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정말 외로웠겠구나’

우수상

글 이용준

투머로우 잡지에서 파라과이 교육부 차관님 기사를 읽었다. 결혼의 실패는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내용이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하는 아내가 그저 고마웠고, 나는 가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노라 다짐하며 결혼 후 13년을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온몸에 상처가 나고 일하다가 쓰러져도, 시집와준 아내와 결혼을 축복해준 지인들에게 보답하는 심정으로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것으로 내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일만 하는 나는 이 집의 머슴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육아에만 집중하는 아내가 서운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나를 붙잡고 펑펑 우는 것이었다. 육아가 너무 힘들고 주변을 둘러봐도 쉴 곳이 없다며, 이혼하고 싶다고….

차관님의 말대로 아내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 결혼에 실패한 것이라면 지금의 내 경우가 거기에 해당되는 걸까? 내가 사랑을 주지 않아 아내가 기댈 수 없는 남편이었기에? 경제 담당과 육아 담당으로 나눠진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의무, 책임, 희생을 빼곤 더 나올 게 없었다. 대화는 점점 사무적이 되었고 딱딱해졌다. 마치 하루하루의 미션을 수행하듯이 우리의 일상은 역할 분담에서 책임 전가로 바뀌고 있었다.

투머로우 8월호에 나온 파라과이 교육부 차관 인터뷰.
투머로우 8월호에 나온 파라과이 교육부 차관 인터뷰.

나는 아내가 느긋하게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항상 아내는 직장에서 퇴근해 돌아오면 곧바로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공부 체크하면서 동시에 어린 막내딸을 돌보았다. 청소하고 마지막으로 막내딸을 씻기고 나면 아내의 하루 일과가 끝나는데 그때는 보통 밤 10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느라 늘 책임감과 의무감이 숨통을 죄어오지만 도망칠 수도 없었던 아내.‘당신 정말 외로웠겠구나! 아내로서, 여자로서, 많은 짐을 지고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네.’  10년 넘게 같이 살았지만 아내를 모르고,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아내에게 따뜻한 말이나 자상한 말 한 번 건네지 않았을까?

“사실 나도 너무 힘들고 외로웠어….”

그날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서 아내를 만났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서 결혼생활이 실패한다는 말이 내 경우에 해당되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아내와 살면서 소통하고 마음에서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면 적어도 결혼생활이 실패로 끝나는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스레 되는 사랑으로 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마음의 세계에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중매든 연애결혼이든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맥락은 같지 않을까 싶다. 직장에서도 수직관계가 아닌 마음이 흐르는 관계가 되면 쉽게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며 친구 사이, 연인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일로, 나는 마음의 세계에서 아내를 만났다. 안타깝게도 그 시기가 모든 것이 괜찮을 때가 아닌 한계에 부딪혔을 때였지만, 어려움은 우리를 마음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는 늘 푸른 초원에서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거친 황무지에 섰을 때 비로소 상대의 진심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아내의 마음에 대해 감사를 느낀다.

수상 소감

“최근에 아내와 사이가 멀어졌었어요. 우연히 투머로우 8월호에 실린 파라과이 교육부 차관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평소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해온 아내의 마음을 알게 되었어요. 차관님의 한마디가 제 마음에 지혜를 주었습니다. 그 경험담을 독후감으로 솔직하게 써보았는데 우수상까지 받았네요. 무엇보다도, 이번 일을 계기로 아내와 마음이 다시 가까워져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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