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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빛깔을 다채롭게 물들이다키리바시에서의 903일, 문은영
최지나 기자 | 승인 2022.12.02 09:47

누구에게나 방황의 시기가 있다.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순간 말이다. 그럴 땐 잠시 멈춰 내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도 쉼표가 어색하다. 그때마저도 더 빨리, 더 높이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에서 2년 6개월 동안 자원봉사를 한 문은영 씨도 그랬다. 뭐 하나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해외로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애초 예상했던 ‘1년’보다 더 긴 시간을 보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 시간 동안, 은영 씨의 방황의 시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문은영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수능 점수에 맞춰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영어로 대화하는 걸 즐기고 있다. 또한 퍼스널 컬러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하며 지낸다. (사진 최지나 기자 어시스트 이동윤)

해외봉사를 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다른 또래 친구들과는 다르게 기숙형 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면 무척 부럽더라고요. 그에 비해 저는 ‘기숙사에 갇혀 지내느라 하고 싶은 걸 많이 못했다.’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어요. 그렇다보니 졸업하자마자 억눌려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 마시며 놀고, 멀리 여행을 다니고, 학교 공부 다 제쳐두고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다가 새벽 늦게 잠드는 게 흔한 일상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자유롭게 살면 분명 즐거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공허해지는 거예요. 새벽녘에 끈 TV 화면에 제 얼굴이 비친 것을 보면서 ‘오늘 하루 뭐했지?’ ‘왜 사는 거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그런 생각들이 물밀듯 몰려왔어요. 제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도 다음 날, 그다음 날도 저는 똑같이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뛰어난 재능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뭘 해보려는 의지도 약했어요. 그냥 시간만 때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어요. 너무 변하고 싶은데, 의지가 약하니까 문득 ‘내가 살고있는 환경이 변하면 내 삶이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을까?’ 싶어서, 해외봉사를 알아보았어요.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체험담을 듣다 보니, ‘어쩌면 나도 변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조금씩 생겼고, 그렇게 키리바시로 떠나게 되었어요.

키리바시란 나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인데요.

변화에 대한 갈증이 크다 보니, 지금과 환경이 정반대인 곳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중 한 곳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프리카에 가고 싶은 학생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제가 갈 수 없을 만큼 지원자가 많아서 다른 곳을 알아보던 중 ‘키리바시’라는 나라를 알게 됐어요. 거리상으로 한국과 멀기도 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는 점이 많이 끌렸어요.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키리바시에서는 누구와도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서툰 영어에도 밝은 미소로 화답하는 키리바시 사람들은 바다보다 더 맑고 푸른 마음을 가졌다. 사진 본인 제공

막상 가본 그곳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한국과 너무나 다른 환경이 많이 힘들었어요.(하하) 분명 다른 환경을 찾아서 갔음에도, 막상 열악한 환경을 마주하니 힘들더라고요. 키리바시의 첫 느낌은, 사진으로만 보던 한국의 옛 모습 같았어요. 그때, 한국이 얼마나 발전한 나라인지 확 와 닿았죠.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당연한 게 아니었어요. 사방이 바다인 키리바시는 물 부족 국가예요. 겨우 이틀에 한 번, 2시간만 수돗물이 나와요. 그때 물을 받아 나눠서 사용하고, 우물물을 떠다가 화장실 변기를 내려요. 날씨는 고온건조하고 워낙 뛰어다니는 일이 많아서 하루 종일 땀을 흘려야 했고, 모기향을 아무리 피워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모기가 많아서 온몸이 모기에 다 물릴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런 환경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됐어요. 그런데 ‘왜 사는 거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와 같은 생각들은 이상하리만큼 끝나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해외봉사에 가면 남들에 비해 뒤처지는 제 자신을 좀 가릴 수 있을 것 같았고, ‘난 못해, 난 안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제가 달라질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제 기대와는 다르게 하나도 변하지 않은 저를 보니, 희망이 사라지더군요. ‘나는 해외봉사까지 와서도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뭐든 곧 잘하고, 해보려고 시도하는 다른 봉사단원들과 많이 싸웠어요. 시기 어린 질투와 미움 때문이었죠.

그런데도 2년 6개월이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어요. 한국에 돌아올 수도 있었을 텐데요.

사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키리바시에서 지낸지 1년이 됐을 무렵,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가 생겼는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도 예전과 똑같이 살 것 같았거든요. 키리바시에 있으면 그래도 해야 하는 활동이 있고,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래도 이 곳에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며 남기를 선택했죠. 그 결정을 하고 난 후에 저에게도 변화가 일어났어요. 

리코더 수업 시간.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다다와’이다. 사진 본인 제공.

