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눈 덮인 산은 심히 아름다워 보인다. 하얗게 변해버린 산을 보며, 언젠가는 꼭 설산雪山에 올라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드디어 올해, 벼르고 벼르던 설산 산행을 실행했다. “추우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라.”라는 어머니의 걱정을 잠시 뒤로 하고, 단단히 옷을 여며 입고 집을 나섰다. 아침부터 거세게 눈발이 흩날렸다. 함께 오르기로 한 친구는 눈이 온다며, 좀 더 오르기 쉬운 산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하지만 아침 9시가 지나니, 구름 가득했던 하늘이 열리며 눈도 멈췄다. 하늘이 도왔다며 산행을 시작했다. 

@flutterer_camper
@flutterer_camper

설산을 오르기 전, 치밀한 준비가 먼저다

등산화, 이게 기자가 가진 등산 장비의 전부였다. 평상시 운동할 때 입는 운동복에다가 등산화만 신으면 웬만한 산은 다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눈이 온 산은 달랐다. 아름다운 모습 뒤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존재했다. 그만큼 특별한 준비물들이 필요했다. 찾아보니, 가장 기본적인 건 아이젠과 방한 장갑, 스패츠였다. 아이젠은 땅이 얼어있거나 눈 쌓인 곳을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해준다. 착용법도 간단했다. 등산화 위에 끼워서 신으면 된다. 스패츠는 등산화와 바지가 젖지 않게 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발 토시이다. 눈이 많이 온 곳에 빠져도 옷이 젖을 염려를 줄일 수 있다. 가장 보온에 취약한 손을 보호해주는 방한 장갑은 필수 중의 필수다. 산을 오르다 보면 다리만큼이나 손을 많이 쓴다. 바위나 밧줄을 잡을 때도 많고, 무엇보다 춥다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오르면 위험하다. 이외에도 평상시보다 옷을 신경 써서 입었다. 두꺼운 옷을 하나 입는 것보다 얇은 옷을 여러 개 겹쳐서 입는 것이 체온을 지키는데 수월하다. 피부와 가장 먼저 닿는 옷으로는 땀을 잘 흡수하고 배출하는 기능성 티셔츠를 입고, 그 위로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되, 바람을 막아주고 보온을 해줄 수 있는 바람막이를 걸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수 기능이 있고, 젖어도 보온이 지속되는 겉옷을 입었다. 산을 오를 때에는 땀도 나고 덥지만, 기온이 낮아 금세 다시 추워지므로 체온을 조절해줄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1. 눈이 쌓였거나 빙판길에서 미끄러짐을 방지해주는 아이젠. 2. 추위에서 손을 보호해줄 방한 장갑. 3. 바지와 신발 위에 입는 스패츠. 눈이 들어와 젖는 걸 막아준다.
1. 눈이 쌓였거나 빙판길에서 미끄러짐을 방지해주는 아이젠. 2. 추위에서 손을 보호해줄 방한 장갑. 3. 바지와 신발 위에 입는 스패츠. 눈이 들어와 젖는 걸 막아준다.

그 다음엔 일주일 전부터 날씨를 확인했다. 목적지가 설산이다 보니, 눈이 와야 했다. 일기예보로 내가 갈 지역의 날씨를 확인하고, 산 주변의 도로에 설치된 CCTV를 찾아 보았다. 국립공원공단 사이트에서도 실시간으로 국립공원으로 등록된 산의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일 날 일출, 일몰 시각을 확인했다. 겨울은 해가 짧고, 등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나 눈이 쌓여 있기 때문에 등산에 몇 시간이 소요될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이렇게 사전 준비를 마치고, 빠진 건 없는지 확인한 후 집을 나섰다.

