참고 이 일을 계속 했을 텐데’ 하며 결국 후회했다고.
“어렸을 때부터 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어 또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죠. 직장을 그만 둔 사건을 통해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 결국 후회하고야 만다는 큰 교훈을 얻었어요.”
자식에게 무슨 고민이 있고, 무엇이 힘든지 항상 궁금해 하며, 자식의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함께 상의 하고 싶어 하시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다. 자신이 힘든 것만 생각했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생각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돌아보며 부모님의 마음과 조율해가고 있다. 

서종옥 씨의 바람은 가족이 앞으로도 많이 웃고 밝게 지내는 것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녀가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면 표정도 밝아지시고 좋아하신다며 활짝 웃는다. 그래서 그녀는 앞으로 가족과 계속해서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 슬픈 이야기든지 좋은 이야기든지 한 마디라도 더!

글과 사진 | 배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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