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일한 씨의 ‘성장스토리’

테러의 참극 현장에서 타인의 생명을 위해 죽어간 이들이 있다. 2001년, 미국 9.11테러로 자살 테러범들에게 공중 납치됐던 여객기 UA93편의 실화가 바로 그것. 당시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폭격하려던 예정이었지만,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이 긴박했던 상황이 ‘2014년 굿뉴스코 페스티벌’에서 뮤지컬로 재현돼 관객들을 전율케 한다.  4월호 본지의 표지모델은 극중 테러리스트 역으로 열연했던 정일한 씨. 굿뉴스코 12기 미국 단원으로서 온 객석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트린 사연을 고백했다.

▲ 뮤지컬 의 마지막 장면. 왼쪽에서 첫 번째가 정일한.
▲ 뮤지컬 의 마지막 장면. 왼쪽에서 첫 번째가 정일한.

“6살 때 뉴질랜드로 이민해서 중학교 1학년이 되어 돌아왔어요. 처음엔 한국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제 의도와는 달리, 웃어른들로부터 ‘버릇없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거든요. 오랫동안 상처받은 마음으로 방황했지요. 해외봉사를 가기 직전까지 ‘내가 만일 미국에서 살았다면 행복할 텐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요.”
일한 씨는 조기 유학생 출신이다. 자유로운 뉴질랜드 분위기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지금도 서양식 사고가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온다. 자유로운 문화 속으로 떠나고 싶은 열망이 커서 지난해 굿뉴스코 지원국을 미국으로 신청했다. 죽이 잘 맞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 편한 것처럼, 자신의 성향과 잘 맞아 보이는 미국에서라면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다양한 지역으로 봉사를 다니며 맨해튼Manhattan, 라스베이거스Las Vegas, 그랜드캐니언The Grand Canyon 등 화려한 경관을 많이 봤어요. 하지만 좋은 것을 접해서 얻는 즐거움은 순간적일 뿐, 제 마음의 행복을 유지시키진 못하더라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사람 사는 곳은 똑같구나!’ 느꼈지요.”  
미국에서도 동료 단원들에게 한국에서 듣던 충고를 똑같이 들었다. 해외봉사를 오기 전,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한국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겪는 거야!’라며 자신을 합리화했던 생각이 틀렸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점점 객관적으로 자신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또 ‘무엇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이티 영어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였어요. 눈 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동료 단원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일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제야 해외봉사를 오기 전, ‘굿뉴스코 워크숍’에서 들었던 마인드 강연의 내용이 생각났지 뭐예요. ‘내면의 선글라스’에 대한 일화예요. 선글라스를 착용하면 세상이 온통 어둡게 보이듯, 제가 부정적인 심리를 가지고 주변을 향해 마음을 닫고 지냈던 걸 알았어요.”     
‘나는 바뀌지 않을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조차 굳게 닫았던 마음을 열었다. 현실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내면에서부터 변화된 사고가 습관으로 나타나서 완전히 달라진 일상을 만들었다. ‘내가 이곳에 올 운명이었다면, 1년을 보내야 한다면, 분명히 배울 것이 많을 거야’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누리자!’라며 무엇이든지 배우려는 태도로 접했다.
자신의 상처로 끙끙거릴 동안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던 것을 인정했다. 점점 전에는 모르고 살았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깊게 헤아릴 수 있었다. 동료 단원들도 곧 그의 바뀐 모습에 놀라워하며 부러워했다. 응원과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3,000여 명의 시민을 무료로 초청해야 했던 크리스마스 칸타타 북미 투어 시즌, 그는 이타심에서 생성된 사고의 폭을 더욱 넓혔다. ‘홍보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석해서 나이와 계층에 따라 전략을 달리 고안했다. 효율성과 정성이 조화된 덕분에 하루에도 몇 백여 명의 시민들의 마음을 얻는 성과를 거뒀다.

▲ 그랜드 캐년 관광 중 동료 단원과 함께.
▲ 그랜드 캐년 관광 중 동료 단원과 함께.

“사랑은 희생을 전제하며 생성되는 가치 같아요. 저 자신의 틀을 깨며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매일 밤샘 공연 준비와 궂은일을 했어요. 우리의 활동으로 위로를 얻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 가장 기뻤습니다.  ‘아, 이 맛이었구나!’ 했지요. 뮤지컬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UA93편의 승객들은 추락할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테러범들과 싸우며 국회의사당에 있는 사람들을 살렸잖아요. 1년간 젊음을 팔며 저희도 근심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만나서 소망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 일컬을 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 사회. 얼핏 보기엔 서로 다른 차이를 쉽게 인정하는 성향으로 ‘오픈 마인드’가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한 씨는 이러한 미국 사람들의 삶 속에 여느 나라보다도 강한 틀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 자본주의 경쟁구도로 인해 사람들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상처받아 웅크리고 있는 것을 느끼며 성숙한 마음으로 다가가 위로했다.  
 
 

“이젠 예전처럼 추억에 갇혀 살지 않아요. 어제는 분명한 과거이고, 오늘은 내가 지금껏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날’이잖아요. 미래는 정해지지 않은 거고요. 주어진 시간을 순간순간 누리지 못한다면, 행복은 저 너머 무지개같이 될 테니까요.”
마음속에 생긴 보석은 퇴색되지 않는다. 해외봉사를 통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알게 된 일한 씨는 귀국 후 ‘일당백一當百’ 노릇을 톡톡히 하며 학업과 굿뉴스코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 이규열 (Light House Pictures 실장)   진행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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