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1

‘새해 목표’, ‘신년 습관’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글쓰기’가 많이 나온다.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힘겨워하면서도, 글을 쓰려 하고 그 글들을 모아 책을 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한다. 모니터의 빈 A4용지를 바라보면 막막하고 두려우면서도 말이다. 글을 좀 쉽게 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렇게 쓰라! 저렇게 쓰라!” 숱한 조언과 충고가 난무하지만, 의지할 묘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고수들은 많이 써보라고 한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글을 갈고 다듬어야만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게 전부일까? 거기에 뭔가 더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글쓰기’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이번호부터 연재한다. 단언컨대 비법은 아니다. 하지만 따라 하면 글쓰기가 한결 더 친숙해지리라는 점은 자신한다.

가수 이적 씨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음악이든 글을 쓰는 것이든 막상 시작하기 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하지 못해요. 마치 미로 속에 갇힌 쥐가 꿈틀꿈틀거리며 나아가는 것과 같죠.”
석현혜, 가수 이적, “음악은 광끼로 이야기는 쿨하게”, 조이뉴스24, 2005년 6월 15일

그는 2005년 언론 인터뷰에서, 크리에이터의 고통과 고민을 가수가 아니라 작가로서 그렇게 표현했다. 그가 쓴 판타스틱 픽션《지문 사냥꾼》이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화제를 모을 때였다.

글을 쓰거나 곡을 짓거나,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알지 못한 채 한발 한발 내디뎌야 한다. 그런 막막함과 두려움을 견디며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글을 쓰려고 모니터 앞에 앉아도, 많은 사람이 껌뻑거리는 커서와 오랫동안 눈싸움만 한다. 자판을 두들기기는 하지만, 곧 ‘딜리트Delete’와 ‘백스페이스Backspace’ 키를 눌러 자기 생각을 지우고 만다.

그렇게 썼다가 지웠다 하며 모니터 속 A4용지에서 헤맨다. 미로에 갇힌 쥐가 탈출로를 찾아 꿈틀거리듯….

가수 장기하 씨는 2020년 9월《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산문집을 펴냈는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쓴 건 처음이에요. … 첫 글을 쓸 때는 세 줄 써 놓고 그다음 날까지 그다음을 못 쓰겠는 거예요. … 조금 익숙해진 다음에도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박수진,《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기자간담회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전달할 수 없는 생각들”, 교보문고 북뉴스, 2020년 9월 15일 

이 말은 글쓰기의 어려움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흔히 겪는 고통이다. 이적 씨와 장기하 씨는 본업이 가수지 작가는 아니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익숙지 않은 영역이다.

많은 사람이 호소하는 글쓰기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전북대 강준만 명예교수는《글쓰기가 뭐라고》에서 “글쓰기의 고통은 어디까지나 문학가들의 몫이다. 보통 사람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며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보통 사람들이 글쓰기의 고통을 호소하는 까닭은 문인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통 사람들이 워낙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 실제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느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작가들이 우주를 책임지려는 듯한 기개를 떨치며 고통스러워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그 같은 요구를 한 적이 없지 않으냐고 그는 묻는다. 그는 “작가들이 말하는 ‘글쓰기 고통’에 속지 마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속이지도 마라. 눈높이를 낮추면 ‘글쓰기 고통’은 ‘글쓰기의 즐거움’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강준만,《글쓰기가 뭐라고》, 인물과사상, 2018년 11월, 21-27쪽

글쓰기를 좀 쉽게 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일반인이 본격적으로 글을 쓸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할 때는 그 일의 본질을 깨치면 조금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은 특정 정보를 기록하고 전하는 수단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만 해도 글쓰기가 덜 막막하다.