그 선택이 지금의 은영 씨를 있게 했네요. 심적인 변화가 일어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키리바시에는 많은 학생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일찍 그만둬요. 그래서 굿뉴스코 키리바시 지부는 대안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이 계속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저는 대안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지내며 리코더를 가르쳤어요. 한국에서 리코더는 너무나 흔한 악기지만, 그곳에서는 진귀한 악기에요. 악기를 처음 만져본 학생들에게 리코더를 가르치고,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거기서 ‘다다와’라는 남학생을 만났어요. 다다와는 초등학교를 자퇴하고, 친구들과 방황하며 지내다 경찰관의 소개로 우리 학교에 오게 됐어요. 이 학생은 다른 친구들보다 배우는 속도도 느려서 못하겠다며 포기했는데, 그 모습이 꼭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마음이 많이 가더라고요.

한번은 학교 발표회를 앞두고 리코더 공연을 준비했는데, 다다와가 “나는 발표를 할 실력이 안되니까 안하겠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런 다다와에게 “다다와! 포기 하지마.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같이 연습하다 보면 분명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했어요. 고맙게도 다다와가 제 말을 따라주었고, 그 후로 쉬지 않고 연습하더라고요. 늘 것 같지 않던 실력이 좋아지고, 발표회도 멋지게 마쳤어요. 그리고 리코더는 다다와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가 되었죠. 그 친구가 공연을 멋지게 해내는 걸 보며 감격스러웠어요. 그때부터 저 역시 변하기 시작했어요. 저 친구가 나의 말을 믿고 따라준 후부터 변했듯, 저도 제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믿고 따르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나는 못한다’라고 여겼던 것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다다와는 은영 씨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네요. 은영 씨가 도전한 일화도 궁금하네요.

제가 초등학생 때 바이올린이랑 피아노를 배웠었어요. 같은 걸 배워도 친구들보다 실력도 없고, 배우는 속도도 더디단 걸 깨달은 후 ‘소질이 없나보다’라며 그만 뒀었어요. 그런데 키리바시에서는 피아노라는 악기도, 바이올린이란 악기도 없다 보니, 현지 학생들에게 이 악기들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다시 악기 연습을 시작했어요. 점점 실력이 늘어서, 학생들을 초대해서 공연도 여러 번 가졌는데,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키리바시 사람들은 저의 연주를 듣고 얼마나 기뻐해 주었는지 몰라요. 저 역시 그들이 기뻐하는 걸 보니 너무 행복했고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키리바시의 대통령 앞에서 바이올린 공연을 한 순간이에요. 키리바시에 있는 한 기독교 단체 대표께서 행사에 저희 봉사단을 초청해주셨는데, 그곳에서 제가 바이올린 연주 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 행사에 대통령께서도 참석하셨어요. 정말 얼마나 놀라고 떨렸는지 몰라요. 덕분에 다신 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했어요.

대통령 앞에서의 공연이라니…, 잊지 못할 경험이네요.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덧 3개월 정도 지났을 텐데, 현재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저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지내고 있어요. 키리바시에 가기 전만 해도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영어였어요. 고등학교 시절엔 영어 선생님이 제게 발표를 시킬까 봐 눈도 안마주쳤고, 수능을 치르기 위해 단어든지, 문법이든지 달달 외워야 하는 영어가 버거웠어요. 어쩌다 성적에 맞춰 영문과에 진학했는데, 이렇게 나랑 안맞는 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키리바시에서 현지인들과 영어로 계속 대화를 하다 보니, 이제는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곳에선 ‘문법이 틀리면 어떡하지?’ ‘발음이 안좋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없이 서툴러도 영어를 할 수 있었어요. 제가 부족한 영어를 내뱉어도 현지인들은 귀 기울여 제 말을 들어주니, 대화하는 재미를 발견했죠. 

지금 저에게 영어는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예요. 그렇게 영어에 대한 저의 생각이 180도 바뀌었어요. 지금은 영어로 말하는 게 너무 좋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무척 재밌어요. 저처럼 영어 때문에 힘들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조차도 즐거워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영어가 재밌고, 영어를 배우는 시간이 즐거우면 좋겠어요.

함께 해외봉사를 다녀온 친구인 차유경(왼쪽)과 현지 친구(가운데)는 은영 씨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이다. 사진 본인 제공.

즐거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니 부럽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도전할 용기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제가 뭘 하면 좋을지 결정했어요. 그런데 키리바시에서 여러 일들을 경험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것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어요. 저는 예전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나, 디자인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최근에 색상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져서 ‘퍼스널 컬러 컨설턴트’라는 꿈까지 생겼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공부를 시작하고 있어요. 새로운 길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아마 그 시간들이 제 삶을 다채롭게 물들일 거라 믿어요. 

문은영 씨를 만나면 ‘2년 6개월’의 시간을 투자하기에 정말 그곳이 좋았는지, 무엇이 도움이 됐는지, 시간이 아깝진 않았는지 등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더 빨리, 더 높이 가야 하는 인생의 성공 공식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친 뒤엔 ‘2년 6개월이란 시간을 나에게도 선물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존재가 단단하고 유연하게 성장하기까지, 행복한 일을 찾고, 못할 것만 같던 일을 즐길 수 있기까지 그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은영 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잠시 멈춰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며, 지금이라도 도전할 용기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잠깐의 숨고르기를 해 보았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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