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김치, 혼김치

쌀쌀한 바람 불어오는 11월이 되니 ‘김치’와 관련한 키워드가 인기 검색어로 떠오른다. 예전에는 젓갈이며 고춧가루 등 김장 속재료가 주요 관심사였다면, 요즘에는 맛있는 김치를 주문할 수 있는 브랜드를 알아보는 이들이 더 많다. 핵가족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들이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김장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치 연구가 배양자 씨는 김치를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만 바꾸면 혼자 살면서도 맛있는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얼마 전, 그 비법이 담긴 책을 출간했는데 그 안에는 손쉽고 맛깔스런 김치 레시피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의 말처럼 정말 누구나 ‘김치’를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혼자서도 김치 맛있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신다고요.

네. 보통 ‘김치’하면 수많은 속재료와 복잡한 과정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김치도 샐러드처럼 쉽고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재료도 모두 김치로 만들 수 있어요. 부추나 브로콜리, 깻잎, 셀러리를 비롯해 냉장고에 먹다 남은 채소 즉 대파나 쌈 채소, 방울토마토, 과일 등으로도 김치를 만들 수 있어요. 신기하지요?(하하) 

제가 이러한 김치 레시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엄마로서의 작은 바람 때문이었어요. 제게 두 아이가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각종 김치를 제가 직접 담가 먹였어요. 그렇게 자란 두 녀석이 모두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김치를 무척 그리워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어요. ‘김치 담그는 일은 왜 김장처럼 연중행사로 거창해야 할까?’ ‘재료는 또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죠. 고민해보니, 김치를 담그는 방법이 젊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겠더군요. 아무리 좋은 문화라도 여건과 환경이 안 되고, 관심이 없으면 스며들지 못하는 법인데, 김치가 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쉽고 간편하게 하지만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김치 레시피를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렇게 일상에서 김치를 쉽게 접하다 보면 분명 우리 전통 김치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요. 

레시피 중 몇가지 추천해주신다면요.

브로콜리김치를 소개해볼게요. 저희 밥상에 올라오는 브로콜리 음식은 대부분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는 방식일 거예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살짝만 데쳐서 김치 양념을 버무려 먹어보세요. 양념 재료는 밀가루 풀,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새우젓, 까나리액젓이 다예요. 보통 데친 브로콜리를 하루 이상 두면 식감이 떨어지죠. 그런데 이렇게 먹으면 최대 5일까지 보관하며 먹을 수 있어요. 아삭한 식감에 예쁜 색을 띤 맛있는 반찬이 되는 거죠. 살짝만 데쳐도 되기 때문에, 비타민C 등의 영양소도 덜 파괴 되고요.

이외에도 셀러리김치, 마늘장아찌와 방울토마토를 활용한 김치도 추천하고 싶어요. 최근 국내외에서 채소를 활용한 다양한 식단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잖아요. 김치도 간단히 만들어서 하루 안에 먹는 샐러드처럼 생각한다면,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이런 인식이 잘 만들어진다면,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김치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발간한 책을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김치를 케이푸드의 최전방에 세우고 싶어요.

김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저는 거제도에서 태어났어요. 산과 바다에서 나는 가장 신선한 재료를 계절마다 먹을 수 있었죠. 특히 손맛 좋기로 소문난 엄마 밑에서 자라며 다양한 한식 특히 각종 김치 담는 법을 보며 자랐습니다.

한식 연구가면서, 20년째 한식 브랜드 ‘정성담’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자라온 환경 덕분인지, 재료 하나하나 직접 찾아다니며 만들고 있어요. 제철 식재료, 산지 등에 민감하지요.(웃음) 처음 외식업에 뛰어들었을 때 설렁탕, 갈비탕 같은 탕 전문점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밥과 김치가 참 중요했어요. 당시 김치는 겉절이로, 깍두기는 숙성시켜 내놓았어요. 문제는 여름에 김치가 금방 익어버리고 겨울에는 추워서 무나 배추를 절이는 데 시간이 배로 드는 겁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후, 여름에는 찬물에 소금을 약간 적게 넣어 덜 짜게 김치를 담그고, 겨울에는 더운물을 써서 염도를 더 높게 해서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죠. 이뿐 아니라 ‘깍두기를 씹는 식감을 어떻게 하면 더 아삭하게 만들 수 있을까?’도 고민을 했어요. 더 맛있는 김치를 만들겠다는 일념이 저도 모르게 공부를 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런데 김치를 전문적으로 연구해봐야겠다고 느낀 건, 4년 전이었어요.

