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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양준모, '허물을 벗어내듯 새로운 역할의 옷을 갈아입다'
김민영 기자 | 승인 2013.10.04 11:41

지난 호에 취재한 이유리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배우 양준모를 만났다. 어떤 배우보다 자신의 결점을 연기에서 잘 녹여낸 배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올여름 뜨겁게 기립박수를 받은 <스칼렛 핌퍼넬>에서 야비한 야누스적인 쇼블랑의 표현을 잘한 양준모.
그는 연기마다 자신을 비워내고 또 다른 역할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뮤지컬 공연시간은 편당 140분. 그 안에 일어나는 한편의 극적이고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 자연스럽고도 관객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연기력, 시선을 끄는 외모, 무대 위에서 입는 그들의 화려한 의상 등을 보며 관객들은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꿈꾼다. 숨이 막힐 만큼 박진감이 넘치는 뮤지컬 한 편이 주는 감동과 전율은 깊다. 오페라에서 파생되었으나 오페라와 달리 대중을 위해 성장해온 뮤지컬이기에 그 생명력과 파장은 강하다.    

   
▲ 뮤지컬을 10년간 해온 배우 양준모는 <스위니 토드>, <오페라의 유령>, <영웅>, <지킬 앤 하이드>, <아르센 루팡>, <스칼렛 핌퍼넬> 등 21편의 작품에서 강한 인물 캐릭터를 선보였다. 선이 굵은 연기로 극중 긴장감을 잘 이끌어가는 매력적인 배우이다. 2012년 제1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어워드 연기예술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은 그는 소년원의 청소년들에게도 뮤지컬을 가르쳐서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아르센 루팡>의 루팡, <스칼렛 핌퍼넬>의 쇼블랑.
뮤지컬 장르에서 선이 굵은 인물을 연기해온 배우 양준모의 외모에서 풍기는 남자다움 때문일까, 성악을 전공한 그의 바리톤 목소리 덕일까. 그동안 그는 무게감 있는 인물의 역할을 많이 표현해왔다. 올 여름 유난히 뜨겁게 기립박수를 받았던 <스칼렛 핌퍼넬>. 그중 쇼블랑이란 인물은 대본상 철저히 악역이었지만, 대본을 받아든 배우 양준모는 인간 내면의 깊은 갈등을 연구한 덕분에 쇼블랑이란 인물을 재탄생시킨다.
“쇼블랑을 1차원적인 악역이 아닌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철저히 자기만의 착각을 지닌 인물로 표현해냈죠. 인간의 내면 깊이 담겨있는 인간 본성의 모습을 드러내서 사람들이 쇼블랑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생각했어요.”   

에피소드1 우연, 사람을 움직이는 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성악을 전공하던 양준모는 유학을 준비하며 오페라를 공부하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뮤지컬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겼는데 경험 삼아 응시해본 오디션에 덜컥 합격한 이후 그의 인생은 새로운 세계로 돛을 올린다.
사실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뮤지컬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단순히 경험해보고자 <금강>이란 첫 작품에 출연하게 된 그는 연극계의 쟁쟁한 분들과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을 만났다. 부산 사투리도 고치지 못하고 대사도 제대로 읽지 못한 그였지만, 주연 배우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투입되는 대역을 맡게 된다. 24살의 패기 넘친 그는 작품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렇게 준비한 뮤지컬 <금강>은 2004년, 북한 평양 무대에 올릴 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기대에 부풀었지만, 갑자기 남북관계가 소원해져 한국에서 공연한 이후 북한 공연은 취소되었다. 하지만 다시 남북 관계가 좋아지자 공연을 준비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미 다른 작품에 선배 주인공이 출연 중이라 빈자리에 양준모가 서게 되었다. 절대 웃지 않는다는 평양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한 공연의 힘. 오페라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객석의 반응에 양준모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뮤지컬 공연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해 보기로 결심하게 됐죠.”

