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디자이너 김영언

서울 마곡나루역 근처에서 건축 디자이너 김영언 씨를 만났다. 유독 규모가 큰 건물들이 밀집한 신시가지였는데, 잠시 걷는 동안에도 그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독특한 문양이 눈에 띄는 어느 건물을 발견한 그는, 단 몇 분 만에 건물의 용도와 건축가의 이름을 검색해냈다. 최근에 그곳에 개관한 아트센터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고 하니, 이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새로운 공간을 보면, 언제나 눈이 반짝거리는 그는 2년 차 신입사원이지만, 4년간 팀장을 맡았던 디자인 동아리에선 고참 선배로 불린다. 숨 가쁘게 2022년을 보냈고,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는 김영언 씨.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건축 분야 직업이 다양하지요. 영언 씨가 하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건축은 우리가 살아가며 접하는 환경, 공간을 다루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살고있는 집, 자주 가는 카페나 도서관, 학교, 회사 건물 등을 떠올려보세요. 그곳에서 봤던 조경이나 시설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는 꽤 복잡하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건축설계 단계를 크게 기획업무, 계획설계, 중간설계, 실시설계로 나눌 수 있는데요. 저는 실시설계* 전까지의 일을 하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건축주가 원하는 바를 건축가의 의도와 개념으로 표현하여 도면화하는 과정을 맡는 것입니다. 건축 구조, 재료, 설비, 색상 등 총체적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이죠. 특히, 제가 재직 중인 회사는 기차역이나 공항 등 교통관련 시설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공시설을 설계하고 있어요. 저는 ‘디자인 랩’이라는 팀에서 현상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실시설계: 건축물을 정확히 시공하기 위해 모든 건축 요소를 결정하여 구체화하는 과정.

**현상설계: 합리적인 설계안을 얻을 목적으로 상을 걸고 많은 설계자를 참가시키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설계. 우수작을 선정하지만 선정작 이외의 작품들이 제안한 좋은 의견들을 수용해 실제 디자인에 적용함으로써 보다 발전적인 결과물을 도출한다. 

건물을 보는 눈빛이 남다를 수밖에 없네요. 평소, 새로운 공간을 자주 보러 다니겠어요. 

네,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제게는 힐링의 시간이죠.(웃음)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교수님께서 공간 디자인은 초‧중‧고등학교에서 미리 배우는 과목이 아니기에, 모두가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대신, 새로운 공간을 많이 접하고 다각도로 사고하면서,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후 대학원에서 저를 가르쳐주신 교수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셨어요.  

그런 두 교수님의 소신 덕분에, 종종 이집트나 태국, 일본 등으로 떠나 여러 건축물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외에 건축과는 무관한 일로 미국,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다녀온 적이 있었고요. 아무튼, 꼭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혹은 제 전공 분야와 관련한 것이 아니어도, 새로운 경험 자체가 좋다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제 삶을 조금씩 이끌어왔으니까요.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우선, 제가 전공을 건축 분야로 택했던 이유가 그랬어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무엇인가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이나, 무대를 꾸미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공간’의 의미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작은 변화일지라도, 환경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구나. 누군가는 그 공간에서 꿈을 꾸기도 하겠구나’ 하고요. 

돌아보면, 건축과 관련된 지식이나 경험을 얻기 위해 떠났던 여행도 좋았지만, 전혀 무관할 것 같았던 일들이 제 삶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하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국외로 몇 차례 떠난 적이 있었는데, 그중 체류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곳이 탄자니아였어요. 그 나라는 견문을 넓히려고 간 곳이 아니라, 해외 봉사를 해보고 싶어 떠난 곳이었죠. 그런데 거기서 정말 중요한 걸 배웠거든요. 

