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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마지막 24년
박문택 | 승인 2022.11.14 09:50

두 해 전, 내 나이 48살이 되었을 때 앞으로의 24년을 어떻게 살지 생각해 보았다. 최근에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뒤로는 잘 하지 않지만, 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8킬로 정도를 뛰었는데, 워낙 달리는 속도가 느리니까 뛰는 동안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나에게 24는 의미 있는 숫자다. 태어나서 24살까지,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48살까지 내 삶은 둘로 선명하게 나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내 삶도 편의상 24년으로 잡아보았다.

태어나 24살이 되기까지 나는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무엇이라도 잘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덤벼들기는 했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다. 나에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항상 ‘오늘의 절망’ 속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의 울타리 안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경험만 계속 반복했다. 나는 스스로 포기하며 ‘할 수 없다’는 네 글자를 조용히 가슴에 새겨넣었다. 그러자 내 속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갔고, 나의 말과 행동도 거칠어져 갔다. 이제 내가 아무리 나를 봐도 소중한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24년을 시작할 즈음, 내가 갖는 생각에 따라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변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는데, 모든 것이 신기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었는데도, 나의 모든 것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세상과 나를 향해 가졌던 삐딱한 시선을 버리자 이제는 ‘나’를 아무렇게나 다룰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형편을 당장 바꿀 수 없었지만, 마음과 생각에서 나는 그런 것들을 바꾸어 나갔고, 조금 있으니 실제로 그런 것들이 바뀌었다.

나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던 울타리 안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묻었던 흙과 먼지를 털어내고, 일어서서 내가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왜 내가 저 자리에 혼자 앉아있었던 걸까? 나는 나를 가두고 있는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실제 존재하는 울타리가 아닌 스스로 내가 생각 속에서 그려 만든 울타리일 뿐이어서, 생각에서 지우니 즉시 사라졌고,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려고 하니 정말 울타리가 없었다. 내 생각에 속았던 것이다.

울타리를 나와 24년 동안 살았다. 모자라거나 부족해도 열심히 달렸다. 24살 때까지 달리지 못했던 거리까지 포함해서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뛰었다. 나를 품어주셨던 부모님들을 생각하면서 뛸 수 있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보면서 뛰기 싫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뛰었다. 그리고, 소중한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즐겁게 뛰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 내 삶의 48년이 지났고, 마지막 24년이 남았다. 주변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처음의 철없는 24년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두 번째 열심히 달린 24년을 이어가려고 하니 집중력과 체력이 뒷받침될 것 같지 않아 살짝 겁이 났다. 앞으로는 서서히 일들을 정리해 가면서 좀 더 안정된 삶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니 시간을 두고 마지막 라운드를 구상하려 했다. 흔히 말하는 ‘노후’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쩐지 이 생각이 내키지 않았다. 첫 24년은 내가 잘못 살기는 했지만, 그것이 교훈이 되어 두 번째 24년을 다르게 살 수 있었는데, 세 번째 24년을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리만 하고 있다면, 그건 죽어가는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런 삶이 평온한 걸까? 힘든 일을 그만두면 나에게 좋은 것들이 찾아오는 것일까?

마침내 결정했다. 남은 24년을 두 번째 24년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달려오느라 놓친 것들까지 다 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중에 원대로 쉴 거라서 여기서의 ‘쉼’을 포기했다. 다시 24살로 살아간다는 마음을 먹고, 마지막 24년을 시작했다. 새로운 공부와 일들을 하기 시작했고, 예정에 없었던 일들까지 보태져 여유가 없다. 할 것도 많고, 갈 곳도 너무 많다. 하지만 더이상은 나는 ‘할 수 없다’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재지 않는다. 나는 이제 ‘한다’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렇게 하니 의외로 마음이 편안하고 어떤 때는 심지어 즐겁기까지 하다.

우리는 얼마큼 될지는 모르지만, ‘시간’을 가지고 있다. 다른 것을 잃어버렸을지 몰라도,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이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원하지 않는 일을 만나도 거기에 빠져 있지 말고,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서 나와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들 행복하게 썼으면 좋겠다.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도, 그동안 숱하게 실패를 했어도,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삶을 살면 많은 것을 만회할 수 있다.

박문택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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