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회장의 통큰 기부

암벽 타는 장비를 스스로 제작하던 청년이 등산 장비 회사를 차리는 것은 그리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그 회사를 의류 영역까지 넓혀 세계 굴지의 아웃도어 브랜드로 만든다면 대단한 성공이지만, 가끔은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60년 넘게 키워온 회사를 ‘지구’에게 통째로 넘겨버린다는 것은 세상에 처음 있는 일이고, 아마도 회사를 물려받은 지구도 내심 놀랐을 것이다. 그 결정을 내린 주인공이 올해 여든넷이 된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 회장이다.  

새로운 기부 방식을 선포한 기업가 

지난해 9월, 이본 쉬나드 회장은 4조 원이 훨씬 넘는 ‘파타고니아’ 기업의 지분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아들도, 회사도 아닌, ‘지구’에게 넘긴다는 그의 결정에, 언론에서는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에 새로운 기부 방식이라며 환호했다. 그러면서 이본 쉬나드 회장이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군대에서도 적응을 잘 못했으나, 보통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각도에서 창의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어떤 저널리스트는 애초부터 사업에 관심이 없었던 그가 크게 성공한 것은 ‘어쩌다 보니’ 얻은 우연이라고 했다. 

자신이 쓸 등반 장비를 대장간 구석에서 만들며 시작한 일이 과연 ‘어쩌다 보니’ 큰 기업이 된 것일까? 손에 잡히지도 않고 머리로 가늠도 안 되는 조 단위의 거액을 기부하는 일이 정말 ‘어쩌다 보니’ 이루어진 결정일까? 서점에 갔다가 그의 일생을 담은 자서전이 보여 구입했다. 4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다보니,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한쪽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쓴 서평 블로그 말고, 직접 그 자서전을 읽는다면 그의 기업철학과 비즈니스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 

1938년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천식을 앓는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여섯 식구가 습도가 낮고 날씨가 청명한 곳을 찾아 남부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키가 작은데다 이름은 여자 같고, 영어도 거의 못하는 이본 쉬나드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학교 밖 뒷골목을 배회하고 다닐 성격은 아니어서, 산과 호수를 쏘다니며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다. 1962년 주한 미군으로 2년간 와 있을 때에도 그는 군인 체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부대를 빠져나와 그는 북한산 인수봉에 매달려 있거나 서울 쌍림동에 있는 대장간을 찾아가 무쇠로 연장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1. 쉬나드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대부분 대장간이나 암벽,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다. 기업가인 동시에 등반가, 서퍼, 환경 운동가로 활동한다. 이윤보다 가치를 앞세우는 그는 채식 중심의 소박한 식단에 낡은 셔츠와 바지를 입고 다닌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라는 사명 선언문을 바탕으로 자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팀 데이비스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1. 쉬나드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대부분 대장간이나 암벽,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다. 기업가인 동시에 등반가, 서퍼, 환경 운동가로 활동한다. 이윤보다 가치를 앞세우는 그는 채식 중심의 소박한 식단에 낡은 셔츠와 바지를 입고 다닌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라는 사명 선언문을 바탕으로 자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팀 데이비스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2.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제품의 내구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생산과정에서 물과 에너지를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1985년부터 매년 매출의 1%를 환경 보호에 기부하고 있다. 2019년에 UN지구환경대상 기업가 비전 부문을 수상했다. 사진@파타고니아 홈페이지
2.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제품의 내구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생산과정에서 물과 에너지를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1985년부터 매년 매출의 1%를 환경 보호에 기부하고 있다. 2019년에 UN지구환경대상 기업가 비전 부문을 수상했다. 사진@파타고니아 홈페이지

