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의 기독교 지도자 에펠리 라타바다다

기독교지도자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에펠리 라타바다다Epeli Ratabacaca  총재는 굿뉴스미션의 박옥수 목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속에 묵혀둔 죄의 짐을 내려놓았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서 군목을 거쳐 올네이션스 교단까지 설립한 그가 이번에 발견한 새로운 세계는 무엇일까? 진리를 찾아 다닌 그의 인생 여정을 들어본다.

망망대해에 점처럼 자리한 섬은 오래 전부터 외로움과 고립의 상징이었다. 그곳으로 길이 열려 있지 않던 시절에 섬은, 격리시킬 죄인을 보내는 유배지流配地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섬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이상향理想鄕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가 환상의 섬, 구원의 섬인 것처럼 말이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섬나라 ‘피지’가 있다.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그곳을 1643년 네덜란드의 탐험가가 처음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백여 년이 흘러 1822년에 백인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기독교가 전해졌고, 같이 온 무역상들은 그 나라에서 자라는 귀한 백단향 목재를 베어갔다. 이후에 피지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70년에 독립했다. 피지 역사를 보면, 바깥 세계로부터의 첫 교류가 기독교 전래였다. 지금도 그 영향력은 피지인들의 삶에 모세혈관처럼 넓고 치밀하게 퍼져 있다.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피지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온한 곳이라,살기에 너무 좋다. (사진 굿뉴스미션)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피지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온한 곳이라,살기에 너무 좋다. (사진 굿뉴스미션)

바다 너머를 꿈꾸던 소년은 목사가 되고 

흔히 땅이 바다와 만나는 곳을 땅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그곳은 바다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돈독했던 소년 에펠리 라타바다다에게 땅끝은 선교사들이 전해준 기독교의 원류를 찾아갈 출발점이었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그는 저 너머의 세상을 혼자 상상했고 그러면서 미래의 꿈을 키워갔다.

지리적 특성상, 섬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섬 안에서 생활하므로 주위의 평판에도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신실하고, 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실과 선행의 습관을 배우며 성장한 그는 주저 없이 목회자의 길로 걸어갔다. 감리교 신학교를 나온 뒤 군에 입대했고, 거기서 군목軍牧이 되어 군인들의 신앙 문제를 담당하는 인도자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인구가 92만 명인 작은 나라 피지에 군인이 약 3,500명이다. 현역병만 2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규모가 적지만, 인구 대비로는 우리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그래서 피지 정부는 일부 군인들을 영국이나 미국처럼 모병제募兵制를 실시하는 국가에 파병한다. 다른 나라로 파병 부대가 갈 때 통상적으로 군목들도 함께 가는데, 에펠리 라타바다다 군목도 군인들을 따라 요르단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여러 나라를 다녔다.

인생의 1막과 2막 사이에서 

군목 생활 18년이 되던 어느 날, 목회 활동을 같이 하자는 감리교단의 제안을 받고 그는 전역을 결정한다. 그런데 해외에서 같이 지냈던 군인들이 자꾸 연락을 해왔다. ‘목사님 같은 분이 여기에 필요해요!’, ‘이 나라에 목사님이 와서 교회를 하면 어때요?’ 이런 요청들이 대부분이었다.

낯선 나라에서 전투를 하면서 겪을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장애를 차마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전쟁터에 가본 사람은 안다. 시도 때도 없이 생명이 소멸될 위기가 찾아오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영혼의 불멸을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그는 깊이 고심했고, 하나님께 갈 길을 묻고 또 물었다. 주변에서 ‘어렵다’고 답하라는 눈짓을 주기도 했으나, 그는 멀리서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리고 먼 나라에 세운 교회에서 군인들이 쉴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갔다. 섬을 벗어나 바다 저편에 선교지를 개척하면서 그의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다.

