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프랑스의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죽음의 상인이 사망하다.”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인물….”

다름 아닌,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訃告를 알리는 기사였다. 하지만 이때 노벨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의 형 루드비그 노벨의 죽음을, 한 신문사가 알프레드 노벨의 죽음으로 착각하여 오보報誤를 냈는데, 이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노벨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단 폄하했다. 노벨은 그 부고 기사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노벨상을 제정했다고 전해진다.*하지만 실제로 노벨이 그 일 때문에 그랬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다. 

노벨이 만든 다이너마이트(출처=좌 위키피디아, 우 위키미디아)
노벨이 만든 다이너마이트(출처=좌 위키피디아, 우 위키미디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은 생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는 군수업자이자 발명가였던 아버지 ‘임마누엘 노벨’을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는데, 어릴 때부터 과학에 재능을 보였다. 특히 1847년에 개발된 액체폭탄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은 다른 화약보다 폭발력은 강하지만, 작은 진동이나 충격에도 쉽게 폭발하는 불완전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노벨뿐만 아니라 다른 발명가들도 이 액체폭탄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으나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는데, 1876년에 노벨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수시켜, 쉽게 폭발하지 않으면서 폭발력은 유지되는 고체폭약을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노벨의 안전 화약’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다이너마이트이다. 이후에도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더 연구 발전시켜 새로운 폭약을 계속 만들어갔다.

그때부터 다이너마이트는 채석장 작업, 광산, 건설 현장 등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대량 살상무기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다이너마이트로 엄청난 부를 얻은 노벨은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은퇴 후에도 연구를 지속한 그는 평생 355개의 특허를 취득했고, 거대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1895년 11월,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은행 기금으로 예치토록 하는 유서를 작성하였으며, 1년 뒤인 1896년 12월 10일에 사망했다. 그가 만든 노벨상은 그의 유언에 따라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현재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학 또는 의학, 평화, 경제학 총 6개 부문에서 수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의 유언에 따라 2022년 12월 10일에도 어김없이 노벨상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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