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과 진실 사이, 이스라엘 여행

고대유적과 현대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나라, 어디에서 테러용 폭탄이 터질지 모를 긴장감이 돌기도 하지만, 여전히 여행객들에게는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나라,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들어서 익숙한 듯해도 실제로 가 보면 낯설기만 한 나라. ‘이스라엘’이라고 할 때 연상되는 이미지들이다. 특히 나 같은 기독교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에 한‧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이스라엘에서 열려 여행 삼아 다녀올 수 있었다. 떠나기 전, 투어 스케줄을 보면서 성경 속의 사적지들을 탐방할 생각에 무척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예루살렘 감람산에서 노을 지는 시가지를 바라본 풍경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 경이롭다.
예루살렘 감람산에서 노을 지는 시가지를 바라본 풍경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 경이롭다.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 처음 눈에 띈 것은 아이보리와 회색 빛깔의 건축물들이다. 무채색에 가까운 건물들이 건조한 사막을 떠올리게 했지만, 보면 볼수록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지난봄에 다녀온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는 유럽 건축물들의 고전적 웅장함과 거리의 풍요로운 분위기를 물씬 느꼈는데, 이에 비해 유럽과 지리적으로도 멀지 않은 이스라엘은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도시 분위기는 역사와 전통을 통해 전해오는 풍습이나 생활습관과도 관계가 깊다. 특이한 이스라엘의 분위기를 보면서 이 나라의 역사적 현장에 대해, 또 성경으로만 알고 있던 유대인들에 대해 궁금해졌다.  

통곡의 벽 Western wall

가장 대표적인 명소이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에서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고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 받아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유대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은 남자와 여자가 기도하는 곳이 다르고 남자들은 반드시 키파kippot라고 하는 모자를 써야 입장이 가능하다. 통곡의 벽에 가까이 가서 보니, 많은 유대인들이 벽에 머리를 대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때로는 울면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들의 기도는 통곡의 벽이 있는 곳에 옛 성전을 재건하게 해 달라는 것과 메시야를 빨리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운 이야기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는다.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모든 남자는 모자나 키파를 반드시 써야 한다. 하나님께 바라는 기도의 내용을 쪽지에 적어 돌 틈 사이에 끼워넣는다.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모든 남자는 모자나 키파를 반드시 써야 한다. 하나님께 바라는 기도의 내용을 쪽지에 적어 돌 틈 사이에 끼워넣는다.

그런데도 유대인 관광안내원은 이스라엘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예수님의 이적과 행적지를 알리고, 부활한 무덤이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언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왜 진실을 좀 더 알려고 하지 않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유교적인 관습으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당연시하듯이, 그들도 오래 전부터 내려온 전통과 역사에서 굳어진 관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황금돔 사원 Dome of Rock

통곡의 벽 뒤에 예루살렘의 한가운데 또렷히 보이는 랜드마크가 황금돔 사원이다. 그런데 황금색의 커다란 돔은 예수님을 기리는 성전이 아니라 이슬람 사원이다. 황금돔 사원은 역사적으로도 많은 사연이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헤브론에서 올라왔던 모리아산 꼭대기가 이곳이다. 또한 3천 년 전, 솔로몬은 모리아산 언덕 위에 아버지 다윗왕이 계획했던 성전을 건축했다. 그런데 5백 년 후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성전을 모두 파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그리고 50년이 지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의 몸이 되어 고국에 돌아왔을 때 그 성전은 사라지고 흔적도 없었다. 예루살렘 총독이었던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다시 성전을 재건하였는데, 이후에 헤롯이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더 크고 화려하게 성전을 재건축한다. 

예루살렘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황금돔은 옛 성전 터였으나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다.
예루살렘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황금돔은 옛 성전 터였으나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다.

하지만 기원 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전은 기록된 예언처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져 버렸다. 그때 로마 군인들이 성전의 성벽 일부를 남겨 둔 것이 바로 지금의 ‘통곡의 벽’이다. 이런 끊이지 않는 우여곡절 속에 큰 사건이 또 일어난다. 622년에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멧이 모리아산 꼭대기에서 승천했다고 이슬람교도들이 주장하면서 이곳은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가 되었고, 그래서 이곳에 황금돔 사원이 들어선 것이다. 

초막절 풍습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 마침 초막절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이 기간에 모든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나온 선조들의 40년 광야 생활을 기억하기 위해 초막을 짓고 거기서 생활한다. 출애굽 후 광야를 지날 때 이들과 함께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받은 은혜를 기억하기 위한 축제이다. 초막절의 절정은 마지막 날이다. 일곱 번째 날을 ‘호산나 라바’라고 부르는데, ‘큰 구원의 날’이라는 뜻이다. 이날 ‘아르바 미님’이라는 4가지의 식물을 들고 기도한 후 버들가지를 바닥에 내친다. 마지막 날쯤 되면 싱싱했던 가지들이 바싹 말라서 쉽게 부서지는데 유대인들은 이 부서짐을 자신들의 죄가 깨지는 걸로 경험하며 큰 구원을 소원하는 것이다. 이날 통곡의 벽에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버들가지로 바닥을 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은 믿고 신약성경은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새 언약을 통해 “저희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는데 그들은 여전히 옛 언약 속에 살면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었다. 