천천히 오르기 

이번에 오른 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인 청계산이다. 서울 근교에 위치하고, 편한 교통 때문인지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615m의 망경대를 비롯해 청계봉(583m), 이수봉(545m), 국사봉(540m) 등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청계산을 찾은 날은, 겨울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많은 눈이 내린 다음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입구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은 오전 9시 반 경, 함께 등반을 시작한 사람도 많았고,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 사이로 하얗게 덮인 경치가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자연만이 줄 수 있는 황홀한 경치를 아는 사람들은, 이를 잊지 못하고 다시 설산을 찾고 있을 터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 초입은 이미 눈이 녹아서 오르는데 어렵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뉘었다. 이 구간을 지나니 쌓인 눈이 현저히 많아졌다. 일부러 사람들이 드문 코스를 찾아 산을 올랐다. 두껍게 쌓인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났다. 몇몇 나뭇가지에 쌓인 눈들은 투둑투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오르막이 계속되는 구간에서는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에 끼워 신었다. 

산은 온통 흰 눈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그 눈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더없이 청아하게 들렸다.
산은 온통 흰 눈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그 눈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더없이 청아하게 들렸다.

다른 등산객들은 처음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고 등산을 시작한 듯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등에 땀이 났다. 이렇게 낮은 온도에서도 땀이 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그 상쾌함이 배로 느껴졌다. 잠깐 외투를 벗어 체온을 살짝 낮춰주었다. 땀이 더 나서 옷이 젖으면 체온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옷이 젖지 않게 했다. 그리고 다시 쌀쌀해질 무렵, 옷을 다시 입었다.

그렇게 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아침까지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눈이 너무 많이 오면 어떡하지?’, ‘이 눈이 쌓이지 않고 다 녹아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체력적인 걱정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가했다. 오늘 날씨에 지레 겁먹고 포기했으면 후회했을 뻔했다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차분히 내려오기

산은 언제나 내려올 때 더 신중해야 한다. 설산에선 더더욱 그렇다. 올라갈 땐 거침없이 밟았던 땅이, 내려올 때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라 주저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곳은 더욱 그랬다. 눈 속에 발이 푹푹 들어가기도 하고, 생각보다 더 깊었다. 급하게 내려오지 말고 차분히 내려와야 다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산이라도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경치는 사뭇 다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특히 청계산의 계곡은 눈이 덮이고 깡깡 얼었지만, 그 사이에서 졸졸 흐르는 계곡 소리가 무척 듣기 좋았다. 등산객들의 모습도 더 잘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일행을 기다리는 모습, 행여 미끄러질까 봐 서로의 장비를 챙겨주는 모습, 산 중턱에 앉아 따뜻한 음료를 나눠 먹는 모습, 그리고 하얀 산속에서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는 형형색색의 등산복들을 보니, 설산의 묘미에는 자연의 아름다움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녀와 보니 더 보이는 것들

산에서 내려온 뒤, 산 아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따뜻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부드러운 순두부를 한 입 먹으니, 추위에 경직되어 있던 몸이 금세 풀어졌다. 음식을 나눠 먹는 동안 함께 온 친구는 나에게 “너는 설산을 너무 우습게 알아.”라며 걱정 어린 핀잔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설산에 가서 귀에 동상을 입고 한동안 고생했다. 산을 누구보다 자주 오르고, 설산도 여러 번 다녀온 그는 아름다움 속에 가려진 위험성이 걱정되었던 것이었다. 사실 올라가 보니, 설산을 오를 때 필요한 건 가령 아이젠과 스패츠, 장갑뿐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얼굴과 귀를 보호해줄 방한 모자나 바라클라바도 필요하고, 등산 스틱도 필요하다. 거기에 산마다 기온이 상이하니 옷도 더 잘 챙겨야 하고, 중간중간 몸을 녹여준 따뜻한 음료, 혹시 모를 어둠에 대비하기 위해 헤드렌터까지 있다면 좋지 않을까.

