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오른 그 산을 등정하다"

몸 건강에 신경을 써야하는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등산. 그러나 아직 혈기도 왕성한데 산을 계속 오르고 싶다는 20대들이 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산의 어떠한 매력이 그들의 발걸음을 자꾸만 산으로 옮기게 하는 것일까?

 
 
1938년 보성전문학교 산악부를 시작으로 75년의 역사를 이어온 고대산악회. 역사가 긴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71년, 73년 두 차례 화재로 많은 자료와 장비가 소실되었고, 76년 울산암 낙석사고로 회원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또 오르기 시작했다. 1979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봉을 대학산악부 최초로 등정하였고, 1996년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봉을 오름으로써 18년에 걸쳐 세계 5대륙 최고봉을 등정했다. 당시 고대산악회 선배들은 산이 좋아 산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배들의 오랜 역사를 지키고자
현재 고대 산악회에서 활동 중인 회원은 약 100명. 회원의 활동 기간은 제한이 없어서 한번 가입하면 평생 활동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대학생 산악인으로서 세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배들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정신을 존경하여 지켜나가고자 한다. 같은 뜻을 품었기에 이들은 54학번부터 13학번까지 세대차이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서로 대화가 통한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통해 자신의 가슴 뛰었던 추억을 찾고 간직한다. 정치외교학과 3학년 안다경 씨는 회원 모두가 산을 매개체로 하여 자연스럽게 친목도모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작년 11월 8일에 열린 ‘고대산악인의 밤’에서 회원들이 모여 식사도 하고 대화도 했어요. 신기한 것은, 가장 크게는 6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거예요. 산이 변하지 않고, 산에서 만나고 느끼는 것들도 변하지 않으니까요. 언젠가 60세이신 선배님이 동계冬季 산행에 동행하셨어요. 나흘 동안 설악산을 종주
縱走하고, 6일 동안 암벽을 타는 스케줄이었어요. 설악산 종주 코스가 40년 전에 선배님이 걸었던 그 길과 똑같았어요.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40년이 지난 눈 덮인 설악산과 후배들이 걷는 길이 똑같은 것을 보며 선배님이 크게 감동을 받으신 거예요. 그래서 다음 산악회 회장은 그 선배님이 맡으셨죠.”

 
 
산이 나의 도전정신을 만들어주다
회원들은 금~토요일 이틀간 격주로 북한산 인수봉을 등반하고, 방학 기간에는 장기 산행을 떠나는데 대부분 설악산을 등반한다. 설악산이 종주와 암벽등반 산행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등반을 위해 필요한 기초체력은 자신이 알아서 훈련한다. 자신이 부족한 것을 느낄 때마다 달리기, 팔굽혀펴기, 학교 내에 설치된 인공암벽 오르기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한다. 등반을 앞두고 미리 훈련을 해야 하는 만큼, 등반은 굉장히 어렵다. 발목을 다치기도 하고, 무릎에 상처가 나기도 하며, 겨울에는 동상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산이 높을수록 체력과 열정과 정신력이 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러한 조건들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힘든 것도 계속 부딪치다 보면 어느 순간 재미를 느끼고, 체력이 길러지고, 도전 정신이 생기는 것이다. 산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회원들은 산이 자신에게 준 가르침을 등반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도 적용한다. 산에서 겪었던 고생이 또 다시 찾아오는 고생은 고생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한다.
산에 함께 가는 사람들이 좋아서 산에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회원도 있다.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며 함께 고생했기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으며 정상에 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함께 넘나들며 내 삶에 있어서 함께 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히말라야 임자체 등반
2012년 1월, 고대산악회 회원들은 히말라야에 있는 6,189m 높이의 봉우리인 임자체Imja Tse  등반을 했다. 재학생 8명과 산악인 오은선 대장, 암벽등반 선수 김자인 씨도 함께 했다. 현지인 포터가 짐을 들어주고, 요리사가 밥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등반이 절대 편했던 것은 아니다.
히말라야에서는 자기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들다. 비행기를 타고 등산 시작점인 해발 2,400미터 지점까지 가는데, 겨울이라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 30~40도까지 떨어지고, 산소가 부족해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해발 4,000~5,000미터 정도에 이르면 고산병으로 인해 모든 신체기관이 장애를 일으킨다. 생각이 잘 나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나 배변도 잘 되지 않으며, 잠자는 것조차도 힘들다. 사람마다 순응력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면 몸이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차차 회복이 된다.
설산雪山이라 등산화에 아이젠이 필요한데, 선배들이 사용해온 20년된 것을 착용한다. 한 회원이 점검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등반 중간에 아이젠이 풀려 그만 몸이 한 바퀴 굴렀는데, 바로 옆에 크레바스가 있었다. 당시 일행들은 그 광경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최종 캠프에서 임자체 봉우리까지는 12시간. 그렇게 죽을 고비를 겪으며 오른 정상에서는 희열을 비롯해 수많은 감사함이 올라와 감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상에 서서 지금까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내려다 돌아보았을 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도록 자신을 받아준 날씨, 험준하지만 자신을 끝까지 지켜준 길, 몸은 힘들지만 생명의 무사함을 보며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 왼쪽: (왼쪽부터)홍보의(정보통신대 13학번),김용조(간호학과 13학번), 박용일(생물학과 88학번) 씨가 설악산의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능선을 오르고 있다. 오른쪽: 이정민(경영학과 12학번) 씨가 설악산 울산바위 능선에서 로프를 확인하고 있다.
▲ 왼쪽: (왼쪽부터)홍보의(정보통신대 13학번),김용조(간호학과 13학번), 박용일(생물학과 88학번) 씨가 설악산의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능선을 오르고 있다. 오른쪽: 이정민(경영학과 12학번) 씨가 설악산 울산바위 능선에서 로프를 확인하고 있다.
호우주의보 속에 오른 북한산의 매력
자연과 가까이 하며 계절마다 피어나는 가지각색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산행의 진국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생겨 어렵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 맛볼 수 있다. 
고대산악회 회장 소예니 씨는 신입생 때, 고대산악회 회원이 된 후 첫 산행이 가장 충격이었다고 한다. “북한산을 오르는데, 비가 양동이 물 붓듯이 쏟아졌어요. 북한산 구조대에서 저희에게 호우주의보가 내려 위험하니 산을 내려가라고 했죠. 해발 6,959m인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Aconcagua의 남면南面을 최초로 등반하신 84학번 송재규 선배님이 ‘고대산악회에는 그런 거 없다’고 하셔서 비가 오는데도 암벽을 타러 올라갔어요. 첫 산행부터 죽지 않을 만큼 고생했죠. 그러면서 느낀 산의 매력 때문에 3년이 지난 지금도 산을 오르고 있나 봐요.”
이들은 도전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삶을 배운다. 깜깜한 밤,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는 인생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평소에는 하찮게 여겼던 것들도 산에서는 소중함을 느낀다. 콜라 한 캔, 자두 하나에도 감사를 느낀다. 회원들은 말한다.
“산에 가보면, 산을 자꾸 오르고 싶은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요즘 20대들은 힘든 것을 피하려 한다. 수년 전만 해도 쇠로 된 장비를 들고 산을 오르던 선배들에 비하면 요즘은 장비들이 발달되어 많이 가벼워지고 편해졌다. 그런데도 산에 오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 어느 대학의 산악부 동아리 회원들은 힘든 것을 견디지 못해 회원이 두 명만 남았다고 한다. 고대산악회는 동아리를 지켜 오신 선배들의 마음을 받아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다. 산을 통해 배우는 소중함과 행복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사진제공 | 고대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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