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수’ 조조는 어떻게 과일도둑을 잡았나?

삼국지의 주인공 중 조조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감각이 남달랐다. 그의 저택 정원에는 비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열매 맛이 독특해 조조가 심히 아꼈다. 한가할 때면 비파 열매를 세어보는 것이 조조의 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깜짝 놀랄 사건이 벌어졌다. 비파 열매 두 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비파에 누가 감히 손을 댄단 말인가!’ 이를 틀림없이 내부, 그것도 가족이나 측근이 아니라 아랫사람의 소행이라고 판단한 조조는 범인을 잡을 기막힌 비책을 떠올렸다. 다음 날, 조조는 하인들을 모두 모아놓고 명을 내렸다.

“저 비파나무가 몹시 거슬리니, 당장 베어버려라.”

하인들은 부랴부랴 나무를 벨 톱과 도끼를 챙겨오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런데 하인 중 하나가 무심코 말했다.

“아까워라. 이렇게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왜 벤담?” 조조가 그 말을 놓칠 리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자네는 이 비파 맛을 잘 아는 모양이로군!”

중국 송나라 때 작품으로 알려진 비파나무와 열매 그림. 생김새가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독특한 맛과 향 때문에 조조가 유난히 아낀 과일이라고 전해진다.
중국 송나라 때 작품으로 알려진 비파나무와 열매 그림. 생김새가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독특한 맛과 향 때문에 조조가 유난히 아낀 과일이라고 전해진다.

비파를 맛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반응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음과 절대 같을 수 없음을 조조는 간파한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비파는 살구를 닮은 과일로, 그 생김새나 향기가 식욕을 돋울 만큼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 하인은 그 맛을 본 적이 있기에 조조가 비파나무를 베는 걸 안타까워한 것이다.

우리가 가을에 즐겨먹는 밤은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여 있다. 조심조심 가시를 벗기면 딱딱한 겉껍질이, 겉껍질을 벗기면 떫은 속껍질이 나온다. 속껍질까지 벗긴 뒤에야 특유의 고소한 알맹이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은 무려 세 번이나 껍질을 벗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들 중에도 밤송이처럼 처음에는 언뜻 날카롭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지만, 일단 그 맛을 알면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 삼국지에서도 처음에는 상대의 마음이나 진정한 됨됨이를 모른 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외모나 말투, 출신배경 등을 보고 마음을 닫았다가, 차츰 그 진심을 깨닫고 처음의 편견과 오해를 내려놓으며 한마음 한뜻이 된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방통, 볼품없는 외모에 가려진 천하를 뒤덮을 지혜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패퇴시키며 기세를 드높이던 오나라는 2년도 못 되어 큰 위기에 놓인다. 적벽대전 승리의 주역이었던 대도독(총사령관) 주유가 불과 서른다섯에 급사하면서 군을 통솔할 지휘관이 사라진 것이었다. 하루빨리 후임자를 찾아야 할 상황에서, 후임으로 거론된 인물은 노숙이었다. 하지만 그는 손권 앞에서 대도독 자리를 극구 사양하며 말했다.

“대도독으로 저보다 더 적합한 인재가 있으니 그를 기용하십시오.”

“그게 누구요?”

“바로 방통입니다. 일찍이 수경선생 사마휘가 유비에게 ‘와룡臥龍과 봉추鳳雛, 둘 중 한 사람만 얻으면 능히 천하를 얻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와룡은 제갈량을, 봉추는 방통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제갈량에 맞설 만한 인재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손권은 곧바로 방통을 불러오게 했다. 하지만 방통을 만난 손권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짙은 눈썹에 들창코, 시커먼 얼굴에 짧은 수염’을 한 그의 외모가 너무도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전임자였던 주유가 삼국지를 대표하는 미남이었기에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손권은 “기다리고 있으면 사람을 다시 보내 부르겠다”는, 기약없는 말로 방통을 돌려보냈다.

그런 손권에게 실망한 방통은 유비를 찾아갔다. ‘강동의 현자 방통이 왔다’는 소식에 유비는 부리나케 그를 맞으러 달려나왔다. 하지만 손권이 그랬던 것처럼, 유비도 방통의 꾀죄죄한 외모에 실망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방통을 내칠 수도 없어 고심하던 유비는 그에게 외딴 시골마을 현령縣令 자리를 내줄 따름이었다. 사실 방통은 절친 제갈량에게 받아둔 추천서가 있었지만, 내보이지 않았다.