김영언 씨는 자신의 시선에 스쳤던 찰나의 순간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창구가 사진이라고 말한다. 탄자니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 수업을 듣기 위해 비좁은 플라스틱 의자에 끼어 앉은 아이들의 모습에 눈이 멈춰 선 적이 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바탕이 되는 건축가의 기본 자질이 아니었을까. 사진 본인 제공
김영언 씨는 자신의 시선에 스쳤던 찰나의 순간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창구가 사진이라고 말한다. 탄자니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 수업을 듣기 위해 비좁은 플라스틱 의자에 끼어 앉은 아이들의 모습에 눈이 멈춰 선 적이 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바탕이 되는 건축가의 기본 자질이 아니었을까. 사진 본인 제공

탄자니아에서는 얼마나 오래 지냈나요? 

약 1년 정도요. 학부 시절에 휴학하고 갔어요. 그곳에서 현지 아이들에게 한국어, 기타 등을 가르치는 작은 교실을 열기도 하고, 초등학교를 방문해 미술 수업도 진행했어요. 아이들은 지붕 없는 학교에 다녀도 배울 수 있음에 즐거워하고, 줄이 없는 기타를 들고 와선 연주를 하고 싶다고 해맑게 웃었어요. 처음엔 ‘역시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죠. 그러던 어느 미술 수업 시간이었어요.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가까운 시기였기에 색종이로 꽃을 접고, 카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8살 된 아이가 제게 편지를 건네더군요. 편지에 “저도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문장 한 줄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사실 ‘꿈에는 한계가 있다’는게 당시 제 생각이었거든요. 집안 형편이 아주 넉넉하지도 않았고, 지방 대학에 다니고 있는 제가 그릴 수 있는 최고의 미래는 ‘졸업 후, 좀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그게 다라고 여겼죠. 그런데 그런 저를 보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를 만나니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충격이기도 했어요. ‘어쩌면 현실적인 것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보다, 저 아이가 맞을지도 몰라. 꿈은 바보같이 꾸는 것이구나….’ 그때부터 열심히 계산해왔던 한계들을 조금 거둬냈어요. 그리고 이따금씩 자문했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일까?’ 

고민의 결과를 얻었나요?

물론, 곧바로 답을 얻지는 못했어요. 다만, 진로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죠. 

탄자니아에서 돌아온 후, 봉사를 떠났던 단원들이 모여 귀국 행사를 진행했어요. 그때 포스터 및 홍보물 이미지를 담당할 ‘디자인 팀’이 꾸려졌어요. 그런데 행사가 끝난 후에도 여러 비영리 단체에서 디자인 작업 요청이 들어왔고, 팀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중엔 꽤 구색이 갖춰진 ‘팀’이 되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팀원으로 두 달간 함께하다가 팀장이 됐어요. 그때 홍보판넬, 명찰 제작부터 유튜브 썸네일, 현수막, 영상 디자인까지 정말 다양한 일을 했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가 어느 합창단에서 요청했던 영상 디자인 작업이었어요. 잠깐이었지만, 일을 하면서 합창단의 남다른 정신과 열정을 볼 수 있었는데요. 단원들이 연습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도 배울 점이었지만, 합창단을 이끄는 단장님도 무척 인상이 깊었어요. 단원들의 음악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살피고 모으는 일도 하셨어요. 단원들이 편안하게,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매우 멋있었어요. 

어느 순간 ‘나도 언젠가 공간 디자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온전히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런 멋진 일터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자인 팀 활동을 할수록 그 마음이 점점 커졌고요. ‘공간 디자인에 대해서 더 넓고 깊게 공부해야겠구나. 건축사 자격증도 따야 하지 않을까?…’ 해야 할 것도 많아졌죠. 결국,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고 최근에는 회사를 다니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여전히 정확하게 정해진 것도 없고, 꿈이 이루어지기까진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그래도 좋아요. 