현대적인 텔아비브 

2천 년 전 성경 속에 나오는 지명 그대로인 도시들을 다니다가 지중해를 끼고 있는 텔아비브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핑하는 사람, 자유롭게 해수욕을 하는 사람 등 각국에서 온 많은 이들이 휴양을 즐기고 있었다. 조상이 전해준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며 사는 예루살렘에 비해, 텔아비브는 마천루가 즐비한 현대적인 도시였다. 이곳에는 주 이스라엘 대사관들과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은 물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본사도 다 들어와 있었다. 예루살렘이 지금은 유적지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나, 종교적 특성상 언제 전쟁터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텔아비브에 기업 본사를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과 연결해서 이스라엘을 생각해오던 내 머릿속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선 텔아비브가 한참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마침 한‧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평화 콘서트가 텔아비브에서 열렸다. 관중석에 앉아 영화 ‘쉰들러의 리스트’의 곡을 허밍으로 듣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유대인들이 그 음악을 들으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어떻게 이런 천상의 소리를 내는 것일까? 세계 최고의 합창단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있었다. 유대인 청중들 가운데 내가 그 현장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음악회였다.  

1.‘아르바 미님’이라는 4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하는 유대인. 2. 통곡의 벽 앞에 설치된 대형 초막. 초막절 동안 생활하는 곳이다. 아파트에서는 베란다에 초막을 설치하기도 한다. 3. 이스라엘의 경제 중심지이자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 텔아비브. 전통을 중시하는 예루살렘과 대조가 되는 자유로운 모습이다.
1.‘아르바 미님’이라는 4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하는 유대인. 2. 통곡의 벽 앞에 설치된 대형 초막. 초막절 동안 생활하는 곳이다. 아파트에서는 베란다에 초막을 설치하기도 한다. 3. 이스라엘의 경제 중심지이자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 텔아비브. 전통을 중시하는 예루살렘과 대조가 되는 자유로운 모습이다.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안 것들  

이스라엘에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정하는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라는 유대인들도 있음을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알았다.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떳떳하게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 사실이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왜 이들은 숨어서 예배를 드려야 할까? 이스라엘은 국교가 유대교이며, 유대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박해를 종교의 힘으로 이겨내며 유지해오고 있다. 그래서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고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정서가 법률로까지 만들어져서 유대인에게 개종을 요구하거나 개종시키려고 돈이나 이에 상응하는 물품을 제공하는 자는 누구든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개종을 약속하는 자는 3년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해졌다. 메시아닉 쥬들이 몰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면서 2천 년 전 로마의 카타콤베가 재연되고 있는 것 같았다.   

텔아비브 대학교의 스몰라츠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평화 콘서트. 세계적인 지휘자 보리스 아발리안 단장의 지휘 아래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공연했다. 특히, 첼리스트 이반 센테스키와 바이올리스트 칭키스 오스마노브가 협연한 ‘쉰들러의 리스트’ 주제가는 청중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텔아비브 대학교의 스몰라츠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평화 콘서트. 세계적인 지휘자 보리스 아발리안 단장의 지휘 아래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공연했다. 특히, 첼리스트 이반 센테스키와 바이올리스트 칭키스 오스마노브가 협연한 ‘쉰들러의 리스트’ 주제가는 청중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오랜 전통에서 쌓인 관념들을 넘으면 

이스라엘을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통곡의 벽에서 울며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 초막절을 일주일 동안 지키며, 마른 버들가지가 부서지듯이 자기들의 죄가 부서져 구원받기를 비는 모습은 그들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관념들이었다. 이러한 관념들이 과연 진실일까? 우리가 가진 관념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가족, 사회, 국가 안에서 교육이나 삶 속에서 부지불식중에 형성되어 온 것인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들이 진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정보를 처리하려고 할 때 최대한 빨리 처리하려고 노력하는 ‘인지적 구두쇠’의 입장을 취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항들을 처리할 때,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으로 정보를 조금 더 빨리 처리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들의 진실 여부를 더 확인하고 계속 정리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 또한 그동안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오랫동안 교육받아온 전통을 따라 뭔가를 하려고 하고, 그것도 잘 해야만 한다는 관념 속에 살아왔다. 그런데 성경에는 피조물 인간을 위해 창조주가 모든 것을 다 해놓고, 우리에게는 “다시는 너희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않는다. 너는 의롭고 온전하다.” 라고 한다. 내가 뭔가를 잘해서 의롭고 온전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창조주의 말씀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가 가지고 있던 관념들이 진실이 아닌 허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역사와 전통 속에서 배우고 길들여지면서 성장해가는 존재다. 그 안에서 축적된 경험을 통해 옳거나 나쁘거나 하는 기준도 생겨나고 좋거나 싫은 판단의 기준도 형성되는데, 이것은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관념이 ‘편견’이라는 감정적 차원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면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우리가 가진 관념과 다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 그 과정에서 우리 삶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글쓴이 이미선

대학원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전공했고, 인문학 독서인성교육 강사 8년차이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열악한 나라들의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을 삶의 미션으로 여긴다. 쉬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꿈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서울보호관찰소 관찰위원으로 청소년들에게 상담을 해준다. 또한 지역사회의 다문화 가정과 청소년 가장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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