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에서 투머로우를 1년간 구독하며, 굿뉴스코 해외봉사에 도전하게 됐다는 영남대학교 2학년 김승현 씨. 미국비자를 받기 위해 대사관 방문을 앞둔 김승현 씨를 서울역에서 만났다. 밝은 미소의 건실해 보이는 그의 얼굴엔 긴장과 설렘이 묻어 있었다. 다음날 공대생이라 영어에 약하다던 그가 미국 비자 합격소식을 들려주었다. 2월 24일 미국 뉴욕으로 해외봉사를 떠난 그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군중 속에 홀로 서다
공과대학의 메카로 불리는 영남대학교 기계공학과의 입학생은 300명.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김승현 씨는 친한 친구 한 명 없어서 학교생활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대학의 낭만과 로맨스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학교에서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교외활동이었다. 대학봉사활동, 환경단체, 응급처치 등 여러 가지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특히 대구 응급의료정보센터 ABC 자원봉사단의 활동에 주력했다. 심폐소생술을 비롯해 응급처리 교육 과정도 있어서 일반인을 위해 응급처치를 교육하거나 재난, 재해와 같은 긴급 상황 때도 꾸준히 봉사하는 단체였다. 하지만 활동을 하면 할수록 구성원들과 부딪히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충돌했다.
“모든 것을 학생들이 준비하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저 역시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죠.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구성원들에게도 기분이 상했고, 회의할 때마다 인상을 썼죠.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게 1학년을 좋지 않은 추억으로 보냈어요.”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라는 선배의 조언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화려하고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 성품은 까칠하고 거친 편이었어요. 제가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내뱉어서 상대방이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좋고 싫은 게 분명했어요. 그런 제 성향 때문에 학교 구성원들과 잘 지내진 못했어요. 고집도 강하고, 해야겠다는 것은 반드시 하는 편이라 대학생치곤 다양한 활동을 해서 자신감도 얻었지만, 사람들과 부딪힘은 계속됐어요. 그리고 군대에 갔죠.”  

