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김기업에서 이제는 '글로벌' 기업으로

페루에서 해외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또 한국과 한국문화를 홍보하는 민간외교관 역할까지 할 수 있어 보람되었다는 12월호 표지모델 김기업 씨. 앞으로 중남미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다가갈수록 신비스러운 나라, 페루
스페인·중남미학을 전공한 나는 평소 페루의 고대 잉카문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워크숍에 참석했다가 ‘페루는 세계의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모두 갖고 있는 나라’라는 선배 단원의 체험담에 마음이 끌려 페루 해외봉사를 지원했다.
경유지인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을 빼도 장장 2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끝에 도착한 페루. 페루는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신비스럽고 놀라운 나라였다. 태평양 연안을 끼고 있는 수도 리마는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다. 안데스 산맥과 같은 해발 4,700m의 고산지대도 있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면 아마존 정글지대가 나온다. 해안과 산악, 정글이 공존하는 나라가 페루였다. 또한 백인, 인디오, 흑인, 백인-인디오의 혼혈인 메스티조 등 다양한 인종을 만날 수 있다.
페루 곳곳에는 찬란했던 고대 잉카문명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무려 해발 3,500m에 위치해 있었다.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의 웬만한 산 두 배에 해당하는 높이라 하늘의 구름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중에서도 ‘공중도시’라고 불리는 마추픽추는 말 그대로 도시가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마추픽추까지 가는 길은 하도 경사가 가팔라 ‘과연 여기에 도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마추픽추의 모습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 할 만큼 아름다웠다. 돌을 하나하나 깎아서 건설했으며, 당시 농업형태나 생활방식에 대해 들으며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유에 밥을 말아먹어? 거기다 쥐까지!
처음에는 페루 음식을 먹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페루 사람들은 ‘아로스 꼰 레체arroz con leche’라고 하여 우유에 밥을 말아 디저트로 즐겨먹는다.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 ‘어떻게 우유에 밥을 말아 먹지?’ 하는 고정관념 때문에 먹기가 힘들었다.
한 번은 페루 친구들이 잊지 못할 특별한 체험을 시켜주겠다며 ‘꾸이’라는 햄스터를 닮은 쥐과 동물을 가져와 구워 먹자고 했다. 우선 친구들이 ‘이렇게 목과 다리를 잡아 죽여야 한다’며 눈 하나 깜짝 않고 시범을 보여주더니, 나에게도 해 보라고 했다. 나는 몇 번을 거절하다 겨우 꾸이를 잡았는데 그것을 시작으로 볼 것, 못 볼 것 다 보면서 요리를 하게 됐다. 그리고 오븐에서 약 2시간을 구운 끝에
‘꾸이 구이’가 완성됐다. 한 입 먹을 때 껌처럼 질긴 가죽이 씹혀 주춤했지만, 생각과 달리 맛있었다. 쎄씨아라는 친구는 ‘꾸이는 머리까지 다 먹어야 한다’며 손가락으로 뇌를 꺼내 먹는 법을 가르쳐줬지만 나는 겨우 귀까지만 먹었을 뿐이다.
아로스 꼰 레체에서 꾸이까지…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 한 음식 때문에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날 생각해 준 현지 친구들의 마음을 맛본 소중한 추억이다.

 
 
한국을 알리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보람
2008년은 페루에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 전년도부터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한국에 대한 페루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 봉사단원들은 한국어, 태권도, 댄스, 영어 아카데미를 개설해 무료로 페루 학생들을 가르쳤다. 나중에는 페루의 국립대인 산마르코스대학교에서도 한국어 아카데미를 열어 많은 페루 대학생, 젊은이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마르코다. 마르코는 집안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 하고 작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함께 나누면서 우리는 마음으로 친구가 되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내 생일에는 평소 조금씩 모은 돈으로 산 선물과 한국어로 쓴 편지를 준비해 내게 감동을 안겼다.
페루 국회 초청으로 의사당에서 한국문화 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국회의장과 국회 관계자들,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는 등 크게 성황을 이루었다. 그때 페루 국회의사당에 울려퍼진 애국가는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다. 그밖에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한국과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나의 작은 재능이 그곳 사람들에게는 큰 가르침과 기쁨이 된다는 사실에 많은 보람을 느꼈다.

 
 
갓 입학해 스페인어 시험을 치렀는데 100점 만점에 51점이 나왔다. F학점이 나온 것이다. 친구들은 ‘원숭이한테 가르쳐도 그것보다 낫겠다’고 놀려댔다. 하지만 페루에서 1년을 보내고 돌아온 지금은 스페인어에 누구 못지않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스페인어 과목은 A+를 받게 되었다. 스페인어 외에 중남미의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할 때 사고가 깊어지고 역량도 성장한다. 페루에서의 1년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 모두가 새로운 일이었다. 어떤 학자는 ‘페루는 황금 의자에 앉은 거지 같다’고 할 만큼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환경오염·인종갈등·청소년 문제는 중남미 공통의 문제다. 그런 페루를 위해 작게나마 일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정말 감사하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중남미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 전문가로 성장해 있을 내 모습을 그려본다.

사진 | 이규열 (Light House Pictures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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