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 석채화가 김기철

 
 
첨단 예술과 전통 문화가 공존하는 영국 런던에서
지난 3월 중순, 한국의 석채화가 김기철 씨가
개인전을 열었다. 하루 2천 명이 넘는
관람객들을 맞이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게
행복했다는 그를 전라북도 무주 작업실에서 만나
그의 인생과 예술에 대해 들었다.

먼저, 영국 런던에서 성황리에 전시회를 마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전시회에 대해 독자분들께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최근 유럽에 불어 닥친 재정위기 여파로 영국 내의 전시회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석채화라는 신선한 소재로 작품전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반갑게 찾아왔습니다. 런던 남부에서 문화예술극장으로 유명한 페어필드 홀Fairfield Hall의 썬 라운지The Sun Lounge에서 5일간 가진 전시회는 입소문을 타고 하루에 2,000명 이상씩 관람객이 다녀갔습니다. 보통 전시회는 관람객이 혼자 조용히 감상하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데, 제 전시회는 그림마다 도슨트들이 설명하고 작가인 저도 시간마다 설명회를 가지며 그림에 담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관람객들은 동양화풍 그림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돌가루들을 가까이 감상하고 작가의 설명도 들으면서 그림의 내면세계를 정확히 알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평하더라고요.
그리고 세계 3대 박물관 중에 하나인 런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쪽에서 전시기간 중 연락이 와 유화 작품 <명성황후>를 박물관 3층에 있는 한국관에 기증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현재 박물관에서 최종심의 중이라는데, 4월 말에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재 선생님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전통공예테마파크 안에서 작업하고 있는데요, 다양한 색 돌가루는 어떻게 구하고 있습니까?
주로 무주, 영동, 금산, 옥천 등 금강 지류인 적등강 일대의 강돌을 사용합니다. 돌들을 빻아서 가루를 만드는데요, 무거운 쇠절구로 돌을 부수고 체에 걸러서 적당한 크기의 돌가루로 만듭니다. 다음에는 돌가루를 깨끗한 물이 나올 때까지 씻어서 불에 말리며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병에 담으면 그림에 사용할 수 있는 돌가루가 됩니다. 이 과정은 힘이 많이 필요하고 하루를 온종일 쏟아야 하지만 제가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돌가루의 성질들을 직접 느껴야 하거든요.
돌 색깔마다 고유성질도 다르고 출토지도 각각입니다. 석채화 초기에는 알맞는 색을 찾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돌을 구하러 다녔죠. 해외에서 구해오는 돌들도 있어요. 강하게 반짝이는 돌가루인 검정색은 공업용 금강석을 사용합니다. 흰색은 강가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는 차돌인데 배경색으로 뿌리면 하얀 천에 수를 놓듯 반짝임이 아름답습니다. 노란색은 우리나라의 황토를 불에 살짝 구우면 나타나는 색에서 찾았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그을리면 붉은색과 초코색도 나옵니다. 빨간색은 중국에서 공수했죠. 녹색 돌은 초반부터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강원도 전시회에서 한 관람객의 제보로 평생 쓸 만큼의 돌을  가져왔습니다. 하늘색 돌은 지구반대편 남미대륙에서 한 지인이 보내줬습니다. 이렇게 현재 가진 돌가루 색은 무려 3천여 가지 됩니다.

▲ 1. 돌가루가 담긴 병들. 2. 강가에서 가져온 돌들. 이들 모두 자연의 색을 가졌다.3. 석채화는 먼저 화폭에 밑그림을 그린 다음, 아교를 바른 후에 돌가루를 뿌린다.
▲ 1. 돌가루가 담긴 병들. 2. 강가에서 가져온 돌들. 이들 모두 자연의 색을 가졌다.3. 석채화는 먼저 화폭에 밑그림을 그린 다음, 아교를 바른 후에 돌가루를 뿌린다.

선생님의 그림은 한국인들이 자연에서 느끼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데요, 이를 수묵이나 유채화가 아닌 돌가루로 그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처음 동양화를 시작했을 때는 화선지에 붓을 대면 먹이 퍼져나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죠. 하지만 그림의 색이 변하는 것 보고 싫증을 느꼈습니다. 제 심상에 떠오른 색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변하는 색으로는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었죠. 그때 염색하거나 탈색한 모래가루로 그린 작품들을 접하고 매력을 느꼈지만 그 색들도 변하는 것을 보고는 직접 돌을 빻아서 돌가루를 만들었죠. 그때가 1987년이었는데,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자연의 아름다운 색채 그대로 화폭에 옮겨졌고 색 또한 변하지 않았어요. 돌가루는 믿을 수 있는 색이었어요.

