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작은 무엇이라도 흔적이 남는 법이다. 하물며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의미를 품은 대상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사진을 통해 대상에 숨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힘들지만 재미있다. 그러나 그 의미에 바다에 들어서 버리고 나면 규칙성 없는 내 뇌 속에서 떠다니며 사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온기를 찾아다니는 나에게는 너무 부담스런 넓이의 바다이다.

 


 
 

 

동경하던 대상은 실제로 없다.

내가 동경하던 그 거대한 대상은 실제론 내가 만들어낸 왜곡된 허상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은 기쁘지도 허무하지도 않다. 거울을 보고 기쁘지도 허무하지도 않은 것처럼.

 


 
 

 

내가 아닌 비슷한 뭔가와 공존해야 존재감이 부여되는 것에 반대한다.

어느 누구와도 비슷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또 그렇지 않으면 또 어쩌겠는가.

길을 걸을수록 결국 혼자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 그것이 외롭다거나 우울하다고 생각할 잉여의 감정도 없다.

 


 
 

 

배경화면이라고 생각하며 찍었다.

MS사의 윈도우 밤골에디션에 설치 배경화면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무료로 제공해줄 수 있는데. ^^

 


 
 

 

거울은 깨달음의 도구가 아니라 헤매임의 도구란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거울은 보기가 싫다. 내가 날 볼수록 더 불분명해진다.

가벼운 의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시도가 가소롭다.


 

 
 

 

10년 같은 1년이 흘렀다.

20년 같은 1년이 또 오리라.

앞으로의 시간에 속에서는

철저히 갈라지고 깨졌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에게 기대할 만한 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눈물나게 배고파도 상다리는 뽑아먹지 말자.

그러니 유전자 조작을 해서라도 다리 넷 달린 통닭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왜 술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마 대충 몇 잔 먹지 않았을 거다.

의식의 코드가 완전히 뽑히기 직전까지, 거울을 봐도 내가 나처럼 안 보일 때까지,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었으리라.


 

 
 

 

불러주고 보여줘야 결국 그것이 된다.

과도한 사유와 은유는 하늘나라에 있는 분들이 애완용 개에게 던져준 간식이다.

 


 
 

 

가을이 왔다.

오라고 하지 않아도 왔다.

또 아무렇지도 않게 갈 게 뻔하기 때문에

애써 반겨주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이 집 흰둥이가 사라졌다.

 

역시 봄날은 가고, 복날도 갔다.

 


 

 
 

 

가끔 취한 내가 정말 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의식의 도피가 많이 필요한 내가 되었다. 숙취와 스마트폰의 전화기록이 가끔 후회되기도 하지만 그건 실제의 내가 한 것이다. 후회는 거짓의 나의 몫이다. 인정한다. 카메라가 무거워지는 요즘, 돌멩이를 찍고 싶어 밖으로 나갔더니 몽돌해변이다. 다 똑같은 돌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 다른 돌들처럼 보이기도 하며, 다 예뻐보이기도 하고, 다 새카매서 찍기 싫기도 하다. 쉬어야겠다. 아무래도 어제 술에 누가 이상한 약을 탔나 부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