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ESPN 아나운서 신아영

 
 
지금 스포츠방송은 미녀 아나운서들의 춘추전국시대다. KBS N의 정인영·최희, MBC 스포츠의 김민아·김선신 등 빼어난 미모와 스포츠를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아나운서들이 시청자를 뜨거운 승부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SBS-ESPN의 신아영 아나운서다. 그녀가 방송에서 미처 쏟아내지 못한 얘기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프로로서 전하는 행복 & 성공 방정식을 소개한다.

깨는(!) 그녀, 신아영을 만나다
유명인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다는 건 기자라는 직업의 특권이자 보람이다. 신아영 아나운서를 만나기 위해 서울 상암동의 SBS 프리즘타워로 향하는 길, 기자의 머릿속이 불현듯 복잡해졌다. ‘요즘 매일 녹화가 있다던데, 인터뷰 시간이 얼마나 가능할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빠듯한 시간 안에 취재원의 인생, 가치관, 생각, 성향, 취향 등을 알아내는 것은 독심술讀心術을 쓰지 않는 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는 길이 막혀 그녀에 대해 사전조사해 둔 사항들을 마음 속에 정리하는 시간이 생겼다.
하버드 출신의 엄친딸, 미모의 아나운서, 건강미를 지닌 축구의 여신…. 요즘 온라인에서 그녀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다. 그녀가 졸업한 하버드 대학교는 전 세계 학생들과 자식 가진 부모들에겐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다. 매년 최종 선택된 1600명만 입학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이란 책에 나온 학생들의 모습을 살짝 엿보자. 하버드생들은 한 학기에 네 과목 정도 수강한다. 인문계 학생들은 1주일에 12시간, 실험과 실습이 많은 이공계 학생들은 18시간 정도를 강의실에서 보낸다. 예습과 복습을 하고 과제물을 작성하는 시간을 합하면 30시간 정도다. ‘뭐야, 생각보다 그렇게 학습량이 많지는 않잖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서울대에 와서 공부한 어느 교포 하버드생에 따르면, 서울대에서 한 학기 동안 읽은 교과서 양은 하버드에서 보름 읽은 양에 불과하단다. 수업 진도가 매우 빨라 결강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들은 공부는 물론 과외에도 열심이다. 남학생들의 86%, 여학생들의 76%가 과외를 한다. 여기서 과외란 대학생이 돈을 벌기 위해 중고생들을 가르치는 ‘알바’가 아니다. 정규 교과목 외에 하는 자치회, 연구회, 동아리 등을 말한다. 두세 가지 과외를 함께 하는 학생은 70%,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학생의 비율은 25%나 된단다. 물론 신아영 아나운서도 재학 시절에 과외로는 합창단을, 자원봉사로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무료급식소에서 급식하는 일을 했다.
하버드 출신에 빼어난 미모까지 겸비한 그녀는 영어, 독어, 스페인어 등에도 능통하다고 하는데…. 모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그녀의 이미지를 그려 보았다. ‘틀림없이 똑 부러지고 빈틈없는, 차갑고 도도한 사람일 거야.’
그러나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떻게 하버드로 유학갈 생각을 했냐고 물으니, “서울의 이화외고를 다녔는데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아 비교적 수학이 쉬운 SAT(미국의 수능시험)에 응시해서 가게 되었어요.”라고 답한다. 설령 그렇다해도 언론 플레이를 한다면 약간의 명문을 보탤 듯한데, 그녀는 너무나 솔직담백했다. 역사학을 전공으로 택한 계기는?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심오한 답변을 예상했는데 이번에도 ‘엉뚱한’ 답변이 돌아온다. “1학년 때 수업에서 만난 영국 출신의 중년 남자교수님이 역사학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그의 지성미에 매료돼서”란다. 길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선택한 것은 짐이 아닌 기쁨으로 매진하는 요즘 신세대답다. 그녀는 인생의 멘토로 부모님을 꼽는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분위기가 심각해지기도 어려울 것 같다. 
트렌디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닐 것 같은 이미지도 깨졌다. 과천 집에서 상암동까지 그녀는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이따금 지하철에서 자신을 알아봐 주는 팬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단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던가, 모니터 화면이 아닌 실제의 아나운서 신아영은 너무도 꾸밈없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물론 TV에서 보던 세련미와 차분한 말솜씨는 그대로였다.

