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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방
이한솔 | 승인 2022.12.07 14:43

벌써 1년 전의 일이 되었다. 두 해 만에 나와 아버지의 ‘부자 상봉’이 이루어졌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선교하는 나와 한국에서 목회를 하시는 아버지. 우리는 먼 거리를 날아와,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기독교 세미나에서 마주한 것이다. 하지만, 행사 첫날엔 참가자도 많고 일정도 빠듯했던 터라 먼발치에서 아버지 모습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마다 유독 아버지가 메고 다니시는 가방이 커 보였다. 

둘째 날 오후 즈음, 잠깐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겨우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아버지, 무겁게 뭘 이렇게 갖고 다니시는 거예요?” 

아버지는 서둘러 가방을 내려놓으셨다. 그곳에는 몸에 좋다는 홍삼, 비타민, 유산균 등 나를 주려고 한국에서부터 가져오신 물건들로 가득했다. 나를 언제 만날지 모르니 방물장사 보따리처럼, 여러 식품들을 종일 가방에 넣고 다니신 것이었다. 양쪽 어깨가 눌릴 만큼 무거운 가방을 종일 들고 다니신 아버지의 마음 앞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그 모습을 들키기 싫었던 나는 괜히 퉁명스레 답했다. 

“에이 아버지, 나 이런 거 잘 안 먹는데 아버지 잘 챙겨 드시지….” 

“몸에 힘없을 때 이거 한 포씩만 먹어봐. 맞다, 그리고 삼단가방에 한국 반찬도 몇 가지 챙겨왔으니 그것도 잊지 말고 가져가야 한다.” 

아버지는 날 주려고 가져온 것이라고 거듭 말하며, 불룩한 가방 안의 건강식품들을 내 품으로 넘겨주셨다.

세미나 기간 내내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아들 생각이 제일 먼저 나시는지 꼭 전화하셔서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시곤, “얼른 와서 밥 먹어.” 하셨다. 날씨가 유독 추운 날이면, “한솔아, 입고 다닐 잠바는 있나?” 물으셨다. 

행사를 모두 마치고 아이티로 돌아가기 전,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말씀드리니 검사비는 있냐고 물으며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셨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사람들 틈에서 씩씩거리며 서 있는 나와 그런 아들 때문에 말없이 고개를 떨구던 아버지의 모습…. 

지금은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 내 행복이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나는 인생의 어떤 꿈도 없이 하루하루 방황하며 살았다. 학창 시절, 난 소위 ‘문제아’였다. 당시 나는 가난한 가정 형편을 원망했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아버지를 향해, 세상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품었다. 아버지는 그런 내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셨다. 혼을 내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하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셨다. 하지만 나는 거친 마음에서 쉽사리 벗어나질 못했다. 당시,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 덕에 늘 죄인이 되셔야 했다. 

오랜 날, 나는 뒤에서 숨죽여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알지 못했다. 안으로 꾹 삼켜야만 했던 인내를, 그리고 자식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언제나 기다려주셨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버지의 마음은 늘 나를 향해 계셨다. 내가 어려울 때면 언제나, 내 삶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헌신으로, 문제아였던 아들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얼마 전, 내가 잠시 한국에 올 일이 있었다. 여러 행사와 모임 참석으로 한창 바쁘던 어느 날, 잠깐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아버지는 내 손을 급히 끌며 가까운 마트에 가서 운동화를 사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너 편한 거 골라’ 하시며 한 발 뒤로 물러나 괜히 딴청을 피우셨다. 새 운동화를 신고 나오는 길에 보니, 햇빛 아래 아버지의 빛바랜 구두가 보였다. 철없는 아들 때문에 당신의 삶을 소진하셨던 아버지는 늙어서도 자식을 꽃 피우기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계셨다.

올해는,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꼭 이 말을 해드리고 싶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당신께 감사합니다. 종종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막막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아 참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도 계시지’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어요. 쑥스러워서 30년 넘도록 한 번도 못 해본 말이네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이제는 아버지를 닮았단 말이 가장 듣기 좋아요.” 

이한솔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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