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취업 7년 차 이한솔

새해 목표로 ‘취업 성공’을 꼽는 이들이 많다. 치솟는 취업 경쟁률에, 어떤 이들은 좁은 국내가 아닌, 더 넓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을 추천한다. 낯선 일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앞선 이들의 ‘실전 경험’이 아닐까. 지난달, 해외 취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소개하는 온라인 설명회를 열었다. 여러 출연자 중,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멕시코에 살고 있는 이한솔 씨였다. 

그가 말한 두 문장이 인상 깊었다. “혼자, 내 힘으로만 살려고 하면 해외 취업은 악몽이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혹시 멕시코로 오게 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제게 연락해 주세요. 밥 한 끼 사겠습니다!” 먼저, 그가 보낸 멕시코에서의 순탄치 않았던 삶이 궁금했고, 그런 팍팍한 삶 속에서도 자신처럼 발을 내밀겠다는 취업준비생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 취업 7년 차를 맞은 이한솔 씨를 온라인 화면으로 만났다.

반갑습니다. 현재 멕시코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DN오토모티브*’라는 기업에서 인사 관리팀 중간관리자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사 관리팀의 일은 한국에서 생각하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직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요. 동시에 업무에 임하는 직원들을 채용하고 부서를 조율하는 등 인사 업무를 보는 일을 합니다. 저는 우리 부서의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팀원들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일의 방향성을 함께 잡아가는 한편, 팀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업무는 지난 2018년도 봄부터 시작했고요. 이 회사로 이직하기 전까지는, 기아모터스 멕시코에서 내장 시스템 엔지니어 및 통번역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DN오토모티브: 크라이슬러, BMW, GM과 같은 주로 외제차에 들어가는 부품과 배터리를 생산하는 한국 기업이다. 멕시코는 자동차 총생산량을 기준으로 할 때 세계 6위다. 현대, LG, 기아, 포스코 등 우리나라 대기업과 협력사들이 멕시코에 적극 진출하면서 신흥 산업기지 국가로 떠올랐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많은 국가들 중 ‘멕시코’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어릴 적부터 외국어 배우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스페인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대학을 중남미학과로 진학했어요. 대학 시절 언어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중남미 현지를 적극적으로 경험했어요. 휴학하고 1년간 칠레로 해외 봉사를 다녀왔고, 이후에는 1년간 유학생으로 살아보기도 했죠. 두 해 동안 좋은 기억들이 많았어요. 그 때문에 ‘언젠가 중남미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해외 취업을 생각해 본 적은 사실 없었어요. 그런데 취업 준비를 하던 중, 멕시코에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았고 반신반의하며 지원했는데 합격 통보를 받았죠. 그 당시, 제게는 ‘그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훨씬 더 컸어요. 

2년간 칠레에서의 경험이 있으니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다시 해외로 나가는 것도 좋았고,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을 시작하고 한 달 두 달이 흐르면서, 설렘은 점차 사라졌고, 만만치 않은 사회생활에 점점 지치기 시작했어요.(하하) 알고 보니 멕시코에서 취업한한국 사람 중 다수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돌아가더라고요. 저는 취업 설명회에서 그 이유를 ‘멕시코 외국인 노동자의 바이오리듬’으로 설명했는데요. 저와 주변 동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흥미롭게 들으시더군요. 

해외봉사자로 칠레에서 지내던 시절, 4박 5일간 무전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3시간씩 걷고, 굶을 때도 있었지만 그 여행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일과 부딪히는 맛’을 알려준 값진 경험이었다. 1,3. 여행 중 만난 아이들. 2. 무전여행에 함께한 멤버들. 사진@이한솔 제공
해외봉사자로 칠레에서 지내던 시절, 4박 5일간 무전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3시간씩 걷고, 굶을 때도 있었지만 그 여행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일과 부딪히는 맛’을 알려준 값진 경험이었다. 1,3. 여행 중 만난 아이들. 2. 무전여행에 함께한 멤버들. 사진@이한솔 제공

‘멕시코 외국인 노동자의 바이오리듬’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들어보셨을 ‘369법칙’이라는 것이 있죠. 입사 후 3개월 단위로 퇴직이나 이직을 고민한다는 것인데요. 멕시코 취업의 경우에도 이런 특징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처음에 입사할 땐 대부분 열심히 하겠다는 굳건한 각오와 열정으로 시작합니다. 보통 입사 3개월 후에 취업비자가 나오는데요. 그때부터 정식으로 월급을 받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멕시코는 연중 상반기에 휴일이 많아요. 부활절 기간, 노동자의 날 등이요. 덕분에 이곳저곳 여행을 다닐 수도 있지요. 그러면서 만족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휴일이 점차 줄어들어요. 9개월 즈음에는 여행도 새롭게 와닿지 않습니다. 현지에서 일하며 느끼는 즐거움보다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하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대부분 그 시기에 해외 취업을 계속할지 혹은 포기할지 결정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 흐름을 그대로 탔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첫 월급에 들뜨고 여행을 다니며 즐거웠지만, 약 4개월 후부터 ‘멕시코에 온 게 정말 잘한 선택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출근한 지 3시간, 6시간, 9시간마다 고비가 찾아왔죠. 저도 잘 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업무도 어려웠고, 특히 회사 내의 인간관계 문제로 무척 힘이 들었어요. 타국에서 사회생활의 쓴맛을 보면서, 베개가 흠뻑 젖을 정도로 밤새 울던 날도 많았습니다. 6개월쯤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즈음 아주 평범하고도 특별한 경험을 했어요. 그 덕분에 일 년을 버틸 수 있었고, 멕시코의 만족도가 점차 안정 라인을 타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평범하고도 특별한 경험이라뇨?