백령도 부대에서 만난 투머로우
그는 육군과 같이 21개월 간 복무하는 해병대를 지원했다. 포항에서 2개월 간의 훈련을 마치고 백령도에 배치된다. 백령도는 서해 5도 중 가장 멀리 있고, 가장 큰 섬이며 북한과 가까이에 있다. 과거 천안함 사건이 난 곳도 백령도와 가까운 곳이었다. 백령도에는 ’꺼지지 않는 등불’을 켜놓아 안타깝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리고 있었다. 백령도에는 포장된 활주로가 아닌 모래로 된 유일한 천연 비행장이 있다. 6.25 당시 비행장으로 사용하면서 최근 관광지가 되었고 인천에서 5시간 거리인 백령도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백령도에서의 삶은 그에게 추억이 되었다.
“현역병들에게는 가끔 하수오란 약초를 캐는 게 낙인데, 몸에 좋아서 칼로 깎아 그 자리에서 씹어 먹거나 물에 담근 후 말려서 먹기도 했죠.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는데, 가끔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 낫을 들고 북한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이상해요.”
그에게 백령도에서의 군 생활은 쉽지 않았다. 남자들의 세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도 높은 훈련도 예상했지만, 도발과 긴장된 상황 속에서의 훈련은 엄격했다. 고되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후임들에게 썩 잘해주지 못한 점이 크게 후회됐다고.
“저는 군대에서도 문제가 많았어요. 선임들에게는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래 사람들에게는 화도 많이 내고 엄하게 대했죠. 그리고 답답할 때마다 자전거를 탔어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페달을 밟은 이유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전역해서 어떤 인생을 살지 생각했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 다니려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책을 모아놓은 곳에서, 제 운명이 될 투머로우를 만난 것입니다.”
“잡지를 손에 들고 읽는데 무엇보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이 해외봉사를 다녀온 스토리가 가장 와 닿았어요. 그래서 틈틈이 읽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라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항상 웃으면서 생활했다는 단원들의 이야기가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왜 행복하다고 말하는지, 그 비결을 알고 싶었죠. 물도 전기도 없는 아프리카 상황이 마치 군대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비슷한 환경에서 그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보며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그런데 한두 번 읽을 때마다 제 마음도 점점 달라졌습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은 ‘나’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서로 맞춰가고 있었죠. 군에 입대하면서 저는 더 차갑고 딱딱한 사람으로 변했는데 말이죠. 잡지를 읽으면서 ‘지금이라도 변화를 입고 후임들에게도 실천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뜨거웠지만, 처음이 어렵지 시간이 지나자 좋아졌습니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학생들의 경험이 저의 군 생활에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긋났던 톱니바퀴가 하나씩 맞춰져서 돌아가기 시작하듯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전역하면 꼭 굿뉴스코에 지원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군 제대 후 조선소에서 일을 하다
그런데 막상 전역을 하고, 굿뉴스코 담당자와 상담을 하면서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고심했다는 그는 용기를 내서 신청했고, 항공료와 각종 비용도 스스로 마련하고 싶어서 거제도에 있는 한 조선소에 일일 용역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잔업을 하노라면 쉽지 않은데도 그는 워크숍이 있을 때마다 주말 이틀간 새벽 5시 첫차를 타고 거제에서 마산으로, 마산에서 김천으로, 김천에서 다시 대덕수련원까지 갔다. 굿뉴스코의 어떤 매력이 그의 사고를 변화시키고, 행동하게 했을까?
‘‘워크숍이 끝나면 다시 거제도에 내려가서 일했는데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꼭 굿뉴스코를 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생각지 않고 젊음을 도전해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해외봉사로 지원할 수 있는 74개 나라 중 뉴질랜드를 지원했지만 탈락한 그는 미국으로 다시 지원했고 합격했다.
‘‘주변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이 저에게 ‘많이 밝아졌다’, ‘변했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투머로우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됐어요.”
그는 특히 잡지를 보면서 마인드 칼럼에서 소개된 <존 이야기>가 크게 남았다고 말한다.
‘‘존이 6.25 전쟁에 참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머니에게 전화하죠.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친구가 있는데, 팔과 다리, 눈 모두 불구라고요. 그런데 어머니가 안 된다고 했어요. 다음날 어머니는 들뜬 마음으로 아들을 기다렸고, 전화를 끊은 존은 죽음을 선택했죠. 존이 말한 친구는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어머니와 가족에게 짐이 되는 자신이 싫었던 겁니다.  군에서도 특별히 가족에게 편지하지 않았어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존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내 입장만 생각하면서 대화를 했어요. 집은 잠만 자는 숙소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트러블이 많았죠. 지금은 쑥스럽지만 장난도 치고 표현도 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는 벌써 굿뉴스코 단원들과 한 식구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과 서로 내면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대화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기쁨이 있었어요. 돈 주고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그들에게 들을 수 있었죠. 한 여학생의 이야기가 정말 가슴에 와 닿았어요. 온몸에 퍼진 암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어요. 혀까지 마비가 와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대요. 하지만 그녀는 정말 밝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놀라웠어요. 어린 나이의 보통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저 역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뭐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이젠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된 후 오히려 사람들과의 마찰이 줄어들었어요.”

투머로우는 새로운 길의 통로
그는 투머로우를 통해 새로운 길들이 열렸다고 말한다. 투머로우에서 만난 친숙한 얼굴을 대하니 기뻤고, 그들의 삶을 자신의 인생에도 적용해보게 됐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자 중에 하나가 초焦입니다. 한자를 보면 새鳥가 불火 위를 날고 있으니 위험하죠.  ‘초점’이란 눈을 둔 곳에서 떼어내지 말라는 뜻으로 한눈을 팔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신은 스스로를 절대 볼 수 없고, 나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초점은 상대방이 되는 것이죠.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평가해주는 게 정확한 나의 모습이니까요. 그래서 미국에서 해외봉사활동을 하면서 무턱대고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식의 대화보다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힘든 상황에 있는 이들이 기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는 그런 관계가 되도록 대화를 많이 하고 싶어요.”
지난 날 대화 없이 차갑게 굳어가던 그의 심장은 뜨겁게 뛰고 있다. 오랜 시간 대화하지 않고 굳어져온 자신의 습관을 탈피하고, 나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과거의 김승현이 아닌 새로운 세상 속에서 벗을 사귈 김승현으로 바뀐 그는 웃는 날이 더 많아졌다.


사진 | 배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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