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영 기자의 명절나기

한가위 둥근달이 떠오르는 추석을 하루 앞두고 이른 아침부터 도란도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며느리라는 앞치마를 두른채 음식준비에 열을 올렸다.

시댁에선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어느새 집 앞 마당에선 마음의 차이를 조율하는 목청소리가 벌써부터 높아져 간다.

명절 전야제라도 치르듯 시아버지께서는 하루종일 복통을 호소하시며 버티시다가 결국 추석연휴 스타트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맞았고 그 바람에 가족모두는 급 긴장모드에 돌입했다. 응급실은 마치 추석 귀성 열차처럼 붐볐고 우린 대기시간 조차 모른채 마냥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구리에 사시는 작은 어머님의 도착소식으로 아버님만 병원에 둔채 어머님과 나는 시골집으로 음식준비를 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차 안에서 시어머니, 작은 어머니의 옛날 며느리 시절 얘기로 박장대소하며 아버님껜 죄송하지만 잠시 아버님 걱정을 잊었다.

전 굽느라 바쁜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아버님께선 장염이라고, 병원에서 괜찮다며 곧장 집으로 오셨고 '명절도 못맞고 죽는줄 알았다' 아버님 속내를 듣고 나니 오늘 따라 더 들어보이는 연세에 마음 한켠이 아렸다.

아버님의 바톤을 이어 받아 식구들은 각자 자기 병을 소문내기 시작했고, 아버님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는 쌩뚱맞게 병(病)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추석 당일엔 딸이라는 꽃신을 신고 춘천에서 8시간 30분이라는 긴 여정 끝에 내 고향 '보물섬' 남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동생은 장인이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처가집으로 가고 없었고, 언니는 결혼11주념 기념으로 조카4명을 친정에 둔채 형부와 줄행랑을 쳤다.

부푼 꿈을 안고 고향 엄마품으로 헤엄쳐가는 상상을 하며 내려왔건만 기다리는건 삐약대는 어린조카 4명. 기약에 없는 코스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이모니까, 명절이니까라고 스스로 추스르며 이모역할을 해내느라 한층 더 허리가 휘어지는 희한한 추석연휴(?)를 보냈다.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맞는 추석과, '딸'이라는 이름으로 맞는 한가위다.
시부모님과 가족이 된지도 어언 15년. 아버님의 에피소드로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던 시댁에서의 추석과 예상치 못한 육아로 힘들었던 친정에서의 추석을 돌아보며 나에게 '며느리'와 '딸', '시댁'과 '친정'의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물론 그래도 친정이 좀 더 편한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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