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과학대학교 김석종 총장

반세기의 역사를 품고 급성장한 대구과학대학교의 김석종 총장은 어디든 뛸 수만 있다면 달려가는 마라토너 같다.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은 국내외 유수 마라톤 대회에서 그 기량을 선보이는 것처럼, 그는 기회가 되면 어디에서든 교육의 씨앗을 뿌리고야 만다. 좀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고 있는 그가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람을 섬기고 사회에서 필요한 기술력을 가진 인재 양성을 위해 전력질주하는 데 있었다.

▲ 1960년대 설립된 대구과학대 총장실에서 만난 58년생 김석종 총장은 자상하고 엄격한 이미지가 존재하는 스승 같다. 특히 전문대학에 입학하는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의 심성에 자신감을 심어주고,실력을 갖추어 사회에 제 몫을 해내는 인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그를 대면하고 있으면 밭을 갈고 물을 주어 수확을 앞둔 농부의 포부가 느껴진다.
▲ 1960년대 설립된 대구과학대 총장실에서 만난 58년생 김석종 총장은 자상하고 엄격한 이미지가 존재하는 스승 같다. 특히 전문대학에 입학하는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의 심성에 자신감을 심어주고,실력을 갖추어 사회에 제 몫을 해내는 인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그를 대면하고 있으면 밭을 갈고 물을 주어 수확을 앞둔 농부의 포부가 느껴진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3년, 대구과학대학교 산학실습처장실에는 밤 11시가 되어도 창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김석종 총장이 산학실습처장으로 재직할 당시 자연스럽게 있는 일상이었다. 김 총장이 퇴근 후에도 늦은 시간까지 업무와 관계된 모임에 참석해 집으로 귀가하면 새벽 4시. 다음날 아침 8시 반이면 어김없이 산학실습처장실로 출근했다. 주변 교수들조차 그런 김석종 교수를 지독스럽게도 일한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는 게 없어서 두 발을 뻗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의 심정을 아는 이가 몇 명이었을까? 그는 가난했던 가정 형편 때문에 17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27세의 뒤늦은 나이에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대학에 입학했다. 내무부 지적(토지의 위치, 형질, 소유 관계, 넓이, 경계 등의 기록물)과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토지측량분야의 공학박사가 된 김 총장. 그리고 교수요 산학실습처장으로 대구과학대학교에 발령을 받은 후에는 오라고 하는 이도 없는데 어디든 달려가 문을 두드리며 지금보다 더 규모가 작았던 대구과학대학교를 알렸다.

▲ 학생들이 주인인 대구과학대학교에서는 1인 2자격증을 목표로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 학생들이 주인인 대구과학대학교에서는 1인 2자격증을 목표로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최초 측지정보과 과정을 설립
1993년 같은 시기, 김석종 총장은 한국에서 최초로 측지정보과 과정을 전공과목으로 신설했다. 그리고 그 과를 급성장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미 선진국과 미 우주항공국NASA의 경우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하고 있었다. GIS는 토지 관련 모든 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 저장, 조정, 분석, 표현해내도록 설계된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대학에서도 토목, 건설학과의 교육과정에는 토지측량 정보를 별도로 가르치는 경우가 없었다.
김석종 총장은 IT 기술의 발달로 국방, 건설, 교통 등 모든 분야에 GIS는 수요가 확대될 것을 내다봤다. 그렇게 남보다 앞선 안목으로 국내 최초로 대구과학대에서 인재를 키워내겠다고 다짐했다. 
“과학 분야는 기술을 습득하고 데이터와 결과물을 정확하게 도출해내야 합니다. 특히 이과 전공자들은 졸업 후 현장으로 바로 배치되어 일꾼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해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배움이 중요하죠. 하지만 2년제든 4년제든 졸업생들이 졸업 후 현장에서 새롭게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실력을 쌓을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그것을 몸소 배울 수 있는 경험이 필요했어요. 저는 측지정보과를 신설하자마자 학생들을 데리고 바로 산으로 올라갔죠. 현장에서 필요한 장비를 다 설치하고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쳤어요. 차도 없던 그 시절, 이 산 저 산으로 올라가서 현장을 답사하니 당연히 학생들의 실력이 높아졌죠. 고급 인력으로 현장에 투입될 정도였습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수업을 하니까 4년제 대학 졸업생들보다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 나가 제 몫을 하는 게 교육자로서 더 없는 보람이죠.”
그 역시 토지측량 정보와 관련된 외국 서적을 통독, 모조리 섭렵했다. 그리고 전국 고교생 측량 경진대회도 열어서 학과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2000년에 측량 최우수기관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대구과학대학은 2002년 교육부 학과평가 지방대로는 유일하게 최우수 특성화 대학으로 선정돼 109억 5천만 원을 지원받았다. 또한 2001년~2008년에는 교육부 주문식교육 우수대학으로 뽑혔다. 2009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2단계 산학협력 중심대학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2011년 학사제도개선 시범대학 3년간 선정, 2011년 Global Hub College 사업에도 2년간 선정되는 등 국책 사업에서 성과를 올렸다.
2013년에는 전문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 5년 연속 선정, 10년 연속 국가공간정보 거점대학의 명성을 유지했다. 대구과학대학을 방문하지 않으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마다 벤치마킹을 했다.
 
