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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했다’는 말이 남기를
이주성 | 승인 2023.01.12 18:36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았다. 가장 떨렸던 순간을 꼽자면, 한 강연 대회에서 대상을 받던 날이다.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제 경험을 많은 분과 나눌 수 있어 기뻤습니다!” 2022년은 내가 생각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 해였다. 나의 삶을 소재로 강연하는 모습, 한국을 방문한 아프리카 에스와티니의 한 시장님과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 어른들을 먼저 찾아가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 등.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던 ‘나’에게 낯선 모습들이 포착될 때면 주변 사람들도, 나도 놀라곤 했다. 나에게 이런 새로운 면모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2년 전 아프리카 에스와티니로 해외봉사를 다녀오면서부터였다. 

에스와티니에 도착해 마주한 현지인들은 눈만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고, 오랜 친구를 대하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그들의 웃음에 나도 녹아들었다. 아프리카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즈음, 지부장님이 나를 불러 어떻게 지내는지, 고민은 없는지 등을 물으셨다. 할 말이 없었던 나는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순간, 한국에서 늘 듣던 말이 떠올랐다. “주성아, 넌 무슨 마음을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어. 말 좀 해봐.” 부모님도, 친구들도 사람들은 내게 늘 말을 하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하라는 걸까?’ 솔직히, 공부나 대외활동 등 내게 주어지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나를 보며 ‘이 정도면 괜찮게 살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스와티니에서도 나는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다시 그 답답한 문제를 마주한 것이다. 

하루는, 지부장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주성아,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 하지 말고, 아주 소소하고 작은 것도 괜찮으니 아무거나 이야기해봐. 그러다 보면 마음이 열리고, 네 이야기를 하는 게 점점 편해질 거야.”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 때였다. 한국에서 온 단원들의 적응을 돕던 현지인 ‘롤로’가 전체 회의를 마치며 말했다. “난 너희들과 오래 친구로 지내고 싶어. 앞으로 무엇이든 좋으니 너희 이야기를 들려줘.” 그 말 한마디가 너무 반가웠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준 기분이랄까. 나는 그날부터 롤로를 찾아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 행사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일, 기분이 안 좋았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롤로는 언제나, 어떤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주었다. 어려움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이후 나는 용기를 내어 다른 현지인에게도, 지부장님과 동료 친구들에게도 무엇이든 말하기 시작했다. 분명한 건, 열심히 일만 하던 때 보다 하루하루가 더 즐거워졌다는 것이었다. 

고마운 친구, 롤로와 함께. 사진 오른쪽이 필자.

또한, 대화를 시작하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봉사활동도 그저 열심히, 성실히 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현지에서 오랜 날 봉사해 오신 분들은 ‘이 활동을 통해 또 누구에게 소망이 전해질까?’를 상상하며 즐겁게 활동하는 걸 보았다.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을 보았다. 장애물을 만나거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쉽게 좌절하는 나와 달리, 서로의 손을 잡고 일어서 일을 하나씩 처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종종 생각했다. ‘내가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구나. 언제든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구나.’ 

그날의 교훈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지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지난해, 나는 나 홀로 열심보다, ‘함께’를 택하며 살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부모님에게, 그리고 여러 멘토에게 어느 때보다 많이 묻고, 듣는 해였다. 그래서인지 1년을 마무리하며 ‘고생했다. 열심히 했다.’라는 말보다, ‘감사했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는 지금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있다. 언젠가 병든 사람을 살리는 약을 개발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내년은 학년이 올라가는 만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것도, 생각해야 할 것도 많다. 물론 최선을 다해 공부하겠지만, 내년에도 혼자가 아닌 함께 해내고 싶다. 1년 후에도, ‘고생했다.’라는 말보다 ‘감사했다.’라는 말이 내 마음에 남기를 바란다. 반갑다, 2023년! 

이주성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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