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된 학습법이 있다. 연세대학교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가 쓴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라는 책에 나온 ‘느림보 학습법’이다. 당시 혁신적인 육아 관점을 보여준 이 책은 조기교육이 아이들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나도 그런 면에서 저자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학부모님들과 상담할 때 이 책의 내용을 자주 언급했다. 평소에 ‘우리 아이가 뒤처지고 있지않을까?’ 근심했던 부모님들은 상담이 끝나면 느려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품고 편안하게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현실에서 맞닥뜨려지는 문제들이 컸기 때문이다. 옆집 엄마에게 들은 정보, 다른 아이가 잘하는 모습, 아이를 향해 점점 높아지는 기대치 등으로 느리게 키워야 한다는 말은 이상적인 이론으로만 남곤 했다.

두유 컵의 편리함이 앗아간 것들

아이를 느리게 키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3040부모들에게 나는 대안으로서 ‘불편하게 키우기’를 권하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하게 되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불리는 요즘의 알파세대* 아이들은 완벽하게 편리한 일상생활을 누린다. 조작 활동을 하기 전부터 화면을 넘기거나 버튼 클릭하는 법부터 먼저 알아서, 아이들이 원하는 즐거움을 손쉽게 얻어낸다. 부모의 입장에서 디지털 기기는 매우 수월하고 효율적인 육아도구이다. 식당에서 아이 앞에 태블릿 PC만 놓아주면 분주히 돌보지 않아도 여유 있게 밥을 먹을 수 있다. 만족도 측면에서만 보면 이러한 기기들의 편리함은 매우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를 따져보면 오히려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알파세대Generation Alpha : 2010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스마트폰이 인류 사회에서 대중화된 시기에 출생했고, 이로 인해 디지털 정보에 상시 접속이 가능한 유비쿼터스 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성장이 시작되는 영유아 시기부터 디지털 사회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아, 이들의 문화는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공지능의 영역 안에서 이뤄진다. 어려서부터 기술적 진보를 경험하며 자라난 세대이므로 기계와의 일방적인 소통에 매우 친숙하다. 반면에 이런 특성이 사회성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 부수적인 효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계기가 몇 년 전에 있었다. 후배 교사의 아이 돌잔치에 갔을 때였다. 한복을 잘 차려 입은 주인공 아이가 특이한 컵을 사용해 두유를 아주 편안하게 마시고 있었다. ‘와, 이제는 이런 도구까지 나왔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두유 통 사이즈에 딱 맞게 만들어진 육면체 ‘두유 컵’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내가 아이 키울 때를 떠올려 보았다. 처음으로 빨대와 두유 통을 접한 아이들은 대부분 두유 통을 힘주어 잡아서 빨대 위로 두유가 솟아오르게 한다. 엄마들은 처음엔 아이가 이런 행동으로 두유를 쏟아도 귀엽게 봐주며 닦아주고 다시 가르쳐 준다. 그렇게 쏟고 닦는 일을 반복하다가, 어떤 날은 아이가 일부러 두유 통을 꾹 눌러서 분수를 만들며 장난을 치고, 바닥에 흘린 두유를 발로 비벼대기도 한다. 그러면 드디어 자애로운 엄마의 목소리는 엄한 음색으로 변한다. 분위기를 재빨리 감지한 아이는 결국 두유 통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스스로 사고하게 된다. 모서리를 살살 잡아서 조심스레 행동하고, 어떤 날은 두유 통이 접힌 부분을 날개처럼 펴서 그곳을 잡고 편안하게 먹는 창의성까지 발휘한다.

그렇게 실패하고 장난치고 혼나는 과정에서 얻는 사고력과 적응력, 자제력은 어디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의 재산이다. 그런데, 아이가 겪을 불편함을 덜어주려고 만들어서 파는 ‘두유 컵’ 아이디어 상품이 오히려 아이의 성장 기회를 빼앗아버린 것은 아닌지…. 그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알파세대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 사회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정보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문제해결 능력이 높을 뿐 아니라,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이런 것이 좀 불편한 것 같아’ 하고 뒤돌아보면, 이미 그 불편한 점을 해결한 물건들이 나와 있을 때가 많다. 전문가들이 나 같은 일반인들보다 더 빨리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마트한 아이디어를 창출해 낸 것이다. 편리함의 결과만 보면 매우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이 애쓴 사고력의 결과물을 내가 누리는 동안, 나는 오히려 사고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긴 게 아닐까?

내가 제일 처음 느낀 생활 속의 불편한 점은 10여 년 전, 싱크대 안의 냄비와 프라이팬을 정리할 때였다. 좁은 공간에 여러 다른 모양의 그릇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공간지각 능력을 발휘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싱크대 안쪽 공간에 그룻을 정리할 수 있는 선반 정리대가 나와서 이제는 그냥 쑥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 편리하다. 이리저리 다시 들여다보고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성인이 된 나는 더 이상 사고력을 키우는 과정의 시간이 그리 대수롭지 않다. 더군다나 수많은 시간 동안 불편함을 겪으면서 사고하는 과정을 다 거친 후이므로, 지금 누리는 편리함이 좋기만 하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편리한 세상을 누리게 되는 알파세대는 다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문제 상황을 맞닥뜨려서 도전하고 실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미 고도로 발전된 사회에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들의 부모인 3040 세대의 일반적 성향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금쪽이 같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에잇포켓’   