중국 청나라 때 그려진 방통의 모습. 지략에 있어 제갈량과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었지만, 외모는 그다지 빼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묘사된다. 참고로 제갈량은 190cm의 키에 절세미남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청나라 때 그려진 방통의 모습. 지략에 있어 제갈량과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었지만, 외모는 그다지 빼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묘사된다. 참고로 제갈량은 190cm의 키에 절세미남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골로 부임한 방통은, 자그마치 석 달 넘게 일을 하지 않고 빈둥대며 지냈다. 그 소식은 곧장 유비의 귀에 들어갔다. 유비는 장비를 불러 ‘방통을 만나 진상을 파악하고 책임을 물으라’고 지시했다. 장비가 가 보니 과연 현청에는 처리되지 않은 각종 문서와 장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장비는 방통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현령이면서 업무는 팽개쳐놓고 지금까지 뭘 한 거요?”

“이런 작은 마을 하나 다스리는 게 뭐 어려울 게 있겠소? 여기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처리해 보이리다.”

방통은 마을 관리들에게 밀려 있는 일거리들을 모두 가져오게 했다. 눈으로는 문서와 장부를 검토하며 손으로 결재와 지시사항을 내리고, 귀로는 송사訟事(재판)를 하러 온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입으로 판결을 내렸다. 그 지시와 판결이 얼마나 명쾌한지, 관리와 백성들 중 누구도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밀려 있던 석 달치 업무가 반나절 만에 마무리되었다. 그제야 방통의 재주가 보통이 아님을 눈치챈 장비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훌륭한 분을 몰라뵙고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돌아가면 형님께 아뢰어 선생을 중히 쓰도록 여쭙겠습니다.”

장비의 보고를 받은 유비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다. 외모로 인한 편견 때문에 자칫 천하를 덮을 뛰어난 지혜를 잃을 뻔한 것이다. 이윽고 부하들이 방통을 모셔오자 유비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 용서를 구했다. 방통은 미소를 지으며 제갈량이 써준 추천서를 꺼냈다. 인맥이 아닌, 오롯이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추천서를 보이지 않은 방통의 본심을 안 유비는 그 인품에 마음이 끌렸다. 즉시 방통을 제갈량 다음가는 부군사副君師에 임명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며 힘을 키우게 했다. 방통도 처음에는 유비에게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삼국지에서 인덕仁德의 상징과도 같은 유비가 금방 잘못을 돌이키고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최선을 다해 유비를 보필하게 되었다.

능통과 감녕, 불구대천의 원수에서 친구가 되기까지

오나라의 손권에게는 오래전부터 큰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부하인 능통과 감녕이었다. 능통의 아버지 능조도 손권의 부하장수였는데, 전쟁에 나갔다가 적장 감녕이 쏜 화살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감녕이 손권에게 귀순하면서 둘이 하루아침에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당연히 능통은 ‘기회가 되면 반드시 감녕을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노라’며 이를 갈았다. 손권이 마련한 잔치자리에서 갑자기 칼을 빼들고는 감녕에게 덤벼들었다가 주위의 만류로 제지당한 적도 있었다. 손권은 그를 막아서며 좋은 말로 타일렀다.

“감녕이 자네 부친을 죽인 건, 서로 다른 주인을 섬기며 싸우다 벌어진 일이네. 이제는 한집안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지난날의 원수를 따지려 드는가? 내 낯을 봐서라도 용서하게.”

그러자 능통이 칼을 떨어트리며 울부짖었다.

“부친의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그냥 두고 용서하라시는 겁니까?”

잔치는 흐지부지되었고, 고민 끝에 손권은 감녕을 멀리 변방으로 보내 근무하도록 했다. 손권의 배려에 고마워하며 떠난 감녕은 이후 여러 전장을 누비며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런 감녕을 바라보는 능통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한번은 조조가 직접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 국경지대로 쳐들어왔다. 감녕은 병사 100명만을 거느리고 야밤을 틈타 조조군 진영을 기습하여 사기를 크게 꺾어 놓았다. 이에 자극받은 능통은 다음 날 출전을 자청하여 조조군의 악진과 일대일로 싸움을 벌였다가 그만 실수로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악진이 창을 들어 능통을 찌르려는 순간, 손권군 진영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와 악진의 뺨에 정통으로 꽂혔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본진에 돌아온 능통은 손권에게 큰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손권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네. 그 화살을 쏜 사람은 따로 있으니 말일세.”

