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이곳 출신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없던 이 외진 마을에 최근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바로 철가방극장이 생기면서부터다. 2011년 개그맨 전유성이 후배들을 양성할 요량으로 세운 이 개그 아카데미 겸 극장은 단감, 소싸움과 함께 청도의 새 명물로 자리잡았다. 전유성도 못 말리는 끼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20여 명의 젊은이들은 오늘도 숙식을 함께하며 연습과 아이디어 짜기에 몰두하고 있다.

▲ “여러분의 웃음은 저희 단원들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철가방극장으로 오세요!” - 철가방 단원들
▲ “여러분의 웃음은 저희 단원들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철가방극장으로 오세요!” - 철가방 단원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9월의 어느 토요일, 서울에서 동대구까지 KTX로 2시간, 동대구에서 차로 갈아타 1시간을 더 달려 청도의 코미디 철가방극장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공연을 30분 앞둔 10시 30분, 단원들 대부분은 안에서 리허설과 음향·조명장비 점검에 한창이었다.
극장 건물은 뒤편의 나지막한 산들과 저수지와 어우러져 전원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문득 극장건물 옆 벽면에 붙은 장식물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뚜껑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짜장면과 탕수육, 단무지와 양파 그리고 고춧가루와 젓가락까지…,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음식을 드리려고 헐레벌떡 달려오다 넘어진 철가방의 모습 그대로였다. ‘철가방극장’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대한민국 어디든 배달되는 짜장면처럼 개그도 배달이 가능하다’는 콘셉트 때문이다.

철가방처럼 ‘뚜껑 열리는’ 세계 유일의 4D극장
1960년대 초등학교 교실 모습을 본따 지어진 휴게소 벽에는 ‘배워서 남 주자’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개그사관학교인 이곳의 교훈에 해당한다.
‘철가방극장 공연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멀리 이곳까지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게 정말일까?’ 기자의 의문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날 공연도 서울, 강원 강릉, 경북 안동, 전남 보성 등 각지에서 몰려든 관객들로 56석의 소극장이 꽉 찼다. 경남 고성에서는 38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버스를 대절해 단체관람을 오기도 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거의 매일 전 좌석이 매진됩니다. 1년에 약 2만 명의 관객들이 철가방 극장을 찾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예약을 해야 하는 줄 모르고 왔다가 좌석이 없어 입맛을 다시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 역시 2만 명 정도라는 점입니다. ‘이런 시골 작은 공연장에 굳이 예매가 필요해?’ 하고 왔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지요.”
철가방극장의 공연기획 담당 김준오 실장의 말이다. 이윽고 11시, 기대하고 고대하던 공연이 시작됐다. 
“사는 일이 괴롭고 짜증나면 개그도 배달해 드립니다~♩ 개그는 곱빼기로 드립니다~♬”
신명나는 춤과 노래를 시작으로 20여 명의 단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연들이 선을 보인다. 몸빼바지에 콧물분장과 할머니가발, 물벼락에 침세례를 받는 것도 관객을 위해서라면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쉴 틈 없이 뛰고 구르는 젊은이들의 열성과 순수함이 배꼽을 빠지게, 박수가 터지게 한다. 숙련된 마술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가 하면, 날렵한 춤솜씨로 탄성을 자아내게도 한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 <철가방 유치원 학예회> 코너의 주인공 미미가 철가방극장의 비밀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철가방은 뚜껑이 열리죠? 저희 철가방극장도 뚜껑이 열린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대쪽 벽이 열리며 극장 뒤쪽의 저수지와 야산의 모습이 드러났다. 바깥 풍경이 무대배경으로 연출된 것이다. 철가방극장의 비밀은 이뿐만이 아니다.
“있잖아요. 사실은 제가 감기에 걸렸어요. 에에에엣취!” 미미가 재채기를 하자 객석 앞쪽에 설치된 분무기에서 찌익 하고 물이 뿜어져 나온다.
“으악, 이게 뭐야!” 전혀 생각지도 못 하게 물세례를 받으면서도 관객들은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무대 앞쪽에는 분수가 설치되어 있어, 비가 오는 장면이나 소방관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도 얼마든지 연출이 가능하다. 전유성 대표가 ‘세계에서 가장 넓은, 그리고 단 하나밖에 없는 4D극장’이라며 자랑이 대단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신없이 웃다 보니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냐?’ 싶게 1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사실 비가 오는 날이면 단원들은 평소보다 더욱 긴장하게 된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관객들의 기분이 다운되고 재미있는 대목에서도 웃음이 잘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섰을 때, 관객들의 표정도 날씨도 모두 맑게 개어 있었다.

