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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가르쳐준 잔혹한 유학 체험
김양미 기자 | 승인 2013.06.19 15:59

2008년 중학교 3학년, 한창 철부지였던 나는 홀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확고한 유학 목적과 성공에 대한 확신도 없이 나의 조국 한국에서 허둥지둥 멀리 벗어나고 있었다. 아직 진행 중인, 결코 녹록지 않은 나의 유학생활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글 박주원


   
 

내 인생의 제2막을 열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갔던 첫 번째 유학생활에서 선생님과 모든 친구들은 이방인인 나에게 항상 친절을 베풀었고 관대하였다. 영어 문맹이던 초등학생 어린 나에게 사랑과 인내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에 대한 추억과 학생이 주인공인 미국의 교육환경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은 이후 한국의 교육환경과 융화되기를 거부하게 하였다. 학생들의 외모와 태도, 그리고 생각마저도 모두가 똑같기를 요구하는 한국 중학교의 현실은 ‘평범’하기를 거부하는 나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특히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내가 신는 양말 색상부터 스타킹의 재질에 이르기까지 색안경을 끼고 관찰하였다. 그런 숨막히는 규제와 마찰로 나의 학교생활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없이 움츠러든 딸의 자신감 없는 학교생활에 충격을 받으신 엄마는 나의 두 번째 미국 유학을 결정하셨고, 그렇게 내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되었다.

‘자유’라는 넓고 넓은 강 뒤에 숨겨진 세계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난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 다이빙을 한 곳은 ‘자유’라는 넓고 넓은 강이었다. 개개인의 다양한 무지갯빛 개성이 존중되는 나라에 나는 모든 것을 의탁하고 맘 편히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유는 달콤했지만 ‘자유’ 뒤에 숨겨진  ‘책임’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미국의 무간섭 문화에 흠뻑 젖어 있는 동안 나의 9학년 성적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다. 거기에 처음 경험하는 기숙사생활도 쉽지만은 않았다. 한 룸메이트는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를 하고, 다른 룸메이트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1시간 간격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매일 열두 개의 도넛을 먹었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내 몸무게도 70kg을 기록했다.
9학년을 마치고 귀국한 나의 모습을 보고 놀라신 엄마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셨다. 기름진 미국 음식에 대한 걱정과 함께 아직은 보호가 필요한 시기임을 생각하신 엄마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를 알라바마에 있는 당신의 대학 친구 집으로 홈스테이를 하도록 옮기고 전학시키셨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으로 더 나빠졌다. 또래 아이들과 떨어진 데에서 오는 외로움과 새로운 학교 및 홈스테이에 대한 부적응은 나를 더욱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엄마 친구 남편은 목사님이셔서 교회의 사소한 활동에 모두 참가하기를 원하셨다.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노라면 시험공부는 물론이고 숙제마저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다. 어떡하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한국에서 걱정하실 엄마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 달여를 고민하다 홈스테이를 옮겨 달라고 부모님께 간청을 드렸다. 항상 나의 말을 경청하시는 엄마는 나의 요청을 이번에도 흔쾌히 받아 주셨다.

