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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입은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 '국악인들이 인정해준 솜씨'
김민영 기자 | 승인 2013.11.04 10:16

TV드라마 <일지매>, <성균관 스캔들>, <옥탑방 왕세자> 등에서 배우만큼이나 아름다웠던 한복과 장신구를 선보여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은 주인공! 일본에도 한복 가계를 내어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는, 이서윤 한복 디자이너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하다. 고전적 틀에 갇힌 한복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조명해, 한복의 모던함과 인물에 맞는 정확하고 화려한 색상의 디자인 스타일로 한복의 세계화에 승부수를 던진다.

   
 
서울 청담동 고층 아파트 사이로 멋스럽고 위트 넘치게 서 있는 ‘이서윤 한복’은 고전미와 현대적 감각, 시골의 향수와 도시적인 외관의 이미지를 집약적으로 담아내어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을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갤러리와 카페, 사랑방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는 그의 작업 공간이 펼쳐졌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찬찬히 둘러보게 하는 디자인적 재미까지 담겨 있어 방문하는 손님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돌 스타만큼이나 말끔한 그의 외모, 여자보다 더 섬세하고 꼼꼼한 손끝의 실력과 몸에 밴 부지런함, 최첨단 장비들과 너무도 먼 기계치인 그를 알면 알수록 그와의 인터뷰는 자꾸 손이 가 밥 한 공기를 뚝딱 하게 만드는 시골 밥상 위에 새콤달콤한 장아찌를 나눠 먹듯 즐거웠다.
지난 9월, 용산전쟁기념관의 ‘세계동물대탐험전’에 전시된 <한복, 동물에 물들다>란 주제로 첫번째 콜라보레이션을 준비하고 있던 그를 다시 만났다. 불 꺼진 전시관에서 밤이 늦도록 작업 중이었다. ‘동물에게 한복이라니?’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현장 속에서 한참을 열중하며 동물에게 한복을 입히고 있는 그의 숙연하고 진지한 눈빛에서 작은 일도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또한 ‘남의 이목과 상관없이 목숨을 걸고 그 일에 매진해서 장인이 된’ 옛 선인들이 사용한 ‘-장이’라는 표현을 사모하는 이서윤 디자이너는, 궁극적으로 한복장이를 고집한다.

타협하지 않는 한복장이 괴짜 예술가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기간 ‘이서윤 한복’을 함께 운영해온 이휘상 대표는 이서윤 디자이너의 사촌 형으로, 그를 ‘괴짜 예술가’라는 한마디로 압축 표현한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한번쯤 끌렸을 흡연과 음주, 가무와는 거리가 먼 그의 삶의 자세를 두고도 하는 말이다. 아침 5시 기상 이후 청소로 시작해 하루를 여는 그는 부지런하다. ‘작은 일을 마음 담아 하는 이가 큰일도 한다’는 그의 삶의 철학이 한복 맞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고객이 주문한 한복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롯이 그의 고뇌의 몫으로 여기며, 고객의 요구에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고객에게 맞는 가장 아름다운 색상과 디자인을 뽑아내는 깐깐함이 있다. 그래서 한복에 투영된 현대적인 미적 감각과 색상 선택이 탁월하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이다.

