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의 버튼 한 번만 누르면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번거로운 수작업으로 필름을 현상, 인화해야 하는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숭실대 흑백사진 동아리 ‘빛누리’ 회원들이다.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디지털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매력이 있기에 오늘도 기꺼이 번거로운 암실작업을 하며 감사해한다.

▲ 김동찬(전기공학부2), 손여리(경영학부2), 안정선(건축공학과2). 이들은 모두 빛누리 회원들이다.
▲ 김동찬(전기공학부2), 손여리(경영학부2), 안정선(건축공학과2). 이들은 모두 빛누리 회원들이다.

단색으로 표현되어 어둡고 무거워 보이는 흑백사진. 그러나 흑백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진 속 피사체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칼라사진은 다채로운 색상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흑백 사진은 검은색, 회색, 흰색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사진 속 초점에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쉽게 알 수 있고, 사진 안에 담긴 내용이 더 강하게 와 닿는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 암실에서 현상, 인화까지 한 흑백사진은 감성을 자극하는 감칠맛마저 느껴진다. 사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손맛 때문일까. 1971년, 그 맛에 푹 빠진 이들이 모여 만든 숭실대 흑백사진 동아리 빛누리는 43년째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과 함께하는 일상
현재 빛누리의 회원 수는 총 45명. 이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 그 주에 작업한 사진들을 선배들에게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자신의 실력을 부쩍 키워주는 선배의 조언을 듣는 것이 이들에게는 감사하다. 사진 하나가 나오기까지 온 정성을 쏟는 자세야 말로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들 중 가장 마음에 새기고 있는 부분이라고.
암실작업은 한 번 하는 데에 5~6시간이 소요되는 힘든 작업이다. 게다가 인화기가 두 대뿐인 가로 2m, 세로 6m의 작은 암실에서 작업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 2명. 때문에 회원들은 서로 시간을 정해 암실을 사용해야 한다. 오랫동안 암실 안에 있으면 답답하지 않을까? 건축공학과 2학년 안정선 씨는 암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깊이 몰입해 5~6시간도 금방 지나간다고 한다.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들여야 되기 때문에 시간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나 막상 암실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진짜 빨리 가요. 10분 지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2시간이나 지나 있기도 해요.” 
방학에는 8박 9일 일정으로 강원도, 경상도 등 지방으로 원지 촬영을 나간다. 2년에 한 번 여름방학에는 제주도로 간다.

온 정성을 쏟아야 탄생하는 사진 한 장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바로 LCD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하고 또 다시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필름 카메라는 한 컷을 찍더라도 정확하고 신중하게 셔터를 눌러야 한다. 사진을 찍어도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디지털 카메라는 메모리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수백 장 또는 수천 장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필름 1롤은 36장뿐. 그마저도 7~8천 원을 지불해야 한다. 인화지 100장이 4만 원이니 셔터 한 번 누를 때마다 600원이 사라지는 셈이다.
마음에 드는 피사체가 보이면 주변의 상황에 맞게 초점, 셔터 스피드, 조리개를 잘 설정해 찍어야 하는데,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으니, 혹시나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각도나 초점을 조금씩 다르게 하여 여러 컷 더 찍어둔다. 인화해서 보면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진을 찍은 장소에 가서 다시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는데, 많게는 3번까지 새로 찍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필름 현상도 손이 많이 간다. 약품을 처리하기 위해 촬영한 필름을 약품이 잘 닿도록 필름릴에 감아서 탱크에 넣는다. 이 때, 필름 면에 지문이 찍혀서도 필름끼리 겹쳐서도 안 된다. 필름이 잘 감기지 않은 경우, 그리고 약품 시간을 잘못 맞췄거나 약품 양을 잘못 조절했을 경우에는 필름이 투명하거나 온통 시커멓게 나오기도 한다. 필름을 말리는 중에 사람이 지나다녀서 먼지가 달라붙기라도 하면 현상했을 때 먼지 모양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럴 때는 필름을 물에 씻어서 다시 몇 시간을 말리기도 한다.
현상을 아무리 잘해도 인화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인화액 농도와 온도를 잘 맞추더라도 밝기 조절을 잘못 해 사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처럼 필름 카메라로 찍은 필름이 사진이 되기까지는 만만찮은 수고와 정성, 시간이 요구된다. 그렇게 온갖 심혈을 기울여도 어디 한 군데에서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까다롭고 세밀한 과정을 필요로 하는 암실작업을 온 마음을 다해 하고 있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작업하고, 손길을 주는 만큼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더욱 애정이 생기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진에 오랜 시간과 땀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전시회 준비하며 부쩍부쩍 느는 실력
빛누리는 교내에서뿐만 아니라 교외에서도 사진 전시회를 한다. 외부인이 많이 와서 관람하기 때문에 퀄리티를 높이는 데 박차를 가한다.
전시되는 40개 작품을 선별하기 위해서는 전시회 시작 6주 전부터 회원 모두가 한 주에 30장의 작품을 선배들이 심사할 수 있도록 제출한다. 갖은 고생을 겪으며 완성된 작품들! 그러나 약 800장 중 40장만이 선택되기 때문에 수많은 사진들이 탈락되고 만다. 비록 선택이 된 사진이라도 전시회용으로 확대 작업을 하는 중에 사진에 흠집 등 결함이 생기면 탈락 된다. 애지중지해서 완성한 자식 같은 사진들이 탈락될 때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이다. 빛누리 회장인 전기공학부 2학년 김동찬 씨는 전시회에 출품할 사진을 준비하며 힘든 시간도 많이 겪었지만,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
“1학년 때, 최선을 다해 작품을 준비했는데 끝까지 한 장도 선택되지 않아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때의 아픔이 동기부여가 됐죠. 잘못된 점을 보완하며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다 보니 사진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힘든 과정을 수없이 거쳐 최고의 작품을 준비하기에 빛누리 회원들은 후배들보다 고작 1년 정도 더 사진을 공부했을 뿐인데도 실력 차이가 크다. 또한 빛누리 멤버들은 자신들의 사진이 다른 학교 사진동아리의 사진보다 퀄리티가 높다고 자부하고 있다. 외부에서 전시회를 열 때면 많은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 작가를 불러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구매하기도 한다.
빛누리 사진의 퀄리티가 높은 것에는 선배들의 노고도 한몫한다. 전시회를 앞두고는 항상 선배들이 심사를 하여 전시할 작품을 선별하고, 개선할 점을 가르쳐주며, 심지어 밤을 지새우면서 함께 작업을 한다. 선배로부터 배운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전수해주고자 하나라도 놓칠 새라 배움에 열심이다.

▲ (왼쪽)추석_ 김동찬 (위)생각과 말_이소영 (아래)먹겠다는 의지의 차이_손여리
▲ (왼쪽)추석_ 김동찬 (위)생각과 말_이소영 (아래)먹겠다는 의지의 차이_손여리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이제 대부분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필름과 인화지가 점점 단종되고 있고, 가격은 높아지고 있다. 필름카메라의 감소세에서 빛누리는 동아리를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 2학년부터는 어느 정도 디지털카메라를 함께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빛누리 회원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가도 다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게 된다고 한다. 경영학부 2학년 손여리 씨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살아생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어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두었다. 필름을 직접 인화한 사진은 아련히 감성을 자극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 사진을 찍었던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답답함과 고된 작업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암실작업을 통해 얻은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다.


디자인 |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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