오클라호마의 여름과 겨울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클라호마에 있는 엄마의 대학원 유학시절 동기였던 한국인 분 집으로 홈스테이가 정해졌다. 그런데 시작부터 징조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홈스테이할 집 아저씨는 공항에서 첫 상면에서조차도 반가운 기색 하나 없이 집에 가는 내내 묵묵히 운전만 하셨다. 새로운 홈스테이 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빈생활을 했다. 동생과 나에 대한 대우는 극빈을 지나쳐 영양실조에 이를 지경이었다. 밥 대신 자주 먹었던 시리얼은 나의 몸무게를 8kg이나 감소시켰다. 유별나게 덥고 추웠던 2010년의 여름과 겨울을 선풍기도 온풍기도 없이 지내야 했다. 겨울에는 창문 옆에 있는 침대가 너무나 추워서, 스웨터와 트레이닝 바지를 두 개씩 입고 양말도 서너 개씩 껴 신고 바닥에서 얇은 여름 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뻣뻣하게 얼어 있었고, 감기는 떠나지 않았으며, 피부 또한 갈라져 몹시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런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 힘들게 한 것은 홈스테이 가족의 냉랭함이었다. 처음 온 날부터 유난히 말이 없었던 그들은 아무리 말을 걸어도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단답형의 대답만을 했다. 계속된 전학으로 겪는 학습 부담과 낯선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느끼는 소외감도 만만치 않았지만 당시에 내가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비교하면 그건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엉뚱한 사건이 전환의 계기가 되다
어렵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차에 전혀 엉뚱한 사건이 터졌다. 그때 나는 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심성이 무척이나 고운 동생은 그 가족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사건이 터진 그날은 하얀 눈과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늦은 밤이었다. 그날도 홈스테이 집 부부는 평소처럼 자기 아들이 켠 히터와 온수를 동생이 켠 것으로 무조건 지레짐작하여 야단을 쳤고, 동생은 법정 한가운데 서 있는 피의자처럼 강압적인 ‘조사’를 받으면서 울고 있었다. 평소에는 침묵하며 모든 걸 인내하던 나였지만 동생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확실한 물증이 있고, 또한 이역만리에서 피붙이 어린 동생이 견디기 힘든 고문에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누나로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만 하세요! 너무하시네요! 제 동생이 안 했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나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순간 오갈 데 없는 낯선 미국 땅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지만 “네. 그럴게요.”라는 대답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전혀 예측 불능한 상황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침착해졌다. 밤 열한 시 반에, 엉엉 우는 동생을 진정시키고 같은 학년의 유일한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해서 그 친구의 미국인 홈스테이 집에 잠시 기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아직도 세상은 따스했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는 다행히 친구의 미국인 홈스테이 집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독실한 크리스천인 미국인 부부는 우리 남매의 딱한 사정을 알고는 따스한 사랑으로 감싸주셨다. 우리 남매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음식과 정성이 가득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간 이국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감내하기 힘든 고통과 오버랩되었고, 17세 어린 소녀는 복받쳐 엉엉 울고 말았다. 미국인 부부와 일주일 남짓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에 느낀 감탄과 감사의 울림은 깊고 강했다. 당시 나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위해 내 생을 바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는데, 아직도 그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나의 새로운 둥지가 정해졌다. 우리 학교 국제학생 입학을 담당하는 마커스 선생님께서 선뜻 동생과 나를 돌보아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삿짐 정리를 하다 말고 감격에 겨워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지금껏 절망만 하다가 갑자기 사랑을 받게 되자 한편 혼란스러웠다.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만 받다가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며 아직도 세상에는 따스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마커스 선생님의 넘치는 사랑은 나에게 절망 대신 웃음을 주었고, 나를 180도로 변화시켰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마음이 나의 가슴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어서 행복하다
한국인 홈스테이 집에서 나온 지 10개월째인 지금도 가끔씩 나는 그때를 생각한다. 비록 생각하기 싫은 추억이지만 그 경험을 교훈삼아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주며,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감사하며 살고자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넓은 세상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덕분에 여러 학교와 홈스테이 집을 옮겨다니며 다른 사람보다 더 먼저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고 이태석 신부를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에서 셔츠 하나로 살아가면서도 행복해 하는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내가 받은 축복은 과분하기까지 하다. 사람은 생각에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상황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짧은 인생을 산 내가 얻은 짧은 경구 하나는 ‘우리 인생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으며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한다.

 

   
 

 

 

글쓴이 박주원(Park Juwon)

현재 미국 오클라호마주 크리스천 스쿨 12학년이다.
요즘 그녀는 내년 대학 입학 준비로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

김양미 기자  dkfjsdkf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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