2013 도쿄-이서윤 <한국의 매력> 한복전, 2013 오사카 한국문화원 ‘이서윤의 한복전’, ‘국립중앙박물관 주관 100주년 기념행사 한복 패션쇼’, ‘문화재청 주관 코리아 헤리티지 패션쇼’, ‘브라질 한인주관 이민 40주년 기념 패션쇼’, ‘서울시 문화사절단 주관 호주시드니 이민 50주년 패션쇼’, ‘오사카 시민축제 ‘미도스지 페스타’ 등등. 일 년에 적게는 한두 번 많게는 서너 번 패션쇼를 여는 젊고 패기 넘치는 이서윤 한복장이는 호주 외무부의 고위 관리가 1년 동안 모든 행사에서 그가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싶다고 했을 때 자부심을 느꼈고 행복해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때도 그의 한복이 거론되었는데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무산됐다.
그와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박애리 명창은 ‘한복계의 앙드레 김으로 유명한 이서윤 디자이너는 한복을 국제적으로 알려 명성을 얻었다’고 말한다.
“안숙선 명창, 임이조 명무, 이호연 경기명창 등 현재 국악계 저명인사들이 모두 이서윤 한복을 최고로 꼽죠.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한복패션쇼를 열고, 일본에도 우리말 이름의 한복가게를 열어 국제화도 추구하고 있어요.”
이미 일본의 틈새시장을 공략해서 도쿄와 오사카에 숍을 낸 그는 일본 열도 속으로 아름다운 한복의 판매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한복, 고객의 스토리에 맞춰 영감을 얻다
화려해서 좋지만 입기에 불편해 보인다는 한복에 대한 편견만큼, 해마다 문을 닫는 한복점이 많을 정도로 관계자들은 전통한복점이 위기라고 말한다. 기모노를 즐겨 입는 일본인들과 달리 한복은 일상복에서 밀려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TV의 사극이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재해석 표현해내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 사계절이 정신없이 바쁜 이서윤 한복장이.
“혼수집은 혼수가 있을 때만 바쁘지만, 저의 경우 비수기 때에는 예술가들이 찾아옵니다. 고객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다보면 순간적으로 영감이 떠올라요. 제작은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 빠르게 몰입해서 하죠. 그렇게 디자인한 것을 보여주면 대부분 만족해서 다음해에 또 찾아옵니다. 그래서 단골 손님이 많아요. 송이버섯의 요리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듯, 의상을 제작할 때도 한 장르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환경에 따라 디자인과 색감을 달리하죠. 세계적인 안목이 한복에 반영될 때, 외국인들도 한복을 입고 싶어 하죠. 제가 만드는 한복은 조선시대의 정체성을 기본으로 다양한 장르를 한복에 아우릅니다.”
그가 다양하게 표현해내는 한복의 장르는 그 자신의 굴곡 있는 삶이 바탕이 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뜨개질부터 바느질, 요리 등 어머니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따라했던 소년 이서윤은 무용수의 꿈을 안고 초등학교 때 무용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자 부모님이 무용수의 길을 반대해 그의 목표가 사라져버렸다. 자주 멍하니 하루를 보내던 그가 유독 TV 앞에 앉으면 국악 프로그램을 즐겨보았고, 음악을 들을 땐 트로트의 가사들이 그렇게 마음에 사무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예고에 진학해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쓴 그의 두 번째 꿈은 가수.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음반 발매를 앞두고 그 꿈도 접어야만 했을 때 그가 겪은 좌절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재다능했지만 결정적인 기회가 무산되어 내적 방황을 한 그가 선택한 것은 바느질. 한국무용 전공 선배의 부탁으로 처음으로 한복을 만들었 때 희열이란! 잡힌 고기가 새로운 물을 만나 원기를 회복하듯 방황하던 그는 한복이란 넓은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는 전 재산 천만 원으로 대학로에 ‘미당’이란 첫 한복점을 내기에 이르렀다. 전통 장신구뿐만 아니라 손수 디자인한 한복을 제작하고 전시하자 각종 사극과 영화, 국내외 패션쇼에서 의뢰가 쏟아지며 2008년부터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굴곡 넘치는 다양한 경험이 오늘을 만들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잘 풀린 것만은 아니었다. 가세가 기울자 장남인 그는 호프집 주방장과 신문배달원으로 일해야 했다. 틈틈이 어머니를 도와 양품점과 꽃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가 물건을 팔면 사람들이 다 사가는 것이다. 한때 육교 위에서 아동복을 판 적이 있는데 그때도 백화점에서 명품을 팔듯 즐거운 마음으로 장사했다. 그러나 믿었던 상대에게 사기를 당하는 뼈아픈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의 수려한 외모와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폰서를 어떻게 받느냐?’며 그의 사정을 모른 채 도움을 청하기에만 바빴다.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고, 쉽게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고생이 피가 되고 살이 되었고, 태풍을 겪으면서 자라니 정말 튼튼해지죠. 천 년 된 나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만 년이 됐어도 뿌리가 깊으면 만 년을 버티지만 천 년이 되어도 뿌리가 부실하면 넘어지는 것이죠. 저는 분노를 쌓기보다 빨리 털어버리는 편입니다. 그렇게 세월에 순응하며 살아온 덕에 지금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미치는 한복을 만들고자
한복을 제작한 지 15년째, 특별히 일러스트나 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 그이지만, 어떻게 하면 고객이 한복을 입고 행복해할지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사고한다. 
“제가 만든 옷이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러오고 나쁜 기운은 물리치는 부적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일을 할 때도 사생결단을 내면서 일하고, 내가 만든 한복을 입고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길 원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고객의 모든 것이 옷에 스며들도록, 그래서 사람과 옷이 하나로 어우어지도록 추구하죠. 특히 배추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배추 겉은 겉절이로 음식 해먹고, 속은 된장에 찍어먹고 버무려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쓰임 받는 것처럼 말이죠.”
공연 때마다 이서윤 한복을 애용하는 트로트 가수 김용임 씨는 지난 8월 독일 가요 무대에서도 그의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서윤 디자이너의 삶과 그의 재능을 독특하게 여기는 그녀는 의상을 통해 내면이 강하게 표현되는 만큼 이서윤 디자이너의 한복이 고전미와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현대적 감각이 잘 어우러진다고 칭찬한다.
특히 그의 한복은 편하고, 화려하고, 색채가 아름다워 한복을 입는 사람의 진정성을 표현해내는 재주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굉장히 부지런하고 성실한 그가 한복의 미를 살리고 장인으로 성숙하길 바랐다.

적극적으로 살아보라
10월, 유독 일본에서 많은 행사를 치렀던 그는 21일부터 이틀간 아랍의 바레인에서 한복 쇼를 열었다. 쇼에서는 한복을 주로 입는 그지만 한복 디자이너가 한복만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살아간다.
국제 무대에 우뚝 선 그는 20대 대학생들에게 젊을 때 의미있는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조언한다. 가난으로 좌절하기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미치고 열정을 쏟아보라는 그는, 자신의 미래는 과거 자신의 역경이 비관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도울 수 있는 즐거움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한다.


글 | 김민영 기자   

김민영 기자  gedicht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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