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을 통해 변한 대학생 부모님의 편지

흔히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내가 가진 능력을 부족한 누군가를 위해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연탄을 나르고,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치료하고, 또 집 없는 이들을 위해 집을 짓는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해 본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무언가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2012년 1월 한국을 떠나 1년 동안 인도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최호진 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정의 불화 속에서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말을 잃어가던 최호진 학생은 우연히 알게된 굿뉴스코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웃음을 어머니에게도 전했다.
 

 

<내가 찾아주지 못했던 웃음을>

최호진 학생 어머니의 편지

 
 
우리 가정은 남들이 보기엔 별 문제없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앓아온 우울증은 가슴 한구석에 아픔의 덩어리를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사는 것에 지쳐, 아이들과 제대로 된 대화조차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별 문제없이 착하게 커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다 이해해주리라 믿었습니다. 아이들도 아픔을 쌓아가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남편은 자주 폭력을 행사했고, 저는 머리를 바닥에 심하게 부딛혀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나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별거를 했습니다. 25년 동안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이 헛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으나 내 인생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일해도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었고, 엄마 노릇도, 며느리 노릇도, 딸 노릇도 할 수 없는 바보같은 제가 너무 싫었습니다. 이혼을 결심하자 아이들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극히 소심한 성격의 아이들은 그 충격으로 말을 잃어갔습니다. 저를 많이 원망했겠지요.

저와 아이들은 모두 웃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엄마와 있어도 별로 할 말이 없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대했습니다. 혼자 힘으로 견디기 어려웠고 이름 모르는 절을 들어가 기웃거렸고, 길 가다가 교회에 들어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 내 맘을 의지할 곳은 아무 곳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언니의 아이들이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다녀오면서 마음이 밝아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라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소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굿뉴스코를 권했습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만 하던 아이들은 부모가 싫고, 한국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흔괘히 받아들였습니다.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 해외에 나가서도 견디지 못하고 몇 달이 못 되어 곧 돌아올거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아을은 인도로, 딸은 케냐로 동시에 해외봉사를 나갔습니다.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해외에 있는 동안, 아들 딸에게 가끔씩 연락이 왔습니다. "걱정마. 잘 지내고 있어." 처음에는 해외에서 고생하고 있을 아이들이 걱정되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예전엔 대화조차 하지 않던 아이들이었는데, 아이들은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제 마음에 행복이 넘쳤습니다.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를 들은 후, 걱정은 사리졌고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해외봉사를 마친 아이들이 귀국한 날, 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몇 십년간 웃음을 잃고 살던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모습은 없었습니다. 웃음 가득한 얼굴과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모습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 그곳에 있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 지금 마음이 너무 따뜻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고, 제 마음도 따뜻해졌습니다. 귀국한 후, 오랜만에 모여 진심어린 대화를 나눴습니다.

"엄마, 사실 내 인생의 가장 큰 방해꾼이 엄마, 아빠라 생각했어, 다 생각의 차이였어. 엄마 그거 알아? 코끼리가 태어나면 밧줄로 다리를 묶어 나무에 매어 놓는대. 어린 코끼리는 자기가 아무리 시도해도 그 밧줄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결국 포기한대. 나중엔 '끊을 수 없어'라는 생각으로, 덩치가 커져 밧줄을 끊을 수 있는 데도 시도조차 안한다는 거야.
내가 그 코끼리였어. 우리 집 형편이란 밧줄에 묶여 벗어날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그게 얼마든지 끊을 수 있는 생각의 줄이었다는 것을 알았어. 지금은 엄마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엄마 미안해."

전에는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도 원망 섞인 마음이 느껴졌는데, 이젠 진심으로 저를 사랑하는 걸 많이 느낍니다. 지난 1년의 해외봉사를 통해 아이들은 웃음만 되찾아 돌아온 게 아니라, 마음도 한층 더 자랐습니다. 요즘엔 우리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함께 하는 게 편하고 즐겁습니다.

저를 대신해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주신, 아이들에게 빛을 선물해주신 굿뉴스코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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