제가 멕시코로 해외 취업을 결정할 때, 과거 칠레에서 지냈던 좋은 기억들이 큰 영향을 주었는데요. 그 때문에 멕시코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것 같지?’

해외봉사자로 칠레에서 살 땐 돈 한 푼 없는 대학생이었지만, 마음이 늘 부자처럼 넉넉했어요. 실수할 때도 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부족함이 드러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특히, 대학 시절 몸이 무척 약했는데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역시 나는 안 돼.’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같은 곳에서 유학생으로 1년 더 살았던 것도 그 삶이 행복했기 때문이었죠.

회사생활에 무척 지쳐 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알음알음 멕시코에 있는 봉사단체를 찾아갔어요. 거기 계신 한국인 지부장님과 현지인 봉사자분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언니를 한 명 알게 되었어요. 대학 시절 인도로 해외 봉사를 다녀왔던 언니였는데, 남편과 함께 멕시코로 왔다고 하더군요. 봉사를 떠났던 나라는 달랐지만, 마음이 통하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무척 편안했어요.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그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말 오랜만에 다른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했어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저는 마음의 문을 닫고 모든 사람에게 거리를 둔 채 살고 있었어요. 봉사 지부에 찾아가면서도 조용히 홀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거기서 한 사람 두 사람 만나며 제가 생각해온 것들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1. 2019년, 멕시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이젠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 부부는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2. 시간이 날 때면 멕시코 봉사 지부에서 운영하는 주민들을 위한 ‘한국어 아카데미’ 활동을 돕는다. 지난해, 1년간의 아카데미를 마무리하며 수료식을 했다. 사진@이한솔 제공
1. 2019년, 멕시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이젠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 부부는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2. 시간이 날 때면 멕시코 봉사 지부에서 운영하는 주민들을 위한 ‘한국어 아카데미’ 활동을 돕는다. 지난해, 1년간의 아카데미를 마무리하며 수료식을 했다. 사진@이한솔 제공

어떤 부분이 착각이었나요? 

멕시코 취업에 성공하면서,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날 대화하면서 제 대학 시절을 돌아보니, 그때도 큰 행사에서 대형 사고를 치기도 하고, 실수해서 울기도 했었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체력도 약했고요. 그런데 그때는 실수로 잠시 속상해하다가도 주변 분들에게 곧바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배우면서 어떤 일이든 고마움으로 맺음을 지었어요. 그땐, 스스로 얼마든지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마음이 유연했죠. 그런데 혼자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긴 후로는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실망감과 자책만 남았던 것 같아요. 그걸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았던 거죠. 그때부턴 다르게 살고 싶었어요. “그래, 나 원래 잘 못하지, 그리고 나 원래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거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지!” 하면서요. 

그 이후에도 사회생활의 어려움은 있었을 텐데요. 

그렇죠. 회사에서 일이 어려워 막막한 순간도 있었고, 제가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생긴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인, 봉사단부터 자주 찾아갔어요. 막막했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고, 그분들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들었어요. 칠레에서도 살아봤고, 멕시코에서 직장생활도 조금 해봤지만, 아무래도 현지에서 수십 년간 살면서 여러 청년을 상담해오신 지부장님이 더 많은 걸 알고 계시더군요. 해외 생활을 나름 안다는 생각도 제 착각이었죠.(웃음)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한 후, 처음으로 관리직을 맡게 되었는데요. 첫 출근 하는 제 마음가짐은 이랬어요. “인사 분야에 대해 공부는 했지만, 실제 일은 처음이지. 배워야 해. 물어보자!” 전쟁 같은 직장생활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졌어요. ‘어려움을 만나는 건 힘들고 싫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내가 성장하겠구나.’하고요. 고생도 하고 깨지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면서 더 배우고 싶어요. 멕시코에서 인사 담당자로서, 노동법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설명회에서 취업준비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죠.

솔직히, 저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땐 주변 사람들이 어떤지 돌아볼 겨를이 없었어요. 그런데 좋은 사람들과 작은 연결고리가 생기고, 제 마음이 먼저 변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이곳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요. 첫 직장에 함께 다녔던 동년배 친구가 있는데요. 예전에는 그 친구와도 그저 ‘아는 사이’로만 지냈다면 지금은 마음으로 가까운 친구가 되었어요. 종종 제가 도움을 얻었던 멕시코 지부장님도 함께 만납니다. 

설명회를 하던 날,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낯선 타지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살다 보면 그곳이 생지옥이 될 수도 있다고요. 혼자서 볼 수 있는 세계는 좁아요. 특히 낯선 나라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 그 무게가 배로 느껴지는데, 혼자 힘으로는 버티기가 어렵거든요. 제가 그걸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제 설명을 듣고 저처럼 멕시코로 오는 분이 있다면 꼭 밥 한 끼 사주고 싶어요.(하하) 다른 분들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건 없는지 들어주고 싶어요. ‘혼자가 아니라고, 이곳에서도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다.’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외향적이고,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회사 면접도 거뜬히 치렀다는 이한솔 씨. 그런 그가 멕시코에서 숨죽여 울었던 시간을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어쩐지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을 그의 모습이 인터뷰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언젠가 그처럼 울었던 기억이 얼핏 스쳤다. 

그가 말했다. “20대에는 앞으로 더 쌓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만 가득 차 있었다면, 멕시코에서 구르고 깨지면서 30대가 되고 나니 ‘비워지는 부분’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실패하고 실망하는 건 아프지만, 내 것만 쌓던 곳에 빈 공간이 만들어지면 밖으로부터 더 좋은 것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그는 어릴 적부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제대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아마 그가 찾던, 그 지름길은 바로 그 ‘빈 공간’이 아닐까.   

취재 고은비 기자   사진 신창은 프리랜서   디자인 배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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