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물밀 듯 밀려오는 허무함
본과 4학년, 2년간의 휴학까지 포함해 6년째 대학생활이었다. 1학기를 시작하며 내 대학생활에 회의감이 몰려왔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원했던 교환학생과 해외연수도 다녀왔지만 왠지 부질없이 느껴졌다. 허무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던 것일까?’ ‘무엇을 위해 살았던 것일까?’ 보장된 미래와 성공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젊은 마음을 둘 곳이 없어서 언젠가부터 알게 모르게 헤매고 있었다.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봉사활동이라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됐다. 처음 학교 게시판에서 굿뉴스코 해외봉사 포스터를 봤을 땐 왠지 내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구 IYF 문화박람회를 방문한 후 관심 있던 북유럽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다’는 핀란드 10기 선배의 말도 큰 용기를 복돋워 주었다.

▲ 가정집 홈스테이 중 현지 친구들과 함께
▲ 가정집 홈스테이 중 현지 친구들과 함께

내 자신과 만나고 싶었다
우리 집은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했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 아래에서 나는 어려서부터 ‘내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응석은커녕, 현실에 수긍해 열심히 살려는 마음을 가지다보니 철저히 ‘내 앞가림’에만 집중했다. 열심히 공부하며 장학금을 났고 필요한 돈은 아르바이트로 벌어서 썼다. 크고 작은 고민이 많았지만 친구들이나 부모님께 쉽사리 털어놓을 수가 힘들었다. 작은 문제들은 상의를 해도, 마음 속 깊은 의문들과 큰 문제는 혼자 끌어안고 끙끙거렸다.
점점 외골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리지도 못할 뿐더러 소통하지도 못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또 한편 마음으로는 ‘다 그렇게 사는 거지’ 하며 이런 내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랑을 배우는 시간
굿뉴스코 해외봉사 단원으로 핀란드에 왔을 때 처음에는 현지인들과 소통하기가 많이 버거웠다. 핀란드에서는 교육봉사가 많아 매주 3차례 한국어 강좌를 연다. 나는 한국문화를 설명하는 일을 맡았다. 한국문화를 영어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부족한 영어 실력이 너무 부끄러워 핀란드 학생들과의 대화를 부담스럽게 여겼다. 현지학생들이 이해하고 불편함 없이 들어줘도 내 자신에 대해 스스로 매이는 경우가 많았다. 묻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게 많은데도 속으로만 되뇌며, 입 밖으로 내놓질 못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나를 계속 붙들고 괴롭혔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핀란드 여름캠프’ 행사를 맞았다. 여름캠프는 굿뉴스코 핀란드 지부에서 진행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1달간 캠프를 준비하며 외부 손님들을 초청하기 위한 공연홍보활동을 했는데 핀란드 현지 여학생 3명도 함께했다.
문제는 일정변경이었다. 팀 멤버 전원이 함께 회의한 내용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변경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한 번, 두 번…. 틀어지는 상황들 앞에 핀란드 아이들은 점점 열의를 잃어갔다. 나를 포함한 굿뉴스코 단원들은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해 정신이 분주했다.
마음의 대화가 제외된 상태에서 ‘소통’ 없이 하는 일은 ‘삐그덕거리기’ 일쑤. 둘째 날, 드디어 곪은 부분이 터졌다! 두 개 공연 연습을 동시에 하며 핀란드 학생들과 봉사 단원들이 언쟁을 벌였다. ‘이참에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자’ 싶어 다들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는데, 한참 후 깨달은 건 상황이 우리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마음에서 커진 부담이 눈앞의 형편까지 짓누르고 있었다. 그날 공연은 캠프 중 관객에게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과정상 문제가 많았지만, 너무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열정적으로 춤추는 멤버들의 모습 앞에 관객들은 환호했고 우리들 마음속에도 잊지 못할 추억이 쌓였다.   
지금은 핀란드 친구들과 정말 많이 친해졌다. 이제는 눈이 마주치면 서로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장난을 치는 사이가 됐다. 내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행사준비와 연습을 하며 ‘이 정도면 되잖아’ 하는 마음으로 내 일만 생각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힘들어도 소통을 나누지 않았다. 내 문제는 내가 혼자 끌어안고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내가 핀란드 친구들과 대화하기를 두려워했던 것도 언어의 장벽보다 소통하지 않는 마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부족한 점을 인정하니 마음이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 마음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던 2013 여름캠프 중
▲ 마음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던 2013 여름캠프 중

행복을 알게 해준 핀란드
굿뉴스코는 해외봉사 프로그램이 아니다. ‘자원봉사’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남을 위하는 봉사 속, 진정한 행복 찾기’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나는 이 곳 핀란드에서 나의 부족함을 넉넉히 감싸주는 현지인들의 마음과 만났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에서 나를 끊임없이 배우며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라는 굿뉴스코 슬로건이 있다. 나는 젊음을 팔기도 전에 핀란드 사람들이 주는 사랑을 아주 듬뿍 받은 행복한 사람이다.

글 | 박지현 (영남대학교 국제통상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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