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연습의 결실로 세계 정상의 피겨 여왕이 되었다. 이미 세계 신기록을 12번이나 경신한 그녀는 각종 부상을 달고 다니지만 그 또래 나이답지 않게 대담하고 의연하다.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국민의 열망을 이룬 김연아는 진정한 스케이터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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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꿈을 꿀 때 그녀는 꿈을 이룬다
7살의 어린 소녀는 아이스 링크장에 놀러갔다가 피겨를 좋아하게 되어 입문한다. 12살에는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성공했고, 13살에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노비스 부문에서 우승했다. 그녀 나이 14살, 피겨스케이트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세계 최고 피겨스케이터를 꿈꾸는 이들이 15세 무렵 두각을 나타내어 20세에 절정에 이르는 걸 보면 피겨스케이터의 선수 생명은 다른 스포츠보다 짧다. 점프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뛰어온 선수들은 16~17세에 급격한 체형 변화로 스케이터의 길을 그만두곤 한다. 김연아는 수많은 부상을 겪으며, 외로운 사춘기를 보냈다. 몸의 성장으로 인해 점프시 부상은 감내해야 하는 피켜 스케이터의 길. 더 이상 몸무게가 늘지 않도록 10대 소녀는 음식 섭취를 철저하게 자제한다.
아사다 마오 선수가 전용 연습장을 사용할 때, 김연아는 새벽과 밤을 이용해 대관조차 쉽지 않은 한정된 빙상장에서 연습에 연습을 반복한다.
2004년부터 주니어 대회에서는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의 경쟁 인물로 부각됐다. 16살 때부터 시작된 시니어 대회에서는 아사다 마오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오른다. 2006년에는 브라이언 오서 코치, 데이비드 윌슨 안무가의 도움을 입어 시니어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록산느의 탱고>로 쇼트 프로그램 세계 신기록을 세운 김연아는 그러나 프리 프로그램 <종달새의 비상>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철저하게 연습에만 매진하며 몸을 혹사시킨 탓이다. 2006~2007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진통제를 맞고 배와 등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 시합에 나타났다. 프리 프로그램 <종달새의 비상>을 연기할 때 테이핑이 다 보일 정도로 그녀의 허리 부상은 심했다.
2007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테이프를 감은 상태로 공식연습에 임했고 그 모습은 사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무릎팍 도사>에서도 고백했듯이 김연아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꿈을 이룬 이후 상실감이 컸다고 말한다. 그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신체 부상 또한 컸기 때문에 그녀는 고민 많은 20살의 성장통을 톡톡히 겪었다. 그녀는 올림픽 이후에도 여전히 매일 훈련을 거르지 않고 운동과 방송 활동을 겸했다. 

2011년 쇼트 프로그램 <지젤>과 <오마주 투 코리아>로 자신을 응원해준 한국 팬들을 위해 공연을 선사했으며, 이는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IOC 위원들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녀는 영어 프레젠테이션 연습에 돌입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훈련 모습과 함께 평창에서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고, IOC 위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호소력 있는 발표를 해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했다. 2013년에는 세계 선수권에서 또 다시 <레미제라블>로 1위를 차지해 조국을 위해 올림픽 출전권 3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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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의 고행이 수만 번 있었다
김연아는 외형적으로 건강해 보이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허리 디스크와 골반 통증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발가락과 발등 사이에 오는 골절로 중족골 부상도 실금이 아닌 1.5cm의 금이 갔다고 보도된 바 있다. 살짝 까치발을 했을 때 엄청난 통증이 찾아오는 바람에 전치 6주의 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의학기자 김철중이 집필한 책 <내망현>에 따르면 김연아의 엉덩이 근육인 대둔근은 계속 혹사당해왔다고 한다. 엉덩이 근육은 하체를 고정하고 골반과 척추를 당겨서 바로 서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얼음 위에 수없이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김연아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수들이 스케이트를 탈 때 트리플 러츠 점프는 바깥 엣지(발목이 밖으로 꺾이는 형태로 아웃 엣지라 부른다)를 사용해서 도약한다. 그런데 보통은 발목이 삘까 두려워서 아웃 엣지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김연아는 가장 수준 높은 트리플 러츠를 제대로 된 아웃 엣지로 구사한다. 그런 고난이도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수만 번의 연습으로 천장골관절에 이상이 생기기도 한다. 그 경우 허리 아래쪽에 통증이 발생해서 골반이 어긋나 근육과 인대에 염증이 생긴다. 보통의 선수들은 김연아가 선택하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그 길은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김연아를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묵묵히 선택하며 걸어간 길이 누구든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그랑프리 시리즈 참가 의사를 밝혀 모든 피겨 팬들이 김연아의 연기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으로 크게 기대했지만 뜻밖에도 김연아는 오른발 부상으로 그랑프리 시리즈를 불참하겠다고 발표했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주치의 나영무 박사는 한 언론에서 “연아의 오른발 나이는 40대로, 점프가 높고 빠르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이제까지 프로그램보다 훨씬 수준 높은 연기를 펼쳐야 했고 그만큼 실전경험도 필요했지만 김연아는 부상으로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할 수 없었다. 이후 크로아티아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경기와 우리나라 종합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실전경험을 익히고 4년에 한 번 열리는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곳에서 큰 실수 없이 클린 경기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김연아의 부단한 연습과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으로 단련된 정신력이 아주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뜬 눈으로 연아를 응원했다