미쳐야 미친다, 팬이기에 통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질문부터 던졌다. 뛰어난 학벌과 실력으로 스포츠 아나운서를 하는 게 아깝지 않을까? 그 질문에 그녀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반문한다.
“그럼 아나운서 하기에 적당한 이력은 뭐고, 하버드라는 학벌에 어울리는 일은 뭘까요?”
흠, 예상치 못한 반격이다. 그래도 하버드 출신이라면 월가를 주름잡는 애널리스트나 대학교수, 대기업 마케팅 담당자 같은 직업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녀의 답변이 이어진다.
“말씀하신 대로 남들이 선망하는 일을 하고, 또 그렇게 얻은 수입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출근할 때도 ‘일하러 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일하러 간다’가 아닌, ‘놀러 간다’는 마음으로 제가 진정 즐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물론 하버드에서의 4년은 정말 값진 시간이었죠. 인간으로서 성숙하고 가치관도 많이 형성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하버드에서 공부했으니, 그 스펙이 아까워서라도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겠다’는 식으로 학력과 일을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아영 아나운서가 웬만한 남자 못지않은 열혈 축구팬이 된 계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다. 미국과의 조별경기부터 16강전, 8강전까지 그녀는 길거리 응원을 나갔다. 독일과의 4강전은 경기장에 앉아 직접 관전을 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드넓은 그라운드에서 22명의 선수들이 쉴 새 없이 누비는 축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상암이나 수원월드컵경기장은 그녀와 친구들의 단골 출입처였다. 특히 그녀는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의 스타선수 스티븐 제라드의 광팬이기도 하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그녀의 남다른 축구사랑에서 비롯된 해박한 지식은 입사시험 때도 빛을 발했다.
“최종면접에서 ‘2011-2012 EPL 3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아스널의 경기 결과를 분석하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박지성이 골을 넣는 등 맨유가 8:2로 대승을 거둔 경기였어요. 마침 그 경기를 보고 갔기에 막힘없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어요. ‘왜 아스널이 대패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리그 개막 전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바람에 생긴 일시적인 부진일 뿐, 시즌 후반이 되면 제 모습을 찾을 것’이라고 답변했어요. ‘아르센 벵거 감독은 유망주를 잘 발굴해내는 능력 있는 감독’이라고 덧붙였죠.”
평소 좋아하는 리버풀의 제라드 선수와 호지슨 감독에 대한 질문도 그녀는 척척 소화해냈다. 사실 호지슨은 남자들 중에서도 어지간한 축구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잘 모르는 감독이다. 그런 그녀의 해외축구에 대한 관심과 이해력은 면접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그녀는 당당하게 꿈에 그리던 스포츠 아나운서로 첫발을 내딛었다. 

 
 

신아영이 말하는 프로의 세계, 프로의 요건
“어떤 종목이든 프로선수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우러난다”는 게 신아영 아나운서의 말이다. 프로 무대에서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끊임없는 경쟁과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프로로 뛰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아하는 것’ 이상의 체계적인 노력과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나운서 일 역시 마찬가지다.
“순발력이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그 내용을 즉석에서 설명하는 훈련을 많이 합니다. 녹화나 방송이 있기 최소 3시간 전에 미리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대본을 소리 내어 읽는 건 기본이에요. 특히 생방송은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들어갈 때가 많아요. 그럴 때는 ‘오늘은 내 모습이 카메라에 어떻게 비쳐질까?’ 상상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언제 실전에 투입될지 모르는 게 바로 프로의 세계다. 그래서 그녀의 일상은 늘 방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미있는 일이 있거나 참신한 멘트거리가 있을 때면 ‘이건 어떻게 방송에 녹여낼까?’를 늘 고민한다고. 축구 전문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 인터넷 매체나 팟캐스트를 통해 해외 축구소식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맨체스터 시티가 맨유를 상대로 6:1 완승을 거둔 적이 있었어요. 그때 영국 언론은 이 경기를 ‘Six and the City’라고 표현했어요. 미국드라마 제목 <Sex and the City>를 패러디한 거죠. 인터넷으로 축구 기사나 방송을 검색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탄성이 나올 만큼 재미있고 기발한 내용들이 정말 많아요.”
그녀가 꼽는 아나운서로서의 다음 요건은 호기심이다. 항상 뭔가를 궁금해 해야 하고 늘 ‘왜?’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단다. 그 지향점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하고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는 자세가 아나운서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상대방의 언행을 임의로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거나 자신을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자세는 필수다.
“프로농구 감독이나 선수들 중에는 굉장히 장난기 넘치는 분들이 많아요. 모 감독님은 ‘인터뷰할 때 여자 아나운서가 왼쪽에 서야 경기가 잘 풀린다’는 징크스가 있어요. 그것도 모르고 그분 오른쪽에 섰다가 ‘빨리 이쪽에서 와서 서!’ 하셔서 황급히 자리를 바꾼 적도 있어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성공 아닐까?”

 
 

신아영 아나운서는 요즘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느라 한창 정신이 없다. 지난 3월부터 밤 11시에 생방송으로 나가는 <스포츠 센터>의 진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현재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EPL 리뷰>, <스포츠 센터>, <프로야구 프리뷰> 등 총 3개. 월요일에는 낮 12시 정도 출근해 오후 3시부터 1시간 반 가량 <EPL 리뷰>를 녹화한다. 평일 밤 11시에는 <스포츠 센터> 생방송이 있다. 야구경기가 있는 화~일요일에는 3시 정도 출근해서 6시부터 그날 열리는 야구 경기를 소개하는 <프로야구 프리뷰>를 15분 정도 진행한다.
거의 매일 방송이 있다 보니 빨간 날도 편히 쉬지 못한다. 심지어 지난 설 연휴 때도 맨유와 레알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16강 경기를 보러 스페인까지 다녀왔을 정도다. 자신의 직업이 그리 수입이 많지도 않고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기에 행복하단다. ‘People only do their best at things they truly enjoy사람들은 진정 즐기는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한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 글귀다.
“대학생들이 자기만의 색깔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성공과 행복을 꿈꾸지만 그마저도 사회가 짜 놓은 틀에 맞는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뚝심쯤은 가졌으면 합니다. 어디서 뭘 하든 최선을 다해 자기만족을 찾으면 되잖아요? 재밌게 살아야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짜여진 사회’에 맞추지 않고 사는 일이 쉬운 일일까? 그녀의 대답이 당차다.
“그럼 사회를 바꾸세요, 대학생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은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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