최근에 나는 저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3040부모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고, 고심 끝에 외동아이를 낳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력, 정보력을 다 쏟아 자녀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한다. ‘골드키즈 gold kids’, ‘금쪽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최근 광고 트렌드를 봐도 알 수 있다. 유통업체에서는 최근 알파세대를 ‘에잇포켓’으로 부른다고 한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부모뿐만 아니라 양가 조부모와 삼촌, 이모(또는 고모)까지 아이 한 명을 위해 여덟 명이 지갑을 연다는 의미이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도 아동 명품의 매출은 매년 증가하고, 각종 아이디어 육아용품, 교육 콘텐츠, 부모를 대신해서 놀아주는 AI 상품까지 키즈산업은 불황을 모른다.

경제적인 면뿐만이 아니다. 이 연령대의 부모들은 정보 수집에 능통하고, SNS로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각종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심리적인 육아 방법에도 관심이 많고, 자녀교육 상담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아이에게 닥쳐올 문제를 미리 사전에 막아주고 싶은 것이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교육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런 현상은 정말 반갑고 고무적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육에 관한 관심과 적극성이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녀들을 위해 쏟았던 열정과 노력이 오히려 마이너스의 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고 안락한 상황 속에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고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사전에 어려움을 막아주는 상황 속에서는 다가오는 문제 앞에서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사라져서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

뇌과학자들이 디지털 디톡스를 주장하는 이유 

그러한 문제점을 실리콘 밸리의 부모들은 일찍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리콘 밸리의 유수한 혁신기업 직원들은 자녀들을 ‘월도프 스쿨Waldorf School’에 보낸다. 유명한 이 학교의 커리큘럼을 보면 IT나 컴퓨터 기술은 들어 있지 않다. 수업 과정에서도 스마트폰, PC를 비롯한 모든 디지털 기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아날로그 방식의 종이책, 펜과 볼펜, 자연 속의 풀과 나무, 물을 활용하여 참여형 수업 커리큘럼을 구상한다. 등록금은 유치원 과정만 해도 3천만 원에 달하는데도 모두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이 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세계적인 IT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책에서 ‘학습능력과 소통능력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은 디지털 방식에 있다’고 언급했는데, 월도프 스쿨의 커리큘럼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뇌과학자들이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를 주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디지털 기계에 존재하는 파장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그 편리함에 길들여져서 생각하지 않는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하지 않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사실 이러한 현상들을 일반적인 사람들은 잘 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자의 눈에는 확연히 보인다.

얼마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우리 학급 한 아이의 어머니가 담임교사를 찾아왔다. 매일 아침 어린 학생 두 명이 커다란 급식 우유 상자를 들고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하시면서, 들기 좋게 손잡이가 달려 있는 가벼운 바구니를 가지고 오셨다. 이것을 사용하면 혼자서도 편하게 들고 갈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당장 몸은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유당번을 두는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사실 학교에서 역할 담당을 두는 이유는 노동활동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부수적인 가치를 얻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우유 상자를 둘이 같이 들면서 힘의 원리도 알게 되고, 잡는 위치에 따라 어떤 것이 더 편하고 불편한지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가끔은 둘의 의견이 맞지 않아서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가 선생님께 중재를 요청하러 오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런 수순을 거친다. 학년이 올라가면 지난 시간의 불편함을 바꾸기 위해 함께 토론도 하고 협상 과정도 거치면서 아이들은 쑥쑥 성장해간다. 그런 후에 가벼운 손잡이가 달린 바구니로 바꿔서 편리함을 누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편하게 키우려면 부모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즉, ‘불편하게 키우기’라는 것은 편리하게 빨리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제공해 주지 않고, 문제가 발생하고 늦더라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험스러운 장애물을 미리 다 치우지 않고, 외부에 대응할 방어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과정에서도 또 도전할 수 있고, 결국에는 스스로 이루어내는 성취감을 맛보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에 <살아남기>라는 서바이벌 학습만화 시리즈가 유행했던 것처럼, 우리 내면에는 어려움과 부담을 넘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그런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도록 아이들에게 풍족함과 편리함을 미리 펼쳐두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다면 아이에게 항상 약간의 불편함과 결핍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를 위해 꽃길을 깔아 줄 충분한 정보력과 경제력이 있고, 그렇게 제공해주고 싶은 원함이 속에서 넘쳐나더라도, 그때가 바로 부모의 자제력을 발휘할 때이다. 내 만족을 뒤로하고,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잘 따져보자.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대나 아날로그가 중심이 되었던 사회에서는 일부러 불편한 상황을 아이에게 만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그 당시의 삶에는 불편함이 부지기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알파세대 아이들이 자라나는 지금의 최첨단 사회에서는 일부러라도 불편함을 만들어줄 지혜가 필요하다. 초등학생을 둔 3040부모들이라면 이런 사실을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글쓴이 안현지

교육학을 전공한 올해 26년 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2021~2022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선진교사로 선정되었고, 지역사회 교육문화단체 ‘하트톡’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춘천교도소의 초청을 받아 2015년부터 매달 재소자들에게 인성교육 강연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 온오프라인 학부모교육 강사로 활동 중이다. 교사이자 엄마로서,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과 상담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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