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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날개가 있다Stroll of Mind
박민희 | 승인 2023.01.18 02:48

오래 다녀서 익숙한 길이 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서 별 의심 없이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익숙해졌을 것이다. 차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두 발로 걸어가든, 익숙한 길을 갈 때에는 편안하다. 보지 않고도 저 모퉁이를 돌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떤 지점에서 길이 고르지 않은지 다 알기 때문이다. 

낯선 길을 갈 때에는 아무래도 불편하다. 무슨 상황이 펼쳐질지 몰라 미리 준비할 수도 없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갑자기 생길 때를 대비해 평소보다 신경을 더 쓰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낯선 길이 좋아 일부러 골라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낯선 것은 익숙한 것보다는 불편하고 위험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이 있다. 어렸을 적 시골집에서 종종 보았던 광경이다. 개가 닭을 쫓아가면 닭이 이리저리 뛰며 피하다가 곧 잡힐 것 같은 상황이 되면 황급히 날개를 파닥거려 담벼락 위로 올라가곤 했다. 평소에는 느긋이 걸어다니지만, 위급하면 닭은 날아오르는 새가 된다. 그것은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날개가 있다.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자신에게 있는지도 잘 모르지만, 길이 없을 때 날개를 펴면 단숨에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므로 날개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느끼는 익숙한 곳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만 있으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거나 큰 어려움을 만나면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가야 하고,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세계는 자신의 지금 상태와 너무 다르고 멀어서 갈 수 없어 보인다. 그때 날개가 필요하다. 인간의 날개는 깃털 달린 새의 것과는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려면 ‘믿음’의 날개를 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날개를 한 번도 펴지 않고 자신이 이해 가능한 세계에서 평생을 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야 할 순간이나 사건이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그때 날개를 펴는 것이다. 믿음의 날개를 펴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고 위험하게 느껴지지만, 일단 한번 날아올라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면 놀라운 경지를 만난다. 자신에게 날개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 그로 인해 더 넓고 멋진 세계로 갈 수 있음이 ‘어메이징’ 그 자체다.

그런데 믿음의 날개를 펴는 과정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잘못 믿으면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파멸의 세계로 곤두박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날개를 펼 때에는 ‘내가 믿으려고 하는 것이 진실인가, 아니면 그럴 듯하게 포장된 거짓인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늑대가 양의 탈을 써도 새끼를 낳으면 늑대가 태어나듯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겉과 속이 같은 것, 말과 삶이 같은 것이 바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대상이다. 

인생의 수많은 길 중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토대로 안전하게 보이는 길을 골라 걷는다. 그러다가 더 이상 길이 없어서 어렵거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고통스러워하며 주저앉는다. 그때 믿음의 날개를 펴자.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있다. 

글 박민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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