에피소드2 선택, 소극장에서 서다
굵직하고 화려한 인물을 연기해 온 그가 폭풍 성장을 해온 것만 같아 보이지만, 그 역시 긴 터널을 묵묵히 지나는 시간이 있었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 그는 새롭게 오디션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는 그에게 연기를 지도해주거나 발성을 조언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댄스 오디션을 보러 가서도 양복을 입고 안무를 추는 실수를 범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에게 ‘미친놈’이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오디션에 대해 무지했던 그 모습이 오히려 튀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조금만 연기를 잘해도 금방 소문이 나지만 그 당시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26살 양준모의 외모는 40~50대로 비치는 중후함 때문에 가는 곳마다 ‘연극판에서 오신 선배님’으로 오해를 받았다.
그의 출연작 중에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국 런던의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19세기 190명을 살해한 어느 이발사의 실화를 다룬 내용으로 한국에서보다 영국에서 인기가 높았다. <스위니 토드>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뮤지컬의 역사가 깊은 영국인들은 그의 연기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스위니 토드> 작품 이후 양준모는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커졌고 연기를 제대로 배우려고 한 달 동안 개인 지도를 받기도 했지만, 뭐든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단 걸 깨닫고 소극장으로 뛰어든다. 
“사람들은 제가 대극장에서 좋은 작품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지만 저는 B급 소극장에서 호러 뮤지컬에 도전했죠. 저는 춤을 잘 못 추는데 뮤지컬 배우에게는 안무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피를 떡칠하고 코미디를 하며 춤을 춰야 하는 뮤지컬을 선택했죠. 1년간 소극장을 돌며 연극과 뮤지컬 등 다양하게 시도해보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예술의 이론적인 최종 목표가 자연스러움인데, 그 자연스러움을 어떻게 습득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꼈고, 감사하게도 저는 현장에서 자연스러움을 터득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는 현대음악처럼 난해한 작품으로 한 작품 안에 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현장 공부가 아주 많이 됐습니다.”
뮤지컬은 노래, 연기, 안무 3가지를 총체적으로 표현해내야 하는 종합 예술이다. 관객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관객의 무관심은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배우에게 존재감의 상실을 겪게 한다. 배우치곤 크지 않은 키, 여느 배우처럼 외모만으로도 호감을 주는 꽃미남의 부류가 아니라는 양준모는 소극장의 무대 위에서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관객 앞에 자신을 올려놓고,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 노래 톤이나 연기력을 찾아왔다. 그렇게 소극장에서 강한 성장통을 겪으며 몸소 무대 위에서 섬세한 연기를 습득한 후 <오페라의 유령>의 오디션에서 팬텀 역에 뽑혔다.  

   
▲ 1.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2. <아르센 루팡>의 루팡, 3.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4.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5.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6.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의 쇼블랑을 열연하였다.

에피소드3 배우는 끊임없이 연습한다

양준모는 팬텀 연기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어떤 연기자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외국의 경우 평생 팬텀 연기만을 하는 연기자도 있을 만큼 대가도 많다. 이미 200회가 넘는 팬텀 역을 소화한 그이지만 같은 공연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표현해내야 하는 어려움 앞에 그는 매력과 가능성을 찾아내야 하는 길이 오롯이 연기자 자신의 몫인 것을 깨닫는다.
배우 양준모는 그렇게 다양한 무대와 배역을 경험하면서, 현장에서 몸소 체득한 덕분에 오히려 지금은 비열하고 야비한 인간적인 이미지의 인물의 내면을 승화시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뮤지컬에서 감정선을 세세한 부분까지 살리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귀를 열고 반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뮤지컬은 대사에 음정을 붙여 노래하기 때문에 배우가 감정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래로 하는 연기력이 뮤지컬 캐릭터를 살리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 열쇠를 찾기 위해 그는 매 순간 마음을 실어 노래 부르며, 마음을 담아 수천 번 연습을 한다.
“배우는 특히 음악적인 연습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뮤지컬 배우에게도 음악 레슨이 필수이죠. 또 중요한 것은 체력인데 꾸준히 등산과 자전거를 타며 체력관리를 하고 있죠.”

에피소드4 살아있는 배우는 자신을 비워내야 한다
관객은 때로 변덕스럽다. 연기자 자신이 잘한 것 같아도 관객의 반응이 없는 경우도 있고,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 관객이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변수의 관객을 아우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이 그의 욕심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그는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내버려 둔다.
“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집니다. 주로 곡 해석이 잘 안 된다거나 발성을 바꿔야 할 때 연습을 많이 하기보다 다시 처음부터 생각하죠. 풀면 더 인위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잠긴 목을 풀거나 감기 걸려서 호흡이 안되는 날 기술적으로 풀 수 있지만, 감정적인 것은 대개 다루기 힘들어요. 굉장히 좋지 않을 일이 생겼는데 공연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그 일을 풀 수가 있겠어요. 그날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거죠. 외국의 경우는 배우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어서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정신과 치료를 하죠.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아직 미흡합니다. 그래서 배우가 마음의 관리를 해야 하죠. 처음 <스위니 토드>
에서는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기도 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너무 날카로워졌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 이후 다른 작품들은 2주만 지나도 잊어버리고 대사까지 기억 못 할 때가 많아요.”
이제까지 대사 한 번 틀린 적이 없지만 열렬히 몰입했던 배역도 2주가 지나면 잊어버리는 그는 그 인물의 옷을 벗어버린다. 배우 양준모는 때가 되면 뮤지컬에서 쌓은 연기력을 바탕으로 오페라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그는 더 나아가 장애를 가진 인간의 심리를 다룬 역이나 옆집 아저씨 같은 인물도 도맡아서 표현해보고 싶어 했다. 그는 더 깊은 인물을 연기하려고 더 넓은 영역으로 옮겨갈 준비 중이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운명이란 너무도 작은 기회의 선택에서 시작되고, 인간이란 앞날에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가 오랫동안 무대에서 터득한 것은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할 때 허물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처럼 탈피하는 과정의 연속이란 것. 그는 그런 과정에서 버리고 떠나는 연습을 하며, 인생의 의미와 살아가는 이유를 깨닫고 순간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 앞에 감사를 느낀다.


글 | 김민영 기자   사진 | 이규열 기자 

김민영 기자  gedicht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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