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두 번째 해외봉사, 최수희

형형색색의 풍선을 들고 싱그럽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주인공들. 이들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새해를 맞은 봉사단원 최수희 씨와 그가 현지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말라위에서 느낀 행복과 감사’를 풍선 하나하나에 힘껏 불어넣었다는 최수희 씨. 그 풍선 속 추억들을 풀어보는 심정으로, 그가 보내온 봉사 체험기를 읽어보았다.

직장인, 돌연 해외봉사 선언하다

“수희 씨, 보면 볼수록 참 성실하고 싹싹해!”

1년 전, 나는 순탄히 회사 생활을 이어가던 5년 차 직장인이었다. 신입사원 티를 벗고, 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한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받은 월급으로 꼬박꼬박 저축도 하고, 휴가를 모아 친구들과 해외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20대의 삶.’ 그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다. 처음엔 목표를 이룬 내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 수 없는 허무감에 시달렸다. 물질적인 여유는 생겼지만, 마음에는 늘 쉼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2014년도를 떠올렸다. 좋은 음식을 먹고, 멋진 여행지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다가도 갑자기 그때가 생각이 났다. 인도 어느 마을에서 단출한 티 차림에 구슬땀을 흘리며 봉사활동을 하던 그 시절의 ‘나’는 별 이유 없이 세상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참 행복했었는데….’ 그날에 대한 그리움은 종종 ‘그런 날이 다시 내게 올까? 내가 다시 해외봉사를 떠난다면 어떨까?’라는 꿈같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3년이 흘렀을 때였다. 봉사단을 관리하시던 선생님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날을 계기로 어렴풋했던 상상이 현실에 성큼 가까워졌다. 아프리카 말라위로 해외봉사를 떠날 기회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당시,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1년간 봉사를 떠나겠다는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동료, 친구들까지 모두 나를 말렸다. 너무 늦었다고 했다. 나 또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머릿속은 말라위로 가득 차 있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일지도 몰라. 더 늦기 전에 가슴 벅찬 행복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올해 초, 나는 말라위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가난’의 새로운 정의

아프리카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 말라위. 그곳에 도착해 내가 처음 목격한 건 ‘가난’이었다. 허름한 움막집에 살며, 신발도, 옷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단돈 200원이 없어서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옥수숫가루로 만드는 현지 음식인 ‘시마’조차도 잘 먹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말라위의 현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그곳에서 종종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친구들에게 버스비를 빌려야만 했던 날. 비 오는 날이면 밑창이 떨어진 신발 사이로 들어온 빗물에 늘 축축했던 양말. 돈 문제로 자주 다투시던 부모님의 모습. 가난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확신했다. 말라위에서 마주한 가난은 내가 한국에서 겪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말라위 사람들은 우울해하거나, 불평하며 살지 않았다. 그들은 자주 웃었다. 소중한 한 끼에 함박웃음을 지었고, 늘 끊기던 전기가 들어올 때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부장님께서 말라위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은 적이 있다.

‘카왈렛’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들을 위한 즉석 노래 교실을 열기도 했다. 사진 본인 제공.
‘카왈렛’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들을 위한 즉석 노래 교실을 열기도 했다. 사진 본인 제공.

“얼마 전에 누군가가 제게 와서, 마을 사람들이 떨어진 옷을 입고 일하는 걸 보곤 너무 불쌍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생각해주시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껏 만나왔던 사람 중 가장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보면, 무엇이든지 배우고 수용해 놀랍게 변할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저는 말라위가 최빈국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중심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충격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지부장님은 그들이 얼마든

지 꿈꿀 수 있으며, 오히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베푸는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오셨다. 그리고 그 마음을 그대로 받은 현지인들은 실제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꿈을 꾸며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맛보고 있었다. 지부장님의 눈으로 말라위를 바라보면 그곳은 불쌍한 나라가 아니었다.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나라였다.

며칠 후, 현지 친구들과 함께 센터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가 현지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갑자기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자연스레 화음을 넣기 시작했다.

“오달라문투 와쿠페자무예 포페자 이예 와페자모요….”

어느새 멋진 노래 한 곡이 되어 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날 불렀던 곡은 ‘오달라문투’라는 노래였다. 말라위 사람들의 정신이 담겨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 노래. 오달라문투란 ‘복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찾고 바라는 사람은 누구나 복 받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말라위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과 함께하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했다. 가사를 곱씹으며 생각했다. “말라위 사람들은 진짜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내가 잘못 보고 있었어.”

그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내게도 작은 변화가 일었다. 나에게 가난은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되는 불행, 상처였으며 비정상인 상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말라위에서 살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는 ‘부족함 속에 만들어지는 겸비하고, 순수한 마음이 있구나’하고 감탄했고, 하루는 ‘전기도 물도 부족하니까 깊이 사고해야 하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그런 하루가 쌓이니 어느새 내가 가지고 있던 가난 혹은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달라져 있었다.

