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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도전한 삼국지 영웅들여유는 곧 퇴보다
김성훈 기자 | 승인 2022.11.24 12:39

‘잉어빵’을 보며 떠올리는 도전의 가치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옷자락을 파고드는 11월이다. 군고구마, 호빵, 귤, 어묵 등 겨울 간식이 생각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겨울 간식 중 잉어빵을 즐겨 먹는다. 잉어빵은 단순히 맛난 먹거리를 넘어, 한계와 틀을 깨고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한 과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999년 한 식품회사에서 출시한 잉어빵은 붕어빵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밀가루 반죽으로 구웠기에 식으면 눅눅해지고 들러붙는 붕어빵에 비해, 찹쌀가루와 버터를 반죽에 넣어 구운 잉어빵은 식어도 바삭한 식감이 유지된다. 붕어빵은 팥이 몸통에 몰려있지만, 잉어빵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골고루 팥으로 채워져 있고 껍질이 얇아 속에 든 팥이 비쳐 식욕을 돋운다. 최근에는 슈크림이나 김치, 고구마를 속에 넣는 등 잉어빵의 변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잉어빵은 맛난 먹거리를 넘어, 더 훌륭한 맛을 내고자 끊임없이 도전한 혁신의 산물이다. 그 혁신은 출시된 지 20년 넘게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제공:알렉스분도/한국관광공사)

만약 잉어빵을 만든 사람들이 변화와 혁신을 위한 도전 없이 기존의 레시피를 고수했더라면, 잉어빵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언뜻 간단해 보이는 먹거리 하나도 적잖은 고민과 변신을 거쳐 탄생하는데, 하물며 그보다 훨씬 크고 복잡다양한 요소가 얽힌 인생 경영에 있어 혁신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형편에 안주하지 않고 부담 앞에 당당히 맞선 변화와 도전으로 승자가 된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

평생을 도전으로 일관한 조운의 삶

유비의 부하장수 조운이 장판파長坂坡에서 남긴 무용담을 읽을 때면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기 208년, 조조는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진격해 형주荊州를 점령한다. 당시 조조를 피해 형주 태수 유표에게 의탁하던 유비로서는 그 엄청난 군세를 도저히 막을 수 없었고, 결국 그는 부하장병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난다. 조조의 학정에 시달릴 것을 두려워한 형주 백성들은 유비를 붙좇았고, 유비는 차마 그들을 뿌리칠 수 없어 함께 피난길에 나섰지만 행군은 점점 늦어졌다.

그 사이 조조의 정예기병들은 밤새 말을 달려 피난 행렬을 따라잡았고, 급기야 장판파에서 조조군과 유비군, 백성들이 뒤엉킨 가운데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유비의 가족을 호위하던 조운도 그 와중에 유비의 부인과 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행여 부인과 아기씨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한다면, 무슨 낯으로 주공을 뵐 수 있단 말인가?’ 급기야 조운은 창 한 자루, 말 한 필에 몸을 의지한 채 홀로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쉬지 않고 달려드는 적들을 무수히 찌르고 베어 넘기며 장판파를 샅샅이 뒤진 끝에 조운은 간신히 유비의 갓난아들 유선을 구출해낼 수 있었다. 삼국지에서는 이 전투에서 조운이 혼자 쓰러트린 적장이 50여 명이라고 적고 있다. 조조마저 그의 무예에 감탄한 나머지 “저 자를 내 수하로 삼고 싶으니, 절대 활을 쏘지 말고 사로잡으라”고 명령했을 정도다.

그렇게 장판파 전투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맛을 본 덕분일까. 이후로도 조운은 유비군에 크고 작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멋지게 활약하며 숱한 공을 세웠다. 적벽대전에서 유비군과 함께 조조에 맞서 싸우던 오吳의 주유가 제갈량을 시기해 죽이려 할 때 그를 구하러 온 장수도 조운이었다.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수십만 대군을 잃고 사로잡힐 위기에 놓이자 조운이 병사들을 끌고 달려와 그를 피신시켰다. 훗날 제갈량의 1차 북벌 때는 촉蜀의 최고령 노장임에도 선봉을 자청했고, 퇴각할 때는 최후방을 맡아 군의 안전을 도모했다.

