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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는 공공디자인, 도시 품격과 안전의 지킴이
김연아 | 승인 2023.01.16 15:46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일 때엔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다가, 얼마 전부터 시내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버스정류장은 더 쾌적하고 편리하게 달라져 있었고, 늘 다니던 길도 눈높이가 높은 버스에서 바라보니 승용차에서 볼 수 없었던 도시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속에는 도심을 안전하고 경쾌하게 해주는 디자인들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Public Design

길을 걷다보면 예전과 달라진 시설물들이 보인다. 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첨단 서비스가 더해진 정류장, 인도에 가지런히 놓인 푸른 식물들, 허름했던 담벼락에 그려진 산뜻한 벽화들 그리고 용도별 분리수거 쓰레기통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보인다. 게다가 밤에는 횡단보도를 집중적으로 비추는 조명이 밝게 설치되어 있어서, 도심 구석구석이 안전과 편의성뿐 아니라 시민들의 눈을  편하고 즐겁게 해주는 디자인으로 바뀌어 있다. 

이런 시설물을 우리는 ‘공공디자인Public Design’이라고 부른다. 사전적 정의로 ‘공공성’은 국가나 사회 구성원에게 모두 관계되는 것을 의미하며, ‘공공디자인’은 공공장소의 여러 장비나 장치를 보다 합리적으로 꾸미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내 집 대문을 열고 나오면 곧바로 마주치는 길에서부터 공공의 개념이 적용되는 셈이다. 따라서 공공디자인은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또한 기호와 취향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동시에 시각적 원리에도 부합하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일정 규격 이상의 건물을 도심에 지을 때 건축주의 마음대로 색상이나 디자인을 결정할 수 없다. 이유는 그 건물이 이미 도심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적, 정서적으로 공유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구광역시 건축경관 심의위원을 할 때였다. 어떤 건물주가 자신의 취향에 맞춰 건물의 가장 넓은 면을 강한 오렌지색으로 하려고 했는데, 심의 과정에서 심의위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도시 경관을 해치지 않는 중간 채도의 다른 색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1. 노선표와 도착시간을 디지털 시스템으로 알려주는 버스정류장. 2. 시민의 여가를 위해 곳곳에 만들어진 공원과 벤치에서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다. 3. 거리 미관을 해치던 허름한 담장에 산뜻한 벽화를 적용해 새롭게 바뀐 모습이다. 4. 기능적으로 디자인된 분리수거용 쓰레기통들이 깔끔하다. 사진 @내 손안에 서울

‘공공’에 ‘디자인’이 더해져 ‘공공디자인’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분야였는데, 경제발전으로 삶이 윤택해지면서 디자인은 우리의 사적, 공적인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지금은 품질 면에서는 어떤 브랜드를 택해도 큰 차이가 없는 이른바 고품질 시대이다. 그러므로 남들과 똑같은 모양을 피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져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이다. 사람의 욕구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더 나은 삶을 찾게 되고 새로운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진다. 그때 디자인은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다.

도시와 국가가 브랜드가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도시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글로벌 시대에 공공디자인은 도시 마케팅의 전략이 되어 도시와 국가 홍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도시의 가로등과 벤치, 휴지통 등의 스트리트 퍼니처Street furniture 그리고 다양한 안내 표지판들과 거리의 조형물들을 통해 우리는 도시 이미지를 가늠할 수 있다.

1. 맨해튼의 노란택시와 둥둥 떠 있는 듯한 노란색 신호등이 경쾌한 거리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사진 필자 제공. 2.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정보가 잘 전달되도록 픽토그램을 이용한 길거리 안내표지판. 사진 @untappedcities

뉴욕의 공공디자인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활기 넘치는 ‘메가시티’ 뉴욕에서 무언의 약속처럼 도심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바로 공공디자인이다. 얼마 전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종일 맨해튼을 걸어 다니다가, 다리가 아프고 피곤이 몰려와 잠시 쉬고 싶었는데 마침 건너편에 깔끔한 벤치가 눈에 들어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누가 이런 곳에 벤치를 마련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낯선 곳이지만 푸근해졌고, 옆에 앉은 사람과 어디서 왔는지 인사도 나누면서 출장 여정이 더욱 즐거워졌다.

이처럼 공공디자인은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도시의 품격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야 할 때 환하게 비추는 가로등과 벤치는 위험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하며 든든하게 지켜주는 도시의 품격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굳이 말이나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작은 경험들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고 다시 찾게 만들 것이다.

뉴욕 거리의 벤치는 낯선 곳을 푸근하게 만들어준다. 사진 @gothamist

맨해튼의 노란택시와 곡선 지지대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노란색의 신호등은 교통환경 안전에 주의력을 높이며 경쾌한 분위기의 거리를 만든다. 뉴욕의 공공디자인은 다정하게 사람들과 마치 대화를 하듯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피곤한데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가세요.’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지? 내가 알려줄게.’ ‘햇볕이 뜨거운데 그늘로 와.’ 등 안전을 보장하면서 편리하고 한없는 배려를 가득 담고 있다. 그래서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정보가 잘 전달되도록 이미지와 픽토그램을 이용한 맨해튼의 길거리 안내표지판은 지구촌 여러 곳에서 방문한 낯선 관광객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존재인지 모른다.