최근 미술계가 침체되면서 미대를 지망하는 사람도 순수회화보다는 디자인이나 그래픽 쪽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매년 전 세계와 국내에서 다양한 전시를 할 수 있는 그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그림은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지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그리는 것이 아니죠. 처음에는 제 그림이 팔리지 않아 많이 힘들었습니다. 작가는 붓을 잡을 때마다 경제적 압박과 보장되지 않는 앞길 때문에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혼신을 다해 완성해 전시했다 해도 보는 이가 아무런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죠.
그래서 저는 하루에 네 번 정도 시간을 정해서 설명회를 가지거나 하루 종일 관람객과 일대일로 그림 설명을 하며 전시장 한 바퀴를 돕니다. 설명을 마치면 어느새 관객과 마음이 가까워져 하나가 된 것을 느끼죠. 때로 하루 종일 설명을 한 탓에 피곤을 느끼기도 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예술인 생활에 문득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일이 제 생명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부정적인 생각은 버려집니다. 런던 전시에서는 한 아랍권 교수가 <하늘이 열리고>라는 그림의 설명을 듣더니 표현이 무척 잘돼 있다고 좋아하며, 그 뜻을 안 것에 대해 무척 기뻐하더라고요. 저의 그림은 단순한 주제를 가진 작품이 많습니다. 설명 없이 봐도 마음에 큰 여운이 남지요. 관람객의 마음에 그 단순한 그림이 들어가 놀라워하며 감흥하는 것을 볼 때 저는 또 다시 새로운 작품의 영감을 받습니다. 관객들은 이런 경험 때문에 전시회 입소문을 내고 또 다른 도시, 또 다른 나라로부터 저는 초청을 받아 전시회를 하러 갑니다. 필리핀 국립박물관, 태국 왕실, UN사무처장, 하와이 주지사, 호주 울릉공 시장, 미국 노벨재단, 파라과이 대통령, 가나 대통령궁, 캄보디아 총리실, 헝가리 예술대 총장,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장 등이 제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 4. 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색채의 돌가루들.5. 그의 작품 <명성황후>가 걸릴 예정인 대영박물관 전경.6. 2012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크인 호텔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 4. 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색채의 돌가루들.5. 그의 작품 <명성황후>가 걸릴 예정인 대영박물관 전경.6. 2012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크인 호텔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선생님의 그림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까?
저의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충북 영동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에는 화가보다는 무술배우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었습니다. 성실한 대장장이셨던 아버지는 돈은 잘 벌지 못해서 집이 무척 가난했지요. 어머니는 생활고로 며칠씩 새우젓을 팔러다니다가 나중에는 무당이 되셨습니다. 이후 더 심해지는 부모님의 다툼과 무당 아들로서 받는 멸시와 설움으로 제 마음은 학교나 집에서도 쉴 수 없었습니다. ‘착한 기철이’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15살에 자살 시도로 목을 맸다가 나뭇가지가 부러져 살았죠. 마음의 분을 삭이기 위해 산에서 무술연습에만 열중했는데, 학교 패싸움에 얽히면서 사람들을 협박하며 살았습니다. 군 입대해서도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 자살시도를 했고 전역 후 집에서도 자살시도를 했지만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매번 실패했죠. 결혼도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 아내를 만났지만 그림 그리면서 돈도 제대로 못 버는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림을 팔아 유명해지고 싶었지만 세상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학벌이 어떻게 되고 무슨 상을 받았고 이 그림을 산다면 나중에 어떤 경제적 이익을 가지느냐’를 따지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팔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시 네 번째 자살을 준비하고 있을 때, 교회에 나갔고 성경말씀을 들으면서 제 생각의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에 아주 밝은 빛이 들어왔습니다. 제 생각의 기준에서 본다면 저는 매우 불행하고 무의미한 인생이기 때문에 죽어야 했지만, 생명의 기준에서 본다면 행복하게 살아야 할 귀중한 영혼이었습니다. 미련한 제 생각을 믿었던 자체가 죄악이었죠.
이때부터 막연하게 제가 살고 싶었던 풍경을 그리는 것을 그만두고 제 마음에 들어왔던 빛을 단순한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연을 보고 영감을 받을 때마다 그림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할 수가 있는데, 어떻게 이 메시지를 전해줘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살풀이>에서는 깨끗한 돌가루로 속이 비치는 모습을 묘사해 보고 싶었습니다. 살풀이를 추며 한을 풀 때 깨끗한 흰 옷에서 살결이 비치듯, 우리가 사람 눈을 의식하고 주눅 들어 내 모습을 가리기보다 본연의 모습을 나타낼 때 그 사람만의 향기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살풀이로 풀고 싶었던 한과 삶의 목적 등을 정확히 알게 된다면 그 사람만의 매력과 가치를 정확히 느낄 수 있는 것이죠.

▲ 그의 유화 작품 <명성황후>와 함께. 국외 전시를 하면서 한국의 전통과 의상, 풍습 등을 이해시키고자 그린 작품으로, 여인의 얼굴에서 풍기는 기품과 의상의 색채는 한국의 전통미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 그의 유화 작품 <명성황후>와 함께. 국외 전시를 하면서 한국의 전통과 의상, 풍습 등을 이해시키고자 그린 작품으로, 여인의 얼굴에서 풍기는 기품과 의상의 색채는 한국의 전통미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선생님의 20대를 돌아본다면, 현재 젊은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내 옳았던 생각들을 비우고 세상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어떤 소리라도 듣고 제 삶

▲ 부귀영화를 뜻하는 꽃의 풍성함을 석채로 표현한 작품 <모란꽃>
▲ 부귀영화를 뜻하는 꽃의 풍성함을 석채로 표현한 작품 <모란꽃>
에 융합하여 자살시도도 하지 않을 겁니다.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마음은 내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것을 받아들일 때 형성되는 지혜입니다. 돌가루 재료 중에서도 단단한 돌일수록 빛을 흡수하고 빛을 발합니다. 보석도 그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석채화가 보석화라고 불리기도 하죠. 오늘날 풍족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도 포기할 줄 알고 다른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다가 뜻대로 안되면 자살하죠. 전시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바람을 피운 죄로 가족과 헤어지고 자살하려고 했던 어느 부인이 제 전시회에 왔다가 마음을 돌이켰던 일입니다. 지금 자신의 현실이 어렵더라도 작은 일에 귀 기울여 듣고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할 줄 안다면 앞으로 어떤 큰일도 감당할 수 있는 보석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과거 가난과 자살시도 등으로 얼룩졌던 김기철 씨의 삶은 강가의 볼품없는 돌과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연 그는 이제 전 세계를 향해 돌가루의 신비로움을 전하는 최정상의 석채화가가 되었다. 단단한 돌들이 부서져 자연의 색으로 영롱한 빛을 내는 그의 그림전에서 관람객 누구나 삶의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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