조운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삼국지: 용의 부활>. 실제 삼국지의 내용과는 다르게 각색된 부분도 많지만, 평생 도전하기를 쉬지 않은 조운의 삶을 엿볼 수 있다.(출처:Daum 영화)

오늘날 삼국지 팬들은 조운을 ‘결정적 시기에 중요한 임무를 믿고 맡길 해결사’ ‘평생 싸움에서 진 적이 없는 상승장군常勝將軍’ ‘죽음을 무릅쓰고 주인의 아들을 구한 충忠과 무武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봐도 조운이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다거나 권력다툼, 뇌물수수, 주변과의 의견충돌 등에 휘말린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매사에 강직하고 공정하면서도 겸손하고 스스로를 절제한 인물이 조운이었다. 관우 장비가 주변의 충언을 흘려듣고 자만과 객기를 부리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일자무식 여몽은 어떻게 명장 관우를 사로잡았나?

관우는 삼국지를 대표하는 충의지사忠義志士 중 한 명이다. 트레이드마크인 긴 수염에 여든한 근짜리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전쟁터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그의 모습은 삼국지 팬이라면 익숙한 장면이다. 조조의 장수 우금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는 둑을 쌓아 강물을 막아두었다가 야밤에 조조군 진영으로 터뜨려 적을 수장시킬 만큼 지략도 갖추었다. 이처럼 지용을 겸비한 관우를 철저히 패퇴시키고 사로잡은 건, 그전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오나라의 여몽이다.

여몽은 열여섯에 전쟁에 나갈 만큼 용감했지만, 글을 몰라 보고서를 쓸 수 없어 매번 상관을 직접 찾아가 전과戰果를 보고하는 일자무식이었다. 보다 못한 손권이 “자네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식견을 넓히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여몽은 손권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답했다.

“무장이 싸움만 잘하면 되지, 글은 익혀 뭘 하겠습니까? 게다가 병사들 훈련시키기도 바빠 책 읽을 시간 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자 손권이 눈을 부릅뜨고 노여운 기색으로 말했다.

“일국의 군주인 나는 한가해서 책을 읽는 줄 아는가? 자네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공부를 하란 것이거늘, 어찌 그리 내 맘을 모르는가!”

그제야 자신을 향한 손권의 깊은 뜻을 깨달은 여몽은 밤낮으로 책을 읽으며 공부에 매달렸다. 어느 날, 오나라를 대표하는 지장智將 노숙이 여몽을 찾아왔다. 여몽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노숙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사람, 진짜 여몽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삼국의 정세를 정확히 꿰뚫어본 것은 물론, 장래에 동맹인 촉나라와 사이가 틀어졌을 경우의 대처방안까지 마련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숙이 감탄하자 여몽은 “선비라면 사흘 만에 다시 만났을 때, 눈을 비비고 다시 볼 만큼 달라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몽은 글 한 줄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손권의 충고를 계기로 열심히 글공부에 매달렸고, 마침내 지용을 겸비한 명장 관우를 사로잡기에 이른다.

‘상대의 실력이 몰라보게 급성장하여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괄목상대刮目相對’는 이렇게 생겨났다. 훗날 노숙이 죽고 대도독 자리를 물려받은 여몽은 치밀한 계략으로 위나라 원정을 떠난 관우의 배후를 기습해 사로잡았다. 만약 여몽이 ‘나는 무장이야. 싸움만 잘하면 되지, 책은 읽을 필요 없어’라는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기발전을 게을리했다면, 결코 삼국지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일찍이 도전과 변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마음에 진정을 담아 부하에게 설파한 손권도, 자신을 비우고 윗사람의 마음을 흘러받아 정진한 여몽도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이다.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해 최후를 맞이한 관우를 소재로 한 영화 <삼국지 관운장: 청룡언월도>의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등애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데다 일찌감치 부모를 잃었다. 심한 말더듬이라 주위에서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지만, 목동으로 일하는 틈틈이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깊이 생각하고 작전계획 세우기를 즐겼다.