한식과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해오던 중, 한국과 크로아티아 수교 행사에 한식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제가 김치를 담당하게 되었어요. 당시, 행사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김치를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불고기나 잡채 등과 같은 음식에 비해 김치를 너무 소홀히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하며 김치 전문가가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게 그때였죠.

이번에 발간하신 책에 그간의 노하우와 고민이 담겨 있겠군요.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는 김치를 만들기에 굳이 필요 없는 과정을 과감하게 없애거나 간소화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이렇듯 이 책의 발행 목표는 ‘쉬운 김치, 맛있는 김치 담그기’이지만 후반부에는 제 김치 노하우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엄마, 할머니 표’ 김치 레시피도 들어 있어요.

사실 제 어머니의 김치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 어머니 연세가 아흔이 넘으셨지만, 예전에는 거제도 명물인 갈치로 담근 ‘갈치무쩍김치’를 만들어 보내시곤 했지요. 어머니가 장에서 막잡아온 갈치를 사오시면 그날은 회로 먹고, 구이로도 먹고, 다음날에 김치도 담궈서 맛있게 먹었던 소중한 기억이 있어요. 특히 이러한 전통 김치는 각종 채소뿐만 아니라 소금, 젓갈 등과 버무려지며 ‘발효’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건강학적으로 극대화되는 식품이에요. 그래서 이 레시피만큼은 모든 분과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울 것이라고 부담부터 느낄 필요는 없어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채소를 활용해, 쉬운 것부터 해보시길 바라요.

‘김치’가 서양의 샐러드처럼 많은 사람에게 손쉬운 요리로 알려지게 된다면, 전통 김치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하셨죠. 그렇게 된다면, 김치와 함께 한국의 어떤 문화도 알릴 수 있을까요?

우선, 김장은 혼자서는 하기가 힘들잖아요. 저도 매년 김장을 하지만, 할 때마다 주변 친구나 가족, 이웃들이 함께 와서 도와줍니다. 나중에 다른 분이 김장을 하면 그때 또 가서 함께 돕기도 하고요. 일명 ‘품앗이’ 같은 거죠. 그런 정신이 김장 문화에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김장하다 보면 이런 생각을 종종 해요. ‘지금은 시중에 절인 배추도 팔고, 젓갈도 있고, 곱게 빻은 고춧가루, 다 찧어 놓은 마늘도 팔지만, 예전 선조들은 어떻게 김치를 담았을까?’ 지금 김장을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재료도 준비해두고, 젓갈이며 고춧가루며 하나하나 직접 손질해야 했을 거예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지혜와 인내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라 생각해요.

살다 보면 어려움을 만나고, 삶이 원하지 않는 대로 흘러갈 때가 있지요. 그때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저 또한 사업을 하며 어려웠던 순간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 어떤 것 하나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그 어려운 과정을 지나고 보면 맛있는 김치처럼 좋은 결과도 함께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김치를 만들다 보면 과정 하나하나가 힐링이고 명상의 시간이 될 수 있어요. 이러한 ‘김치’만의 매력도 함께 알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하하) 

1인 가구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여러분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취향에 맞는 김치를 먼저 찾아보세요. 그리고 가장 먹고 싶은 김치 레시피를 따라해보는 거예요. 3가지만 따라 만들어본다면, 이미 ‘김치러버’의 길로 들어선 겁니다. 김치 담그기, 어렵지도 않고 두려운 일도 아니에요!

배양자 씨는 어렸을 때부터 먹어본 전통 김치들을 중심으로 레시피 북을 출간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음식 하나에도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 걸 원칙으로 하는 그가, 돌연 ‘간단 김치 레시피’를 공개한 이유는 하나였다. 우리 김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다시금 찾게 해주고 싶다는 것. 그에게 김치는 어릴 적 어머님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었고,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던 고마운 음식이며, 사랑하는 이에게 오래도록 먹이고 싶은 것이었다.

“요즘은 전 세계 사람들이 김치를 애호하는데, 정작 우리 아이들은 김치를 최고의 음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억지로가 아니고 진짜 한국 김치 맛을 제대로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제가 힘을 보태고 싶고요.” 이제 소중한 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그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그의 남다른 김치 사랑이 느껴지니, 나도 모르게 ‘오늘 저녁엔 브로콜리를 사다가 김치를 한번 만들어 봐야지’ 싶었다.

도서 <혼김치 :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김치>

간단하게 만들어 바로 먹을 수 있는 김치부터 냉장고 속 재료들을 털어서 만드는 냉털이 김치, 채식주의자를 위한 김치, 엄마의 손맛 김치까지 다양한 김치의 레시피를 담은 책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도 김치를 간편하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가 단순하고 양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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