 
 
시골 소극장이 일궈낸 작지만 아름다운 기적
청도에 철가방극장이 들어선 것은 2011년의 일이지만, 그 씨앗은 이미 그보다 10년 전에 뿌려져 있었다. 평소부터 코미디 전문 공연팀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던 전유성은 2001년 11월, ‘코미디시장市場’이란 이름을 내걸고 인터넷으로 60여 명의 개그지망생을 모집했다. 그리고 이 젊은이들을 2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조련하며 프로개그맨으로 길러냈는데, 우리에게도 친숙한 황현희, 박휘순, 신봉선, 김민경 등이 그들이다. 이렇게 키운 제자들을 데리고 전유성은 전국을 누비며 개그공연을 펼쳤다.
2기 단원은 지난 2010년 3월에야 모집했다. 그즈음 전유성은 서울 생활을 접고 청도에 정착해 까페 겸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참이었다. 그런 그에게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자문 요청이 들어왔다. ‘청도에 댐이 들어서면서 지급되는 주변지역 지원사업금을 어떻게 써야 지역발전에 보탬이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서울에 살 때부터 코미디 전용관을 열어 후배들을 키우고 싶었던 전유성은 코미디 극장을 지을 것을 제안했고, 이는 뜻밖의 행운으로 이어졌다. 농림수산부에서 주최한 농어촌지역 발전 아이디어 공모전에서도 3위로 입상하여 포상금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극장 건립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정부지원금으로 극장을 짓다 보니,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절차가 수시로 발목을 잡았던 것.
숱한 우여곡절 끝에 2011년 5월, 드디어 철가방극장이 문을 열었다.
‘대중교통이라고는 하루 버스 여섯 번 드나드는 게 고작인 외지에 누가 오겠냐?’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극장은 개관과 함께 대성황을 이루며 순식간에 청도의 명소가 되었다. 외지에서 오는 관객이 얼마나 많았던지 극장 앞에 왕복 2차선 도로가 새로 깔렸다. 길이 좁아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비켜줄 곳이 없어 난감할 만큼 낙후된 곳이 철가방극장 덕에 몰라보게 발전한 것이다. 지금까지 공연횟수는 약 1,000여 회, 그 중 매진이 되지 않은 것은 10여 회에 불과하다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무료 개그 아카데미
현재 철가방극장에서는 코미디시장 3기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공연을 하고 있다. 휴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오후 2시, 주말 및 공휴일에는 오전 11시·오후 2시·오후 5시 등 세 차례 공연이 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역시 세 차례 공연을 한다. 지난 추석 연휴에도 닷새간 하루 세 번씩 공연을 소화했다. 어린이나 청소년 관객이 몰리는 방학에는 하루 다섯 번씩 공연이 잡히기도 한다.
공연이 없는 시간은 순전히 개그 트레이닝 시간이다. ‘원조 개그맨’ 전유성을 비롯한 강사들로부터 아이디어 창작법, 코미디연기, 신체연기 등의 개그노하우를 전수받는 한편 댄스, 저글링, 마술까지 배운다. 여기에 이영자, 조혜련 등 외부에서 초빙한 연예인들의 특강이 어우러진다.
매일 반복되는 공연과 연습, 아이디어 회의 때문에 힘들 법도 하지만 단원들의 얼굴에서는 피곤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곳까지 우리를 보러 와 주신 관객들께 최고의 공연으로 보답하겠다’는 열정과 생기로 가득 차 있다. 단원들의 근심걱정을 남몰래 해결해 주는 전유성 대표를 향한 존경과 ‘자랑스런 철가방 단원’이라는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철가방극장은 개그지망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배움의 장이다.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대도시 공연장의 경우 따로 개그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모든 것을 혼자서 터득해 나가야 한다. 단원도 많아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반면 철가방극장에 오면 무대에 설 기회가 많다. 주변에 유혹거리도 없어 개그에만 전념할 수 있다. 더구나 철가방극장은 별도의 오디션도, 자격제한도 없다. 교육도 전액 무료로 이뤄진다. 입장료 수입으로는 극장을 운영하기에도 빠듯하기에 단원들의 숙식에 필요한 비용이나 용돈, 강사료 등은 전 대표가 본인의 강연료와 방송출연료로 충당하며 후배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후배들이 그의 마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웃음 없는 삶은 기름기 없는 닭가슴살을 먹는 것마냥 퍽퍽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5천만 국민 모두에게 건강한 웃음을 배달하는 그날까지! 어디든 달려가는 철가방의 모습을 그려본다.
“안녕하세요? ^^ 지금 갓 나온 따끈따끈한 개그 배달 왔습니다!”