익숙지 않은 일을 할 때는 무작정 시작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미리 검토, 점검, 선택, 결정해서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친다. 새 일에 관한 기획안이 마련되면 계획을 짜고 그에 따라 실행하면 된다. 글도 다르지 않다. 글을 쓸 때는 미리 무슨 내용을 어떤 순서로 써나갈지 기획해야 한다. 짧은 글을 쓸 때도 왜, 무엇을, 어떻게 쓸지 미리 결정해야 한다. 글을 쓰는 목표와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왜’에 따라 ‘무엇’이 정해진다. 목표와 목적을 충족할 수 있는 ‘무엇’을 다뤄야 한다. ‘어떻게’는 ‘무엇’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뜻한다. ‘왜’ ‘무엇’ ‘어떻게’가 흥미롭게 조합돼야 좋은 글이다. 이 정도만 알아도 글을 쓸 때 두려움이 덜하다.

이런 부분에 관한 생각이 정리됐다면 편하게 써나가면 된다. 한 가지, 너무 잘 쓰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흔히 과도한 의욕이 참사를 빚는다. ‘필생의 역작’ 같은 말은 아예 떠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멋진 글, 좋은 글을 쓰려고 마음먹으면 그 순간 머리와 손가락이 얼어붙고 만다. 그저 문법에 어긋나지 않는 문장을 하나씩 이어가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특히 남보다 낫게 쓰겠다고 벼르는, 경쟁심은 품지 말아야 한다. 흠결 없는 완벽한 글, 완벽주의를 추구하다 보면 한 줄도 쓰기 힘들다. 어이없는 잘못만은 저지르지 않겠다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면 조금은 쉽게 쓸 수 있다.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인정하고 명문장과 일필휘지는 꿈꾸지 말아야 한다.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는 문장만 또박또박 쓰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비문만 없어도 기본은 된 글이다. 전문작가들도 실수 없는 글, 흠 잡히지 않을 수준의 글을 쓰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글쓰기를 하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저런 눈치 보지 말고 글에만 집중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담담히 표현하면 된다. 독자와 대화하듯 쓰면 된다. 그렇게 쓴 게 가장 좋은 글이고 높이 평가받는다. 가까운 곳에서 글감을 찾는 게 현명하다. 자신이 하는 업무나, 취미생활, 관심 영역에서 글의 주제를 선정하는 게 좋다. 그래야 상대적으로 쉽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 소재를 찾기도 편하다. 그걸 독자 눈높이에 맞춰 정리하면 좋은 글이 된다. 물론 글에 나름의 독특한 시각, 가치, 정보, 지식을 보태야 한다. 그렇다고 고담준론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읽는 사람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전하는 게 가장 좋다. 전문작가들도 글은 편하게 써야 최상의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자기계발 저술가 공병호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글쓰기는 골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너무 잘 쓰려고 하면 ‘뒤땅’을 때리기 쉽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화하듯 편안하게 풀자’가 그의 글쓰기 원칙이다.
구본준, 한국의 글쟁이들/⑪ 자기계발 저술가 공병호 씨, 한겨레신문, 2006년 10월 26일 

따져보면 글쓰기가 고통스러운 까닭은 세 가지 때문이다. ‘너무 잘 쓰려고 한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 평가가 두렵다.’ 글쓰기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준비를 충분히 해야 한다.’ ‘평가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욕심을 부리면 고통이 따른다. 편한 상대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부담 없이 하듯 쓰면 덜 힘들다. 글은 머리를 쥐어짠다고 나오지 않는다. 글쓰기는 자료를 적절히 배열하는 일이다. 글은 자료로 쓴다. 자료가 부족하면 글이 꼬인다.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주변 시선과 평가를 무시할 수는 없다. 적당한 긴장감을 느낄 정도만 의식하면 된다.

세상에는 글쓰기를 쉽게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조언이 난무한다. 그런 충고를 따라도 글쓰기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힘들 것이다. 과연 글쓰기가 즐거워질 수 있을까. 오히려 글쓰기 고통과 친해지는 게 낫지 않을까. 무덤덤해질 때까지….

글쓴이 이건우
책 쓰는 법을 연구하고 강연한다. 현재 일리출판사 대표이다. 조선일보 편집국 스포츠레저부, 수도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에 참여했으며, 편집국장으로서 신문을 만들었다. 서울 보성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엄마는 오늘도 책 쓰기를 꿈꾼다》,《직장인 최종병기 책 쓰기》,《누구나 책쓰기》가 있고,《모리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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