그가 세운 교단이 금세 커져가고

파병 군인들이 있는 나라에 교회를 세우는 일로 시작된 해외 선교가 점점 구르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교회 숫자가 늘어나면서 통합된 운영체계가 필요했고, 통일된 명칭도 필요했다. 그는 ‘올네이션스 크리스천 펠로우십All Nations Christian Fellowship’으로 교단의 이름을 정하고, 나라마다 지부를 만들어갔다. 그가 교단 총재로 있는 지금은, 전 세계 73개 나라에 지부가 있다. 그가 살고 있는 피지에만 교단과 연관된 사람들이 7만 명이라니, 길 가다 교인을 만나 인사하는 일은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피지에서 수백 년 전통을 가진 감리교단 다음으로 큰 조직이 올네이션스 교단이다. 창립한 지 25년밖에 안되었는데 어떻게 이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른 교단의 목회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기독교 세미나에도 그는 꾸준히 참석해서, 듣고 깨닫고 실제 적용해보면서 교단을 키워갔다.

터닝 포인트가 된 서울 방문

교단 창립 25주년 행사를 석 달 앞둔 지난 7월, 에펠리 라타바다다 총재는 예정에 없었던 여행을 했다. 굿뉴스미션 피지 지부장으로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기독교지도자포럼Christian Leaders Forum에 대해 듣고나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서였다. 그는 서울에 도착해 이 행사를 만든 박옥수 목사를 처음 만났고, 대화를 이어가다가 자신이 간과하고 있던 어떤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가 인간의 모든 죄를 씻었다는, 기독교의 초석 같은 진실이었다. 그때의 심경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트럭을 몰고 가던 운전사가 무거운 짐을 메고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차에 태워주었습니다. 한참 뒤에 운전사가 백미러로 뒷자리를 보니 그 사람은 어깨에 짐을 멘 채 앉아 있었습니다. 내려놓아도 되는데 말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그 피가 우리 죄를 씻었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트럭에서 짐을 메고 있던 사람처럼 마음에 죄라는 무거운 짐을 여전히 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찾는 궁극적인 것들이 있다. 따뜻한 음식, 고향의 노래, 오랫동안 사귄 친구…. 그런 것들에서 사람은 깊은 만족을 느낀다. 에펠리 라타바다다 총재도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에서 따스함을 누리고, 이사레이Isa Lei* 노래를 들으면서 고향의 정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목회자로서 추구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부끄럽지 않은, 깨끗하고 신실한 삶이었다.

그런데 박목사와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든 어두운 면들이 이미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그런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그날은 인생 3막을 여는 터닝 포인트였다.

반가운 소식을 들고 아름다운 세계로

피지로 돌아온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박옥수 목사가 8월 말에 피지를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서울에 가서 얻은 감사의 기쁨을, 많은 피지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줄 기회가 생긴다니 기뻤다. 원래 좋은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게 사람의 어진 마음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피지 목회자들이 박옥수 목사 성경세미나에 참석하도록 연결했고, 라투 윌리엄 카토니베레 대통령도 박목사를 만날 수 있도록 면담 자리를 주선해주었다.

섬은 길이 열리지 않으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유배의 장소지만, 그 섬에 길이 열리면 고립감을 순수의 상태로 바꿀 이상향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면서 섬처럼 움츠렸던 마음의 경계를 벗고 해방감을 누렸다. 그러니까, 자신처럼 살았을 사람들에게 꿈 많은 긴 잠에서 깨어나 아름다운 세계로 같이 가자고 말해주고 싶었다. 피지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의 진리가 빛나기를 기다리며, 그는 오늘도 교류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피지섬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목회자이다.

*이사레이Isa Lei : 피지의 정서가 담겨 있는 민요로서, 누군가 섬을 떠날 때 주민들이 모두 모여 함께 손을 잡고 불러주는 노래다. 마치 우리나라의 ‘아리랑’과 같다. 예전에 가수 윤형주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불러 이 멜로디가 우리에게 친숙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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