김연아의 무대가 시작된 소치 동계올림픽 2월 19일, IOC 국제올림픽위원회 공식 홈페이지 메인 화면은 ‘연아의 시간이 돌아왔다It’s Yuna Time!’는 타이틀로 장식됐다. 소치 동계올림픽의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지난
2월 20일, 여자 싱글 부문 쇼트 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2분 50초 동안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를 연기했다. ‘신의 한 수’로 불리는 올리브 그린빛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2분 50초의 열연을 펼쳤다. 세계의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연아 효과’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피켜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과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의 시간대는 20일,
21일 오전 0시부터 오전 4시 30분까지였다. 이 시간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늦은 밤 야식은 끊임없이 배달되었고, 김연아를 보려는 시청자들은 때론 가슴을 졸이며, 때론 환호했다.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무대는 밤이 저물고 새벽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다음날도 온통 연아 앓이를 하듯 ‘김연아의 올림픽’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역대 최고점을 받은 밴쿠버를 생각하며 ‘이 순간 집중한다’는 연아의 한마디는 지난 4년간 그녀가 어떤 혹독한 연습을 해왔는지 짐작케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21일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러시아의 편파 판정에 의해 김연아는 아쉽게
2위를 차지했다. 2월 21일 금요일 새벽, 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치자 언론사는 일제히 연아의 은메달에 환호를 보냈다.
이미 평생의 꿈인 금메달을 밴쿠버에서 딴 그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힘든 훈련을 다시 감내하며 소치 동계올림픽을 준비했다. 국민의 기대가 그녀를 움직였던 것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올림픽 무대에 오른 그녀는 점수에 대한 욕심 없이 경기에 임했다. 그녀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 경기에 오른 듯했다. 김연아는 자신의 기술점수가 소트니코바와 아사다 마오에 비해 낮은 것을 알았고, ‘점프가 남는다’는 소릴 들을 정도였지만 점프 구성도 더 높은 점수를 위해 바꾸지 않았다.
온 국민이 그의 금메달을 기대했지만 김연아의 점수는 144.19점. 러시아 선수 소트니코바가 149.95점이라는 예상 외의 점수를 받아 아이스링크장은 러시아 사람들의 흥분으로 가득찼다. 김연아 외에 다른 선수들은 이번 심판들의 엣지 판정이 너그럽다는 사실을 알고 점프 구성을 바꾸었다. 아웃 엣지 때문에 가장 어려운 점프로 통했던 트리플 러츠로 변경하여 가장 높은 점프 점수를 챙겼다. 하지만  완벽한 점프를 구사하는 김연아는 더 수준 높은 기술을 보여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메달만을 따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의 싸움을 위해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그는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의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러시아 선수에 비해 4점 이상 뒤진 점수였고 그에게 은메달이 주어졌다. 금메달을 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연기는 기술은 뛰어나지만 성숙미가 떨어진 기술자와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일까. 소트니코바의 수상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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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것은 점수, 얻은 것은 품격
김연아는 빙상 위에서 꽃이 될 때마다 ‘지금 실수했지만 다음에 잘하자, 나머지는 열심히 하자’며 자신을 수없이 연단해왔다. 20대의 어린 나이에 보여준 탁월한 실력과 연기로 ‘퀸 연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런 그녀가 은메달에 편파 판정을 받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김연아가 잃은 것은 점수지만 얻은 것은 기품이였다. 오랫동안 외길을 걸으며 연습해온 김연아는 최고의 순간에 오르자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게 됐다. 김연아는 금메달도, 그 어느 것에도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뿜어내는 백조 같이 날아올랐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카톡 대화에서 담담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녀의 목표는 ‘자신이 준비한 연기를 다 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4분 30초의 프리 경기에서 그녀는 나비처럼 사뿐히 날아서 모두의 마음에 그녀를 남겼다. 김연아는 평생 12번의 세계 신기록을 깼다. 김연아 자신이 그동안 자기의 기록을 깬 것과 같다. 그녀는 더 이상 메달 욕심을 내지 않았다. 늘 그녀 자신과의 싸움만이 그녀에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비록 김연아가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세계의 언론은 그녀를 기품있는 ‘여왕’으로 대접했다. 올포디움을 달성하고, 전설적인 기록으로 스포츠 역사상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는 선수로 지명된 김연아. 수천 번의 점프로 상처투성이가 된 그녀의 발, 수만 번의 회전으로 뒤틀린 그녀의 허리. 온몸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 매 경기에 임하던 그녀. 허리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프를 해온 김연아. 그녀는 말한다.
“다시 7살로 돌아가더라도 피겨 스케이팅을 선택할 것 같다. 피겨 스케이팅은 내 인생의 전부다!”

디자인 |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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