가난은 불편하고 힘든 것이 맞지만, 그 자체 때문에 내 삶이 불행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내게 없는 것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있어야만 행복하다는 생각에 치우쳐 많은 걸 쥐려고만 했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해하며 누리는 법을 알았다면, 소망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마음을 나도 알았다면 어린 시절에도, 직장을 다니던 때에도 난 충분히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1. 매주 토요일, 나는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나와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2. 말라위에서 생애 첫 ‘강연’을 하던 날. 사진 본인 제공.
1. 매주 토요일, 나는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나와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2. 말라위에서 생애 첫 ‘강연’을 하던 날. 사진 본인 제공.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이곳의 봉사 일정은 빠듯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에 잠들기까지 쉼 없는 활동이 이어진다. 어린이, 청소년,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는 일을 주로 했고, 시간이 날 때면 건축 봉사도 함께 도왔다.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은 토요일. 약 300명의 말라위 주민들이 참석하는 행사 ‘아카데미’가 열리는 날이다. 이날 컴퓨터, 댄스, 건축 등 다양한 수업이 진행되며 마지막 시간엔 강당에 모두 모여 강연을 듣는 시간을 가진다.

어느 날, 지부장님이 날 부르셨다. “수희야, 다음 주 토요일 전체 모임 시간에 강연을 해보면 어때?”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영어를 포기한 사람’이라 불렀다. 그 때문에 인도에서도, 한국에서도 영어를 말해야 하는 상황을 필사적으로 피해왔었다. 하지만 말라위에서 마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 저녁이었을까. 봉사단원 모임 중 이런 이야기가 들렸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안 되는 사람이라고 믿으면,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도 경험하지 못해요.” 생각해 보니, 지부장님은 내 영어 실력이 어떤지, 내가 어떤 마인드로 사는지 다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내게 강연 제안을 하신 것이다. ‘지부장님 눈에 나는 말라위 사람들에게 영어로 소망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할 내용을 한국어로 적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했다. 영어 대본을 품에 넣고 다니며 틈이 날 때마다 외웠다. 처음엔 머릿속에 영어 단어가 뒤죽박죽 섞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다시 절망하려던 때, 주변 현지인들의 조언을 따라 사람들 앞에서 실전처럼 발표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준비한 강연의 주제는 ‘마음의 방향’으로, 어떤 마음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과거의 나처럼 불행하다는 생각 속에 갇힌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서 벗어나 새 마음으로 살기 바라며 강연을 했다. 중간에 말을 더듬기도 했지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참가자들 덕분에 강연을 잘 마칠 수 있었다. 행사가 모두 끝난 후 한 여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한번도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먼저 내 마음이 바뀌면,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사실, 강연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주 치열하게 싸움을 해야 했다. ‘나는 못 해!’ vs ‘충분히 할 수 있어!’ 후자를 택해야만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나는 늘 내가 보는 것을 기준으로, 불행과 행복을 결론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지내며 ‘내가 보는 것이 전부야’라는 생각이 나를 좁은 틀에 가두어 둔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세상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잠시 옆에 두고 옆에 있는 친구가, 지부

장님이, 현지인이 바라보는 모습은 어떤지 배웠다. 그때마다 내 마음에 새로운 변화가 일었고, 그 변화의 바람은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꼭 그 여학생처럼 말이다. 난 그날을 시작으로 종종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앞에 서서 강연을 한다. 언제나 떨리고 부담스럽지만, 이후에 느끼는 즐거움이 더 크다.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호수라 불리는 ‘말라위 호수Lake Malawi’. 크기만큼이나 노을 풍경도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사진 본인 제공.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호수라 불리는 ‘말라위 호수Lake Malawi’. 크기만큼이나 노을 풍경도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사진 본인 제공.

여행이 즐거운 건

말라위의 하늘은 지금껏 내가 봐왔던 하늘 중 가장 아름답다. 특히, 해질녘 노을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여행을 떠나면, 그곳이 어디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처럼 마음도 자리를 조금만 옮기면, 보이고 느끼는 것들이 달라지는 것 같다. 사고방식도, 피부색도, 문화도 모두 다른 말라위. 여기서 나는 마음의 자리를 옮기며 다양한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다 불쑥, 이런 걱정이 올라올 때도 있다. ‘지금 너무 행복한데, 돌아가서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을 살면 어떻게 하지? 또 공허해지면?’ 그러면 옆에 있던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걱정 마. 이곳 사람들과 노래 부르며 느꼈던 즐거움, 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소망을 얻었다고 말할 때 네가 느꼈던 행복은 절대 잊히지 않을 거야. 그게, 네 마음을 다시 움직여 줄 거야.’ 말라위에서 얻은 보물들은 나를 또 어디로 이끌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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