등애, 관점의 전환으로 난관을 돌파하다

위나라의 무장 등애鄧艾는 웬만한 삼국지 마니아가 아니면 그 이름과 행적을 모를 만큼 인지도가 비교적 낮다. 하지만 위촉오 세 나라가 통일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등애다. 등애는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즐겼는데 그 방식이 조금 독특했다. 또래들이 장난감 칼이나 활을 갖고 놀 때, 그는 큰 산이나 강을 보면 그 주변에 어떻게 진을 치고 병사들을 배치할지 연구하고 이를 그림으로 남겼다. 그런 그가 무장으로 발탁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서기 263년, 위나라의 실권자 사마소는 등애에게 촉을 정벌하라고 명령했다. 촉은 세 나라 중 국력이 가장 약했지만 깎아지른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였기에, 수비하기는 쉬워도 공격하기는 어려운 땅이었다. 촉을 침공하려면 이른바 잔도棧道라고 불리는, 벼랑을 따라 벽선반처럼 난 길을 지나야 했지만 길목길목마다 촉군이 지키고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고심하던 등애는 그 누구도 상상만 할 뿐 실행할 엄두조차 못 내는 작전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병력 3만을 이끌고 촉군이 지키는 길목을 빙 돌아 우회하여 후방을 기습하기로 한 것이다. 길이 없는 땅이기에 산을 뚫어 길을 만들고 계곡에는 다리를 놓으며 전진해야 했는데, 그 거리는 자그마치 700리(약 280km)가 넘었다. 부하들은 너무 위험한 작전이라며 만류했지만, 등애는 이렇게 답했다.

“물론 위험한 작전이다. 그렇기에 촉도 우리가 이 험한 길을 지나 기습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자, 어서 진군하자.”

오늘날 남아 있는 잔도棧道의 모습. 지금의 쓰촨성四川省에 해당하는 촉나라를 급습하기 위해 등애는 부하들과 직접 사진과 같은 험준한 절벽에 구멍을 뚫어 다리를 놓아가며 진군했다. ©Nekitarc

‘아무도 가지 않은 험준한 길’ 앞에 선 등애는 ‘그렇기에 일단 돌파하면 승리가 보장된 길’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부하들을 독려하며 목숨을 걸고 행군한 끝에 그는 촉의 수도 성도成都를 점령하고 촉 정벌의 대업을 완수하기에 이른다. 그때 등애의 나이 70이었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홀로 도전을 시도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면, 이는 곧 퇴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어도 삼국지 세계 내에서만큼은, 도전을 기피하고 현실에 안주한 리더들은 어김없이 몰락했다. 원소는 라이벌 조조를 제압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들이 아파 군사를 일으킬 수 없다’ ‘천천히 맞서도 늦지 않다’고 핑계를 대며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착실히 힘을 키운 조조에게 멸망당한다.

유표는 삼국지 초기부터 안정적인 세력을 갖고 있었지만, 급변하는 세상에 맞설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아들 대代에 이르러서는 하루아침에 적에게 나라를 갖다바치는 신세가 됐다.

앞서 소개한 삼국지 영웅들의 사례는 훌륭한 도전의 교과서와도 같다. 조운은 도전하는 맛을 경험한 것을 계기로, 삶에서 도전 그 자체를 즐기면서 인생에서 큰 성취를 이루고 훌륭한 됨됨이까지 갖추게 되었다. 여몽은 도전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멘토와 한마음이 되면서 인생역전을 이룬 사례다. 등애도 ‘어려운 문제를 풀수록 성장의 폭도 커진다’는 관점의 전환에 힘입어 70줄의 고령에도 도전을 계속했다. 지금 여러분도 단순히 부담스럽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도전을 기피하며 내면에 숨은 엄청난 가능성을 묻어두고 있는지, 아니면 도전으로 더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지 자문自問해 보기 바란다.

글쓴이 김성훈

2006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일본 도쿄에서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 13년간 잡지사에서 근무하며 영어 번역, 기획 및 편집, 인터뷰 취재 등을 담당했다. 현재는 의학잡지 편집 담당자로 일하면서 당뇨병 환자들이 믿을 수 있는 검증된 건강정보 콘텐츠를 기획·제작·배포하는 한편, 틈틈이 노인과 청소년을 위한 마인드강연, 대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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