맛보기로 다녀온 청계산은 ‘설산의 두려움’을 살짝 지워주었다. 그리고 친구의 충고대로 조금 더 준비해서 조만간 상고대(*안개 구름 등의 미세한 물방울이 나뭇가지에 붙어 순간적으로 얼은 꽃. 상고대는 산악인들이 부르는 통칭이며 순수한 우리말이다.)가 맺힌 ‘설산’에 방문해보려 한다. ‘그땐 지금보다 더 자연의 웅장함과 경이로움에 감탄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번 산행을 마쳤다.

설경이 아름다운 겨울 산행지 추천 4

겨울의 한라산은 그 어느 설산보다 경이롭다. 넓은 평야처럼 사방이 트인 윗세오름 겨울왕국의 실사판이라 불린다. @flutterer_camper
겨울의 한라산은 그 어느 설산보다 경이롭다. 넓은 평야처럼 사방이 트인 윗세오름 겨울왕국의 실사판이라 불린다. @flutterer_camper

한라산

우리나라 산 중에 가장 눈이 많다는 한라산은, 설산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한데 모아둔 곳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의 한라산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곳을 다시 안 찾고는 못 배길만큼, 이 곳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좀처럼 셀 수 없다. 어리목탐방구간에서 영실 코스까지는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입산 제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어리목탐방안내소에 12시까지 입산을 해야 등산이 가능하다. 또한 윗세오름대피소에서는 15시 이후에는 하산을 해야 한다. 해가 짧고, 산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제한이 있다 보니 빠르게 이동해야 하는 곳이다. 특히나 윗세오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알프스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등산코스 추천 : 어리목탐방안내소 - 사제비동산 - 윗세오름 -  병풍바위 - 영실탐방로입구 – 영실매표소

상고대와 눈들이 가득 맺힌 태기산의 모습. @flutterer_camper
상고대와 눈들이 가득 맺힌 태기산의 모습. @flutterer_camper

태기산

겨울 산으로 유명한 태기산은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그 설경이 절정을 이룬다. 특히나 심산계곡과 낙수대 폭포가 만들어내는 모습은 유난히 아름답다. 이곳 역시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돌아가고 있는데, 그 모습 뒤로, 태기산 주변으로 솟아있는 함백산, 태백산, 가리왕산 등이 첩첩산중을 이룬다. 그 위에 가득 맺혀 있는 눈과 상고대들이 흩날릴 때마다, ‘설경이란 이런 거지!’ 하며 손바닥을 칠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구간이 군부대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서, 가기 전에 길을 꼭 확인하고 오르길 바란다.

사진 덕유산국립공원
사진 덕유산국립공원

덕유산

제대로 된 눈꽃과 상고대를 볼 수 있는 덕유산은 높이 1,614m로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산에 속한다. 무주 덕유산리조트가 가까이에 있어서 여기서 운행하는 곤돌라에 탑승하면 설천봉에 10분 이내에 도착한다. 설천봉에서 20분 정도 올라가면 정상인 향적봉에 도착할 수 있다. 높이는 높지만, 곤돌라*로 쉽게 올라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서, 등산 초보자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향적봉에서 설천봉으로 내려오는 구간이 덕유산의 눈꽃을 절정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두꺼운 상고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이곳에는 인파가 몰리니, 안전 산행! 

선자령에 가면 이미 눈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려는 백패커들의 텐트를 만나볼 수 있다. @flutterer_camper
선자령에 가면 이미 눈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려는 백패커들의 텐트를 만나볼 수 있다. @flutterer_camper

선자령

선자령은 산세가 완만해서 등산 초보자에게도 어렵지 않은 곳에다가, 워낙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기에, 겨울에도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선자령은 1,157m의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고, 동해의 강한 바람이 만들어내는 상고대 때문에 인기 높은 눈꽃 산행지이다. 거기에 선자령은 산이라기보다는 봉우리에 가까워 사방으로 트여 있는 풍경이 일품이다. 선자령에서만 볼 수 있는 개방감과 풍력발전기의 모습이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발현한다. 그래서인지 새해 일출 산행지로도 유명하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