볼거리 많은 뉴욕 거리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런 공공 시설물들이었다. 디자인 전공자여서 그랬을까? 엄청난 크기와 용도에 따라 디자인이 다르게 제작된 휴지통들은 그 자체가 설치작품처럼 느껴졌다. 이번 출장여행에서 본 네 개의 공공시설물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1,2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기차역이라는 대표적인 공공시설에 품격 있는 디자인을 덧입혀 문화적 가치를 높인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지금은 기차 승객보다 이곳을 구경오는 관광객 숫자가 더 많다고 한다. 사진 필자 제공.

뉴욕의 강한 자부심,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역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Grand Central Terminal은 자동차의 발달로 기차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한때 폐쇄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뉴욕의 역사를 사랑하며 도시의 기념비적인 건물을 남기기 위하여 재클린 캐네디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지지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회생하게 되었다. 터미널 입구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정류장의 중앙 홀을 지나 터미널 내부에 들어섰을 때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그동안 알고 있던 기차역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는데 무엇보다 고풍스러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우아함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조도를 낮게 한 실내공간은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어수선한 터미널을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초록색 천정을 수놓은 은은한 조명은 마치 밤하늘 별자리 같은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냈고, 측면에 반듯하게 펼쳐진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미국 국기는 그래서 더 돋보였다. 우리나라 기차역 어디에서도 커다란 태극기가 펼쳐진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아래로 늘어뜨린 샹들리에 조명과 양쪽 대칭으로 이어진 석조계단과 아치형 게이트는 공간의 우아함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기차 이용객보다 이곳을 구경오는 관광객 숫자가 더 많다는 통계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전체적으로 고전미를 풍기는 가운데 1층엔 모던 디자인의 대표주자인 애플스토어가 자리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 첨단 기술을 가진 나라이지만 그 중심인 뉴욕엔 역사와 정신을 지키려는 ‘강한 자부심’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브라이언 파크의 철제의자는 뉴욕 공원의 시그널 디자인이 될 만큼 대중화되었다. 사진 필자 제공.

도심의 가치를 높이는 브라이언트 파크 

뉴욕과 서울의 차이를 설명할 때 공원의 숫자를 비교할 만큼 뉴욕 도심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다. 미드타운 5,6번가 사이에 있는 브라이언트 파크 Bryant Park에서 볼 수 있는 공공디자인은 마치 협주곡처럼 서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공원 자체가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느껴진다.

‘Bryant Park’ 라는 로고가 새겨진 얇고 가느다란 철제 의자는 공원의 가치를 충분히 높이는 동시에, 작고 동그란 테이블과 함께 마주 앉는 사람과의 거리를 좁혀서 저절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친밀감을 주고 있다. 또한 잔디밭과 소담스러운 꽃으로 가득한 정원은 고층 건물과 뉴욕 공립 도서관 건물로 둘러싸인 이곳을 낙원처럼 상큼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자유와 배려가 공존하는

모든 시민에게 개방된 뉴욕공립도서관 내부. 사진 필자 제공.

뉴욕공립도서관

도심 한가운데에 세워져 시민들에게 개방된 뉴욕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은 커다란 성처럼 웅장한 형태다. 건물은 바닥에서 몇 계단 들어올려져 자리하고 있는데, 몇 개의 계단이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거나, 같이 온 친구들과 계단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 자연스러움이 건물 자체와 어우러져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넓고 탁 트인 실내공간에는 높은 층고와 도서관임을 증명하듯 엄청난 양의 책들로 벽면 천정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리듬감마저 주는 스탠드와 커다란 테이블에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그만큼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모습이 서로를 배려하는 공공디자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살아나는 것 같다. 

도심 한가운데에 세워져 시민들에게 개방된 뉴욕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은 커다란 성처럼 형태가 웅장하다. 사진 @위키피디아

문화적 아이콘이 된 거리의 조형물

볼거리가 많은 맨해튼 거리에 한 번 더 포인트를 주는 거리의 조형물이 있다. 원색의 대형글자를 이용해 조형물을 설치하는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작품 ‘LOVE’가 그것이다.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첫선을 보인 후 맨해튼 6번가에 그 조형물이 설치되었는데, 이것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그 외에도 ‘LOVE’와 동의어인 라틴어 ‘아모르’와 히브리어 ‘아하바’ 조형물도 제작해 동일한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있다.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쾌적하고 편리한 라이프 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현대인들은 끈끈한 가족 간의 유대관계마저 느슨하게 놔둔 채 적당히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혼자 고립된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로버트 인디애나는 다양한 언어로 현대인이 공감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세상이 삭막해질수록 사람들은 서로 보듬어주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궁극적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본성을 표현했기 때문일까? 도심 한가운데에 설치된 그의 조형물은 핫플레이스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작품 ‘LOVE’는 동의어인 라틴어 ‘아모르’(사진 2번)와 히브리어 ‘아하바’ 조형물(사진 3번)에까지 확대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사진 필자 제공.

도심의 공공디자인은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고, 노약자를 배려하는 따스함을 불어넣으며, 동시에 도시의 품격을 잘 나타낸다는 점에서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다. 우리의 내면에도 배려하고 소통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 상대방의 마음과 교류가 되어 더 건강한 마인드를 지닐 수 있다. 새해에는 내 마음 속에도 상대방을 향한 배려가 깃든 ‘공공디자인’을 계획해보자. 

글쓴이 김연아

공간 디자인에 흥미가 많아 대학과 대학원에서 실내건축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 백화점 디자인실에서 디스플레이 관련 실무경험을 다년간 쌓았다. 그 후, 디자인의 본질인 아이덴티티에 대해서 연구해 건축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등학교 교과서 및 저서 집필을 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꾸준히 해왔다. 대구경북 건축경관심의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대구링컨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연아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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