이날 촬영을 진행한 장소, LG아트센터 서울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건축 과정에 대한 그의 설계도, 계획안을 살펴보고 있다. 김영언 씨는 시간이 날 때면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닌다. 특히, 대체로 고즈넉하고 중후한 공간들을 좋아한다. 사진 안경훈 기자
이날 촬영을 진행한 장소, LG아트센터 서울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건축 과정에 대한 그의 설계도, 계획안을 살펴보고 있다. 김영언 씨는 시간이 날 때면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닌다. 특히, 대체로 고즈넉하고 중후한 공간들을 좋아한다. 사진 안경훈 기자

지난 2년간, 회사에서 실무를 하면서 한층 더 성장했을 것 같은데요.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것과 실무의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변수’가 훨씬 많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실제로 지어질 건물이기에 법규나 지침서가 굉장히 중요하고 건설사, 공사‧공단, 건축주 등을 비롯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고려하고 조율해야 한다는 걸 몸소 느꼈습니다. 

그때마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며 고군분투했던 때가 자주 떠올랐어요. 당시, 급작스럽게 요청받는 일도 많았고, 팀원들과 며칠 내내 만든 걸 하루아침에 뒤집어야 하는 때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해?’ 하며 피하고 싶었는데,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이나 봉사단 담당자분들은 포기하지 않고, 될 거라는 신념으로 다시 고민하고 도전하더라고요. 그러면 정말 길이 열리는 걸 봤어요. 그 시절, 밤도 많이 새고 학부 공부도 겸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아무튼, 회사 일을 하면서 난감한 변수나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지만, ‘이것도 그때처럼 가능한 방향으로 다시 고민해보자. 어떤 길이 열릴지 누가 알겠어?’하고 자세를 잡아봅니다. 또 각자 일이 바쁜 와중에도 후배들 일을 꼼꼼히 살펴주시는 선배님들을 보며 느끼는 바도 많고요. 회사 다니며 마음의 자세든, 건축 일이든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걸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안도 다다오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좀 더 깊이, 더 멀리 생각하는 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알고 있어요. 

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요. 그분은 스스로 ‘거장’이라고 말하고 만족하면 거기서 끝이기에 누군가 자신을 ‘거장’이라고 표현하는 걸 싫어하신데요. 건축 분야의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요.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한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야 해요. 또한, 정해진 정답이 없기에 일을 아무리 오래 해왔더라도 ‘마스터했다’라고 말하기가 어렵고요. 그렇기에 최선책을 찾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할수록 실제 결과물도 달라지고요. 저는 이런 점이 건축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죠. 

배워야 하는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요. 우선 공간 디자인 경험을 좀 더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요. 오랜 경험이 쌓여 전문성이 더 길러지면, 기능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예술적, 철학적인 생각을 적극적으로 담을 수 있는 교회나 아트센터와 같은 공간도 디자인해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디자인한 공간이 누군가의 일터가 되고, 삶이 된다.’라는 작은 사명감과 자부심을 잃지 않고 오래오래 이 일을 하면 좋겠어요. ‘어느 날, 돈을 버는 데에만 푹 빠져서 계산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진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가끔 들지만, 그때에도 지금 제가 가진 모호하고도 묵직한 꿈이 저를 다시 움직여서, 제가 배운 

지식이나 기능을 좋은 일에 마음껏 나누고 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 개인적으로, 사진도 더 제대로 배워서 언젠가 사진전도 해보고 싶습니다.(하하) 

인터뷰 중간에, 문득 그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러곤 “생각해보면 정말 제가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탄자니아에서 만났던 사람들, 스승님, 동아리 친구들, 그리고 지금 함께 일하는 분들까지…” 라고 말하며 싱긋 웃어 보였다. 

많은 곳을 돌아보며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는 교수님의 소신은 어쩌면 건축 분야에만 해당 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에게서 자질을 찾아보려 하지만, 사실은 누구와 함께하며 어떤 이의 삶을 엿보고 배우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먼 훗날, 후배들이 마음껏 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그려보았다. 탄자니아의 그 어린아이처럼, 영언 씨 덕분에 건축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고 말하는 이의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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