“그게 누굽니까?”

“바로 감녕일세.”

전혀 뜻밖의 말에 능통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감녕도 능통을 향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지만, 그 또한 아군이었기에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접고 지체없이 활시위를 당긴 것이었다. 그런 감녕의 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걸까. ‘지난날 아버지의 목숨을 거둔 화살이, 오늘은 내 목숨을 살렸구나.’ 잠시 생각에 잠겼던 능통은 감녕을 향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장군께서 이런 은혜를 베푸실 줄은 몰랐소. 오늘 일은 죽어도 잊지 않으리다.”

그날로 둘은 마음에 쌓아두던 묵은 원한을 씻어버리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감녕이 능조를 죽인 게 서기 203년, 감녕이 능통을 구한 게 서기 215년 무렵의 일이었으니, 무려 10년 넘게 풀리지 않던 갈등의 매듭이 풀린 것이다.

게임 ‘삼국지 시리즈’ 제11편의 포스터. 삼국지를 소재로 한 창작물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영웅호걸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반영해 만들어진 상상력의 산물이다.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외모는 그야말로 어쩌면 옆집 아저씨처럼 지극히 평범했을지도 모른다. ©Koei Tecmo Games
게임 ‘삼국지 시리즈’ 제11편의 포스터. 삼국지를 소재로 한 창작물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영웅호걸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반영해 만들어진 상상력의 산물이다.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외모는 그야말로 어쩌면 옆집 아저씨처럼 지극히 평범했을지도 모른다. ©Koei Tecmo Games

결실의 계절, 삼국지에 숨은 마음의 맛을 찾아보자

삼국지의 묘미 중 하나는 등장인물들이 선보이는 반전이다. 늘 힘을 앞세우고 혈기왕성하기로 소문난 장비가, 때로는 천하의 제갈량이 크게 칭찬할 만큼 기막힌 작전을 구사하기도 한다. 매사에 비정하고 냉혹한 면모를 보이던 조조도, 때로는 ‘이게 진짜 조조가 맞나?’ 싶을 만큼 관대한 처분을 내릴 때가 적잖다. 이 같은 캐릭터의 입체성, 즉 등장인물들이 지닌 다양한 맛이야말로 삼국지가 지닌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같은 밤송이를 보면서도 날카로운 가시와 딱딱한 껍질까지만 본 사람이 있고, 그 속에 숨은 맛있는 열매까지 맛본 사람이 있다. 과일에 비유하면 가시나 껍질 같은 사람의 외모나 성격,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상대를 멀리하거나 마음에서 벽을 쌓고 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손권이나 유비, 능통처럼 자칫 큰 지혜나 좋은 친구를 얻을 기회를 얼마든지 놓칠 수 있을 것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저마다 다채로운 자태와 향기를 지닌 과일들을 맛볼 수 있는 것은 가을의 크나큰 즐거움이리라. 10월에는 과일만큼 풍성하고 다양한, 삼국지 속 영웅들의 숨은 맛을 찾아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역사 연구가들에 따르면 삼국지 속 등장인물들의 수는 모두 1,300명을 훨씬 넘는다니, 그 안에는 무려 1,300여 가지 마음의 맛이 담겨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만화나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된 삼국지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원전原典과는 다르게 각색된 것들도 많아 개인적으로는 권하고 싶지 않다. 삼국지라면 모름지기 한 번쯤은 책으로 읽어보는 게 좋다. 열 권을 넘나드는 분량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큰 글씨에 그림이 많고 내용이 간추려진 문고판 삼국지라도 상관없다. 그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 맛을 찾아 만끽하기에는 충분할 테니 말이다.

글쓴이 김성훈

2006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일본 도쿄에서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 13년간 잡지사에서 근무하며 영어 번역, 기획 및 편집, 인터뷰 취재 등을 담당했다. 현재는 의학잡지 편집 담당자로 일하면서 당뇨병 환자들이 믿을 수 있는 검증된 건강정보 콘텐츠를 기획·제작·배포하는 한편, 틈틈이 노인과 청소년을 위한 마인드강연, 대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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