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진 씨의,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

이집트 해외봉사를 시작으로 요르단에서의 유학, 레바논에서의 파병생활을 하며 아랍국가에서 3년이란 시간을 보낸 백두진 씨. 그곳에서 무엇이 보람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는 그는 주민들과 같이 호흡을 나누고 우호관계를 성립하는 일을 하는 평화유지군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아랍국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와 매력을 느낀 저는 통역사가 꿈이었습니다. 대학교 전공 선택을 앞두고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랍 국가의 언어인 아랍어를 배우기로 결정했어요. UN 6대 공용어 중 하나인 아랍어는 중동에 사는 16억 인구가 종교언어로 사용하고 있어요. 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이 석유나 천연가스 등 자원이 많은 중동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에도 개입하려고 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만큼 중동에 관심이 많지 않아요. 아랍어를 전공하는 대학교도 아주 소수여서 전공자들끼리 한 다리 걸치면 다 알 정도죠. 그래서 전 아랍권 시장을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랍어를 배움으로써 아랍 국가를 전전하게 된 셈이죠.

이집트로 해외봉사를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부푼 꿈을 안고 아랍어를 전공했지만, 아랍어는 굉장히 어려웠어요. 동사, 주어, 목적어 순서의 문장 구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하는 글쓰기 순서, 지렁이 기어가는 모양의 글씨체, 게다가 한 나라 안에서도 수많은 사투리가 사용되는데, 사투리는 알파벳 발음까지 달라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어요. 그렇게 아랍어에 대해 좌절하고 있을 때, 해외봉사는 언어도 배우고, 일상에서 벗어나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배낭여행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죠. 저는 망설임 없이 아랍어를 사용하면서도 찬란한 문명의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이집트로 갔습니다.

 
 

자신이 느낀 이집트를 소개해주세요.
이집트 땅의 95%는 사막입니다. 그 위에는 수십만 개의 돌이 쌓여 이루어진 거대한 무덤인 피라미드가 있는데, 그 중 80기가 알려져 있어요. 벤츠와 낙타가 같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죠. 나일강이나 오아시스 주변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주로 농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 나가요.
이집트는 수천 년 전 찬란했던 이집트 문명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곳이에요. 도시 룩소르에는 사람 키의 10~15배 높이인 람세스 상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이집트 왕조들의 신전이 많아 영화 <이집트 왕자>에 출연한 느낌이 들었어요. 거대한 돌을 옮기고 정밀하게 조각한 옛 이집트인들의 과학 기술과 지혜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실감할 수 있었죠.

이집트에서 무엇을 체험했나요?
이집트 사람들에게 한국은 삼성, 현대, 기아 등 자동차 산업과 기술이 발전된 나라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제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죠. 아인샴스 대학교에서 아카데미를 열어 한국어, 컴퓨터, 요리 등을 가르쳤어요. 태권도 아카데미에 참여한 아이들은 도복을 입고 동양무술을 배우는 재미에 이소룡을 곧잘 흉내내곤 했어요. 이집트 학생들과 서로의 흥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마음도 교류했어요. 다이애나라는 친구는 제게 자신의 어려운 집안 사정도 이야기해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도 했죠. 마음을 나눈 이집트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페이스북으로 연락하면서 지낸답니다.

해외봉사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해외봉사를 하며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게 됐죠. 포기하고 싶었던 언어의 벽을 뛰어넘으면서 어렵게만 생각했던 아랍어가 이제는 재미있고 친근해요. 해외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수출 박람회, 기업박람회 등 각종 박람회를 다니며 아랍어 통역 자원봉사와 기업의 법조공문이나 진술서, 아랍어 방송 등을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아랍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아랍어를 쓸 기회가 많아요. 이집트를 다녀오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죠.
앞으로는 언어뿐만 아니라 또 다른 부담과도 부딪쳐보고 싶어요. 그래서 2010년 8월부터 1년간 요르단에 있는 야르무크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며 아랍어를 더욱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했고, 2012년 2월부터는 레바논에서 1년간 UN 레바논 평화유지단 아랍어통역사로 근무하며 파병 생활을 했어요.

 
 

파병 생활은 어떠했나요?
2006년도에 일어난 레바논-이스라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의 남부지역을 복구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환경이 열악했죠. 게다가 저희가 머물렀던 곳이 테러 집단인 헤즈볼라 단체가 활동하는 지역이여서 대량 살상 무기나 화학 무기의 사용 조짐이 보이면 바로 방독면을 써야했어요. 그러나 저는 그다지 두렵거나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군 생활이 통역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죠.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파병 생활을 했어요.
레바논에서 한국부대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 및 수의진료를 해주고, 부족한 교육시설에 칠판 및 책걸상을 지원하며, 길이 없는 곳에는 도로를 닦고, 테러 위협세력에 대한 작전활동을 펼치기도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주민들에게 다가가 아픔을 달래준 친한화 활동이 기억에 남아요. 그들과 함께 태권도, 난타와 같은 공연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베풀면서 주고받는 행복을 느꼈어요. 서로의 마음이 교류가 되면 혼자만의 슬픔에 잠겨있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레바논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데 그야말로 가족 같은 사이죠.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어떻게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나요?
앞으로 저는 레바논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위태로운 정치로 언제든지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필요한 곳이거든요. 저는 타인과 마음을 나누며 보냈던 지난 시간들이 매우 행복하고 소중했어요. 앞으로도 저 스스로가 보람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현재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중동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중동지역 전문가로 성장하여 꼭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학교에서 중동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방면에 걸쳐서 배우기도 하지만, 저는 평화유지군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에 헤즈볼라나 현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해외봉사를 시작으로 유학, 파병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진 것을 스스로 느끼는 백두진 씨.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자신의 길은 도움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레바논을 위해, 더 나아가 국제사회를 위해 헌신할 그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진행 | 홍수정 기자   디자인 |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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