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홈 스토리

전화, 핸드폰,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 통신수단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는 소통의 부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요즘이다. 대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고 있지만 마음은 어디에 있고 어디로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이 시대 우리가 겪고 있는 가족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을지 젊은 세대들의 사례를 통해 그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부모님의 재혼으로 새 가족이 생긴 대학생 황준필 씨가 가족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갔는지를 소개한다.
 

황준필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굿뉴스코 8기로 잠비아를 다녀왔다. 현재 서원대학교 체육교육과 4학년 재학 중이다. 체육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운동과 지식도 가르치지만, 인생을 어떻게 재미있게 사는지 알려주고자 한다.


 
 
황준필은 어머니가 셋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첫번 째 어머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아버지와 사업을 했던 두 번째 어머니. 가세가 기울자 부모님은 이혼했다. 12살에 세 번째 어머니가 생겼다. 하루 종일 택시 운전을 하며 가정을 꾸린 아버지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던 황준필은 세 번째 어머니의 손길이 고마웠다. 어머니가 있어서 집안이 더 이상 쓸쓸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머니의 관심이 낯선 간섭처럼 느껴졌다. 소년 준필은 보편적인 모자 관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엄마”가 아닌 “저기요.”라고 불렀다.
언젠가부터 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새 어머니로 인해 생일이 한 달 늦은 여동생이 생겼지만 어머니를 미워하니 여동생도 미웠다.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버스에서 여동생과 마주쳐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조차 자신의 가족사를 알리는 게 창피했던 그는 가족신문 만들기 과제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고 말한다.
“가족신문에 엄마와 여동생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가족 수를 몇 명으로 적어야 할지 늘 고민이었습니다. 정말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죠.”

가족사를 가리기 위해 했던 공부
축구부원이었던 그는 운동에 전념할 뿐 공부는 뒷전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180명 중에 150등을 했다.
“어느 날,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면 좋게 봐준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좋은 집안에서 자란 똑똑한 애라고 생각해 줄 것 같았어요. 그러면 아킬레스건인 가족사를 숨길 수 있을 것 같았죠.”
황준필은 공부하기 시작했다. 첫 시험에서 전교 7등을 했고, 전교 1등도 했다. 사범대학에 합격하는 기쁨도 누렸다. 실업계 출신인 그는 인문계 공부를 제대로 한 친구들에게 실력이 뒤쳐질 거라 생각했지만 첫 학기에 과에서 3등, 다음 학기에는 2등을 해서 원했던 학업의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한 덕에 운동도 잘해서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고, 선배들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사람들은 저를 성적, 대인관계, 대외활동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학생이라고 생각했고, 어느덧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아버지가 아프리카 해외봉사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지금처럼만 하면 해외봉사도 멋있게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너무도 몰랐던 엄마의 마음
그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2009년 아프리카 잠비아로 해외봉사를 갔다.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던단원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했고, 그만큼 자신의 가족사는 숨기려고 애를 썼다.
“다른 집은 다 행복하고 평범한데 우리 집만 불화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단원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잘하려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열을 올렸죠. 동료들보다 30분 먼저 이른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니 핀잔을 주는 이가 없을 정도였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여자 선배 단원이  자주 충고했다. 그 선배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일만 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는 것이라며 부담스러운 일에 도전하지않는 것을 지적했다. 그런 선배의 관심이 잔소리하는 어머니처럼 느껴져 그는 선배도 싫어하게 됐다.
잠비아 월드캠프와 컬처 박람회를 준비할 때였다. 준비할 것들이 워낙 많아 새벽 2~3시까지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단원들은 피곤해하더니 더 이른 시간에 잠을 자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난 그는 숙소 밖으로 뛰어나갔다. 4시간 정도 흐른 후 ‘이렇게 나오면 걱정들 하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숙소로 다시 들어왔다. 아프리카에서는 밤이 되면 거리에 범행이 많고, 특히 외국인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모두들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었던 그가 처음으로 일으킨 사고였다. 돌아와 보니 행사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단원들에게 화냈던 것이, 그리고 걱정을 끼쳐드린 것이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어요. 무엇이든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가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죠.”
이 사고를 계기로 그는 잠비아 지부의 봉사단 지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는 누나를 보면 꼭 새엄마 같아 너무 밉다’며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준필아. 네게 관심이 없으면 간섭하지 않는다. 정말 무서운 건 무관심이야. 누나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잘 생각해 봐. 뭐라고 해주는 사람이 진짜 고마운 사람이야. 사실 엄마도 너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 새엄마일수록 좋은 소리 듣고 싶어서 잘해주려고 하지. 그런데도 너에게 간섭해주는 엄마가 대단하신 거야.”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는 엄마의 마음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관심이 없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아들이 잘되길 바라서 야단을 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단원 누나도, 엄마도 진정으로 그를 생각해줬던 것이다.
‘내가 인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인데, 그나마 내가 엄마한테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이 됐구나. 엄마, 고마워.’
현재 그는 엄마와도, 단원 누나와도 무척 친하다. 웃으면서 지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잠비아에서 단원들과 지내며 그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배웠다.