통일 후 토지 문제의 혼란을 대비해야 한다
2003년 김 총장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었다. 지적, 측량 분야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측지대학의 동북아 국제 심포지엄과 남북학술교류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그 후 김 총장은 국가 차원의 고민 하나를 풀고자 중국을 오가며 뛰어다녔다.
그는 앞으로 남북통일에서 반드시 도마 위에 오를 토지 문제를 대비하려고 했다. 그래서 수년 동안 남북학술교류에 참가한 북측의 교수와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우크라이나와 베이징에서 교류했다. 남북의 측량기술의 격차를 줄이고 남북한 토지 공동 전공서 16종 등을 펴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김 총장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류가 뜸해져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독일이 통일 이후 여러 가지 문제로 혼란이 있듯이, 남북이 통일될 경우의 혼란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족보를 찾아가겠지만 땅은 어떻게 될까요? 땅은 돈이기 때문에 그 문제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예를 들면 1.4 후퇴 때 땅문서를 가지고 있던 북측의 사람들은 통일되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땅을 다시 찾으려고 할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토지 문제에 대해 국가적인 정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 김 총장 자신이 토지측량 정보의 전문가로서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여겼다.

교수와 학생 모두 자기계발을 추구하다
대구과학대학교란 이름에 걸맞게 수업방식도 차별화됐다. 기존에 교수들이 손글씨로 칠판을 사용한 것에서 스마트 칠판으로 전원이 사용하도록 장려하여 교육방식에도 개혁이 일어났다. 스마트 칠판의 장점은 스크린에 콘텐츠를 이동·결합하는 기술, 영상 인식, 콘텐츠 스트리밍 등 자유자재로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교수들도 신기술을 익혀 수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한번 익히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는 김 총장은 교수 한 사람의 역량이 학교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므로 이런 신기술을 도입했다. 그리고 타성에 젖은 수업 방식이 아닌 교수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대구과학대의 위상을 세워나가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대구과학대학교에는 설립 당시부터 교수 간에 가족적인 분위기와 전통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단합과 단결이 어느 대학보다 잘 이뤄지고 그 힘이 반세기의 역사를 지닌 대학의 발전을 오늘에 이르게 했다.   
작년 12월, 김 총장은 중국 연길시 정부로부터 해외통상대사로 위촉됐다. 연길과 대구의 한중 국제학술심포지엄 및 연변 지역의 교육,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교류하고 연길시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서였다. 그는 방학 동안에는 글로벌 현장 실습 기회를 열었고, 해외 어학연수를 추진해왔다. 2009년부터 연변지역의 중국 유학생을 유치했는데, 그 첫발을 내디딘 사연도 일단 문부터 두드려보자는 김석종 총장의 도전 정신의 열매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해외산업체 연계 외국인 유학생 교육 선도 전문대학 육성사업’에도 선정됐다.

 
 
사람 간의 신뢰 관계가 중요
일회성의 인간관계를 가장 싫어하는 그는 총장이 된 지금도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상규 입학처장은 김 총장에 대해 ‘섬세하게 사람을 섬기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지금도 젊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정도로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평소 직원들에게 자상하지만 일 앞에서는 엄격한지라 도전하지 않고 ‘안 된다’고 말하는 직원들에게는 호랑이였고, 학교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두 발로 뛰어다녔다.
“한번은 시골 군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정부부처에 다녀갔는데 군수님이 어느 과장과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군수님은 나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다가 못 볼 장면을 본 겁니다. 그 과장이 군수님의 명함을 쓰레기통에 휙 던지더라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저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휴대폰을 바꿔야 할 때도 저장된 수 천명 이상의 사람들 명단 하나하나의 정보를 손수 기록해서 직접 옮겼습니다. 지금까지 직접 문자를 보내고,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한번이라도 더 만나려고 하죠.”
그의 책상에는 두께가 5cm가 넘는 두꺼운 파일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닌다는 파일을 들여다 보니 그가 걸어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인 2자격증 목표, 인성교육도 강화
김석종 총장은 특히 2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가난한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가난과 무지無知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젊다고 사람이 진취적이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데도 자발성이 부족해 교수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학생들이 있죠.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반드시 뛰어야 한다’고 말이죠. 나이가 든 사람 역시 후배들에게도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솔선수범해야 하죠.”
지난 달 포털사이트의 뉴스 코너에 김 총장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은 김 총장이 바삐 지나가는 학생들 앞에 서 있는 장면이었다. 알고 보니 도서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에게 김 총장이 직접 음료수를 나눠주고 독려하는 장면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학교를 돌아보며 학생들의 인성 교육도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도 체육대회가 있어서 구내식당을 다녀왔죠. 사실 제가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불편해해서 되도록 가지 않으려고 해요. 감독하는 줄로 착각하니까요. 우리 학교에 오시면서 학교가 깨끗한 것을 느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가끔 길을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물어요. ‘학생, 나에게 뭐 부탁할 것 있나?’ ‘없습니다.’ ‘나는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다네. 학교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네. 자네가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면 청소하는 분들은 일일이 그걸 치워야 한다네.’ 그런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자주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학교에 다녀주길 바라죠. 지금은 그런 제 마음을 이해했는지 학생들의 몸가짐도 단정해졌고, 인사성도 밝아졌습니다.”
올바른 인성 교육과 1인 2자격증 취득이 목표인 대구과학대학교에는 방과 후 전공수업 심화 스터디, 영어 스터디교실도 운영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언제라도 교수님들과 상담할 수 있도록 면학 분위기가 형성됐다.
마침 기자가 학교를 둘러보는 날은 53회째 ‘2013 한별 페스티벌’이 열렸다. 주막과 술병이 여느 학교 캠퍼스와 달리 다과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고, 부스마다 잠깐씩 들러 지나가는 기자에게 학생들이 밝게 말을 걸어오며 음료수를 건넸다. 문득 ‘사랑을 많이 받아본 이들이 사랑할 줄도 안다’는 글귀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학교 도서관, 휘트니스 센터, 창업보육관, 동아리방을 둘러보자니 대구과학대학교가 학생들의 자기계발을 위해 크게 투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깨끗한 환경 속에 활기찬 학생들의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았다.


사진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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