산에 오르면 그곳에 흔적을 남기지 말라

자연이 키운 이본 쉬나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수직으로 솟은 바위산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넘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알았고 자연의 숭고함을 배웠다. 암벽 등반가에서 최고의 산악인이 된 그가 사업가를 꿈꿨던 적은 없었다.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등반 장비를 만들었고 1964년에 규모를 조금 확장해 ‘쉬나드 이큅먼트’를 차렸다. 이 업체가 6년 뒤엔 미국 최대의 등반 장비 공급업체로 성장했다. 어느 날 요세미티 북쪽의 ‘엘 카피탠’ 암벽을 오르다가 심하게 훼손된 바위를 본 그는 등반용 쇠못인 ‘피톤’을 바위에 박고 빼내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임을 알고 생각에 잠긴다. ‘산에 오르거나 자연을 찾을 때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자신의 좌우명과 현실은 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피톤이 회사 매출의 70%를 차지했지만 그는 피톤 제작을 중단하기로 한다. 먹고살기 위해 장비를 만들고 즐거움을 위해 산에 오르더라도, 그 결과가 자연을 훼손하고 지구를 병들게 한다면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어떤 장비라도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쓰여서는 안 된다. 지금도 캘리포니아 본사 건물 로비에는 ‘죽어버린 지구에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없다.’라는 글이 있는데, 이본 쉬나드의 비즈니스 철학을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다.  

등반가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입는 장비’ 

등반 장비는 사람의 안전과 생명에 연관되므로 품질이 중요하다. 그는 장비에 내 목숨이 달려 있다는 마음으로 제작에 임했다. 이런 정신은 등산복을 만들 때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등산복은 옷이 아니라 ‘입는 장비’다. 고산지대에서 체온 유지는 생명유지와 직결되는 문제이고 그 역할을 등산복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1970년 스코틀랜드로 겨울 등반을 갔다가 럭비 유니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등산복 사업을 시작했다. 기능적 측면에 집중한 그는 보온성이 좋아도 땀을 머금고 있으면 산 위에서 얼 수 있기에 물기를 머금지 않는 신소재로 등산복 내복을 만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그가 만든 옷은 많은 등반가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구명복이 되었다. 그렇게 등반 장비 사업을 보조하려고 1972년에 출발한 등산복 회사가 지금의 ‘파타고니아’ 브랜드로, 견고하고 기능적인 스포츠웨어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1991년에 경영 위기를 겪었다. 창립 이후 매년 30% 이상 성장세를 보여왔는데  미국의 경제 불황에 엮여 규모를 줄여야 했던 것이다. 가족중심적인 기업에서 그는 직원 120명을 처음 해고했고, 지금도 이 날을 회사 역사상 가장 슬픈 날로 기억한다. 유지할 능력이 없는 성장은 언젠가 무너지고 만다는 진리를 배웠고, 제어되지 않는 급속도의 성장이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며 쌓인 재고는 자연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사실도 체험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문제가 커지면서 그는 대장장이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환경과 인간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구를 지키는 환경운동가의 길로 나아간 그는 버려지지 않는 제품, 오래 가는 제품, 중고를 대물림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회사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의 생명을 살리는 것임을 항상 강조했다. 이미 그는 80년대부터 회사 매출의 1%를 환경 단체에 기부했고, 적자가 나더라도 기부에는 예외가 없었다. 

이본 쉬나드 회장은 이 책의 초판을 쓰는 데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개정판은 2016년에 나왔고, 한국어판은 2020년에 라이팅하우스에서 출간했다.
이본 쉬나드 회장은 이 책의 초판을 쓰는 데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개정판은 2016년에 나왔고, 한국어판은 2020년에 라이팅하우스에서 출간했다.

지구라는 놀이터에서 노년의 소풍을 즐기다

설산, 암벽, 강한 바람, 일렁이는 파도 앞에서도 제 기능을 다하는 옷과 장비를 만들기 위해 그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극한 상태를 몸소 경험했다. 생명이 위태로웠던 상황도 여러 번 있었으나 매번 지구와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는 큰 감사를 느꼈다. 

회사 소유권 이전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 써서 파타고니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의 편지 중 일부 내용이다.   

“환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지구 환경 위기를 막기 위한 싸움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마땅한 방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방법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새 방법은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가 되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어느 시인의 시를 혼자 흥얼거렸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이본 쉬나드 회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노년의 소풍을 즐기고 있다. 외톨이 시절 그의 놀이터였던 산과 호수는 그가 지구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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