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재해석한 ‘크리스마스 선물’

11월 초부터 이곳저곳에서 등장하는 크리스마스트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캐럴 등. 매해, 크리스마스가 왔음을 알리는 시그널이 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또한 그 신호 중 하나이다. 크리스마스에 담긴 여러 의미를 오페라, 뮤지컬, 합창 등 다양한 형식과 표현으로 재조명한 칸타타. 해마다 한국과 미국 전역에서 공연 투어를 개최하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칸타타 공연을 본 누적 관객 수는 백칠십만 명에 달한다. 공연을 본 이들은 “모든 막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그 말의 의미가 궁금해 국내에서 열린 첫 공연을 보고 돌아왔다. 모든 막이 감동이었으나 그중 2막이었던,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각색한 뮤지컬을 중심으로 성탄절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은 100년이 넘도록 세계인에게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1900년대 초, 뉴욕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가난한 신혼부부 ‘짐과 델라’의 이야기. 그들은 서로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아끼는 금시계를 팔고, 아름답게 기른 머리카락을 기꺼이 자른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두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 저녁을 가져다준다. 

원작 내용이 여기까지라면,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뮤지컬은 그날 이후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 짐과 델라가 아들 ‘앤드류’와 딸 ‘제니’를 둔 단란한 가정을 이룬다. 그사이 짐은 한 출판사의 편집부장이 되었고, 어느 때부터는 크리스마스 날에도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는 ‘워커홀릭’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크리스마스 날 아침, 약속된 업무 미팅을 하러 가다가 길에서 한 연인을 만난다. 그들을 보며 가진 것이 없어도 누구보다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 순간 짐은 모든 일을 잠시 미뤄두고 아이들 곁으로 달려간다. 온 가족이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모습으로 막이 내린다. 

크리스마스 날까지 손에 일을 쥐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과 같지 않을 때가 많다. 공연을 보며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미팅에 가야 하는 짐의 심정도 이해가 갔고, 크리스마스만큼은 아빠와 마음껏 놀고 싶은 아들 앤드류의 마음도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극 초반,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 늦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놀고 싶어 장난을 치던 앤드류가 아주 중요한 서류를 망가트리고 만다. 출판사의 사활이 걸린 계약이 어그러질 수도 있는 상황. 누구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쩐지 가족과 더 멀어져가는 것 같아 답답한 짐은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하고 쓸쓸한 혼잣말만 할 뿐이다. 아빠에게 무척 죄송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버지가 섭섭한 앤드류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 두 사람 뒤로 엄마 ‘델라’가 부르는 조용한 캐럴이 흐른다. 

누구나 두 사람처럼 ‘우리 사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라는 고민에 빠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현실은 뮤지컬보다 더 심각할 때가 많다. 사소한 일에도 오해와 불신이 싹트면 아들은 ‘역시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하고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하고, 아버지는 ‘쟤는 왜 저렇게 고집불통이야?’ 하고 아들을 쉽게 단정 짓기도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우리는 확실히 서로의 마음을 오해할 때가 있다. 어쩌면 그렇기에, 단순하고도 쉬운 ‘짐과 앤드류’의 스토리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우리 아들과 가까워지고 싶은데, 혹시 나도 짐처럼 뭔가 잘못된 방식으로 다가갔던 건 아닐까?’하고 스스로 자문하면서 말이다.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하는 한 연인을 보고 15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짐.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하는 한 연인을 보고 15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짐.

짐이 발견한 하나

답답한 상황에 있던 짐에게 해답을 알려준 건, 과거 자신과 델라 두 사람이 선물을 주고받던 모습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1달러 87센트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기뻐했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한 짐의 표정을 보며 감히 그의 속마음을 짐작해보았다. ‘그렇지. 다른 건 몰라도, 분명한 건 내가 델라와 우리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거지!’ 짐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 산타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한다. 선물을 받아든 앤드류는 기뻐 폴짝 뛰지만, 그것도 잠시 받은 선물을 산타에게 되돌려준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다 생각했는지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도 함께 내밀며 말한다. “아빠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해주세요.” 아빠를 생각하는 앤드류의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 짐은 앤드류를 꼭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짐처럼, 우리에게도 누군가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 아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작은 일로 서로를 오해하고 다툴 때도 있지만 우리 삶에 가족이 친구가 함께한다는 사실, ‘그들의 존재’만큼은 언제나 소중하다. 다만, 많은 오해로 그런 마음이 덮이고, 가려져 있을 뿐이다.

가장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짐의 가족.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전부를 줄 때의 행복이 공연 곳곳에 그려진다.
가장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짐의 가족.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전부를 줄 때의 행복이 공연 곳곳에 그려진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 

뮤지컬을 본 관객들이 꼽는 명장면 중 하나는 짐과 델라의 듀엣 무대로 서로에게 선물을 전하며 ‘This is all I have’라는 곡을 부르는 모습이다.

어디 있나요

기다려왔던 크리스마스

당신을 위해 나의 전부를 드려요

가장 소중한 나의 사랑

내 마지막 모든 것

모두 드리고 싶어

- 2막 ‘This is all I have’의 일부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인류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겨 귀한 것을 내주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바탕인 것이다.

올해 12월에는, 짐과 델라네 가족이 느꼈던 크리스마스가 모든 이에게 찾아가길 바란다. 365일 매일은 할 수 없더라도, 그날만큼은 서로를 향한 소중한 마음을 마음껏 전하고 느끼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이어 짐과 앤드류의 이야기를 꼭 닮은, 한 독자의 에세이를 소개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라시아스 합창단

2015년 세계 최고 권위의 합창제인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합창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합창단으로 발돋움했다.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모토 아래 세계 유명 공연장 및 각국 대통령 초청 공연뿐 아니라 아프리카 오지의 빈민촌까지 찾아가 공연을 펼쳤다.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소망을 선사해 온 이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공연계가 얼어붙었을 때도,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 10월에도 미국 25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11월 말부터 12월까지 국내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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