 
 
마음을 가깝게 한 연지의 편지
사이가 어색했던 여동생 연지도 당시 에티오피아에서 해외봉사를 하고 있었다. 잠비아에서 지낸 지 7개월이 되었을 때, 에티오피아 단원들이 잠비아 월드캠프를 돕기 위해 잠비아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난 그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내심 반가웠다. 동생 연지가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기 전에  그에게 편지를 남겨놓았다.
‘오랜만이라서 반가웠어. 우리가 남매 사이로 충분히 친할 수 있었는데,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 에티오피아에 지내면서 알게 됐는데, 가족이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살아야 되더라. 나도 다른 여동생처럼 오빠에게 오빠라고도 불러보고, 오빠에게 이쁨도 받고 싶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지면 좋겠어. 앞으로 우리 이야기 많이 나누면서 지내자.’
처음으로 동생이 편지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동생이 남긴 편지를 읽으며 그는 가족과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살았던 것을 후회했다.
“제가 엄마의 딸인 연지를 싫어했던 것처럼 연지도 저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동생의 마음을 알고 보니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저 혼자의 막연한 생각을 했던 거죠. 오빠로서, 남자로서 먼저 마음을 표현 했어야 됐는데, 동생이 먼저 마음을 표현해 주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잠비아와 에티오피아, 서로 다른 나라에 있어서 거리는 멀고, 인터넷 속도가 느려 자주 연락하지는 못했지만, 가끔 메일을 주고받으며 남매의 마음은 훨씬 가까워졌다.

집에 돌아와 발견한 부모님 마음
그는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엽서를 보냈다. 비록 글로 표현했지만, 그가 엄마라고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 저 준필이에요. 엄마가 저를 싫어해서 간섭하는 줄로만 알았어요. 이젠 알았어요.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자식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저를 가르쳐주셨다는 것을요. 제게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덧 1년이 흘러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반가움 반, 설레임 반으로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부모님께서 반겨주셨다.
“준필이 살쪘네? 너무 보기 좋다. 표정도 밝아지고 말이야.”
그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따스함을 느꼈다. 가족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집 한쪽 벽에는 지난 한 해 그가 잠비아에서 보냈던 사진들과 소식들, 연지가 에티오피아에서 보낸 소식들이 다 스크랩되어 있었다. 냉장고 문에 붙여져 있는 아프리카 지도에는 잠비아와 에티오피아가 표시되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 두 남매의 사진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엄마의 마음을 느낀 그의 가슴이 찡해졌다. 예전에 그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지만, 지금은 어느 곳보다 최고의 보금자리인 집을 좋아한다.
세 남매가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그의 가족은 아주 행복해졌다. 그의 누나는 캐나다에 다녀왔다. 이들이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로는 언제든지 오픈 마인드이다. 마음 표현도 잘하고 그만큼 사이가 가까워졌다. 이젠 엄마가 간섭하더라도 아무렇지 않다.  
“너희가 어릴 때는 바로잡아줘야 할 것이 참 많았어. 크면 바뀌는 것이 쉽지 않거든. 그래도 너희가 많이 바뀌어서 참 흐뭇하다.”
엄마 없이 자라서 인성교육이 잘 되어 있지 않던 남매를 바로잡아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 황준필 씨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그들의 앞날까지 생각하며 관심과 사랑을 쏟는 엄마가, 자신을 사람답게 만들어준 엄마가 그는 한없이 감사하다.  
 
아픈 경험이 앞으로 경험을 쌓고자 도전하는 계기가 되다
이제 그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유롭다. 세 엄마를 겪은 것을 전혀 탓하지 않고, 오히려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가족관계가 힘들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잘 이겨낸 경험을 계기로, 그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재산은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3년 이후로 하루 5시간 이내로 자며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고, 낮과 밤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있다. 현재 그는 2개의 축구팀에 소속되어 있고, 대한축구협회 심판을 하고 있으며, 방학에는 2~3개 정도의 아르바이트와 막노동을 한다. 일해서 번 돈으로는 여행도 한다. 자전거 여행, 기차 여행, 그리고 중국, 태국, 인도 등 해외여행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 위해 여행은 항상 혼자 떠난다. 세상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성도 배운다. 인도 여행에서는 교사들을 많이 만났는데,
‘훌륭한 선생님은 경험을 많이 쌓아서 아이들한테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인 그에게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지난 1월에는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 정상에 올랐다. 네팔에 머물 시간이 부족해 빨리 정상을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운동화에 발목양말, 후드 티 하나 입은 상태로 무작정 출발했다. 정상에 이르렀을 때는 영하 19도에 두 달 만에 내린 폭설이 버티고 있었다. 자신이 죽는 줄로만 알았다는 황준필 씨. 대부분 출발지에서 정상까지 7박 8일에서 8박 9일이 소요되는데, 그는 출발한 지 5일 만에 해발 4120m 정상에 올랐다. 무모한 여행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부족한지 알 수 있었으며, 약 200만 원의 경비로는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했다고 한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하나뿐인 아들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황준필 씨. 재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엄마에게 작은 선물이지만 머리핀을 사드리며 마음을 표현하고, 작년 초에는 그동안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모들에게 새해 인사도 했다.
그는 앞으로도 가족이 행복하길 바란다. 누나는 2년 전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고, 그는 학교 주변에서 지내 자식들이 하나 둘 부모의 품을 떠나고 있다. 우울함을 느끼실 부모님, 고생을 많이 하신 부모님을 위해 그는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서 자신이 했던 경험을 부모님께도 경험시켜 드리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보면 삶에 엔돌핀이 돌기에. 그는 부모님이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란다.


글과 사진 | 배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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