 
 
내가 한 일은
그들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철가방극장 대표 전유성 

전유성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개그계의 대부代父다. ‘개그맨’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어내는가 하면, TBC(옛 동양방송)의 <개그 콘테스트>, KBS의 <개그콘서트>는 모두 그가 탄생시킨 작품들이다. 후배 개그맨을 양성하고자 출범한 사단법인 청도 코미디시장의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철가방 단원들 사이에서 ‘시장님’이란 애칭이자 존칭으로 불린다. 시장市場이 시장市長이 된 셈이다.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따뜻하고 깊은 전유성 시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비私費로 단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용돈까지 지급하며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단원들 사이에도 ‘전유성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격려와 지원을 받았다’는 미담이 많다.

재능 있는 후배들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은 선배의 의무다. 더구나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 하나만을 품고 이 외딴 시골까지 와서 지내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서울 등 대도시로 가면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포기하고 왔으니 신경 안 써주면 안 되지 않겠는가.

서울에 극장을 열었다면 더 잘되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그럼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을지 모른다고들 하지만, 이게 어디 돈 때문에 하는 일인가. 게다가 서울에 극장을 연다고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 애초에 청도 같은 농촌에 극장을 열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할 작정이었다. 개중에는 다짜고짜 극장표부터 끊은 뒤에 ‘그런데 여기 뭐 하는 곳이에요?’ 하고 묻는 관객들도 있다. 철가방극장이 재미있다는 소문만 듣고 온 것이다. 공연예매 사이트인 티켓링크에서도 1년 중 45주는 예매율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2~4위를 합친 것보다도 높다.

본인이 키운 후배들이 방송에서 활약하고 인기를 얻으면 흐뭇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길러냈다’ ‘키웠다’ ‘밑에 데리고 있었다’ 등의 표현을 쓰지 않는다. 내가 한 일은 그들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흐뭇할 게 뭐가 있나, 다 본인들이 잘해서 성공한 건데. 그런 것에 연연하면 이 일 못 한다.

철가방극장 출신 중 17명이 방송 3사 개그공채에 합격했다.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이곳에서 배운다고 다 개그맨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본인이 개그에 소질이 있는 줄 알고 왔다가 자기 실력을 알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마흔 넘어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끝까지 매달리다가 방향을 바꾸어 작가나 PD, 기획자가 되기도 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분야를 무작정 붙잡고 늘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빨리 포기하는 게 현명할 수 있다.

단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이 있다면?
팀워크와 성실이다. 개그는 절대로 튀는 한 명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김병만의 개그 <달인>을 예로 들어보자. 김병만 혼자서는 절대로 재미있는 개그가 완성될 수 없다. 별 볼 일 없이 늘 구박만 당하는 노우진도 있어야 하고,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를 잘 이끌어 나가는 류담도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도 있고 연기도 잘하는 최양락 같은 사람, 아이디어는 변변찮지만 연기를 잘해서 캐릭터의 맛을 살리는 임하룡 같은 사람, 아이디어는 뛰어나지만 연기에 서툰 나 같은 사람 등 모두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 그 코너가 빛이 나고 스타도 탄생하는 법이다. 튀는 사람은 본인은 돋보일지 모르나, 코너 전체는 무너지고 만다.
개그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인격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반짝스타’는 될 수 있을지언정 결국 동료나 연출자로부터 외면받게 되고 금방 사라진다. 살면서 보니, 선배들도 재능이 반짝이는 후배보다 성실한 후배를 쓰고 끌어주더라.

환갑 넘은 나이에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로 소통한다니 놀랍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는가.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했던 일만 하고 가 봤던 곳만 갈 수 있나? 안 해 본 것을 하는 게 재미가 있지. 그게 내 취향이고 체질인 성 싶다.

40년 넘게 개그라는 한 우물을 팠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인가.
어떤 문제를 놓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은 아마추어다. 반대로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은 프로다. 문제야말로 아이디어의 원천인 셈이다. 길거리에서 광고카피 하나를 보더라도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생각해 보고, 장사가 안되는 가게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돈 안 들이고 대박집으로 만들까?’ 궁리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 철가방극장을 향한 바람이 있다면.
이런 극장이 적어도 한 도道에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철가방극장 출신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으면 한다.

글 | 김성훈 기자    인물사진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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