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깨우면 조금 더 자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막내 녀석이 오늘은 “소풍 가야지?”하니까 금방 일어난다. 어디로 소풍을 가는지 두세 번 물어봤는데, 내가 건성으로 들어 기억나지 않았다. 한 번 더 물었다가는 “아빠, 이미 다 말했잖아요.”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더 묻지는 않았다. 아이는 일어나 준비를 한 뒤, 김밥이 든 도시락을 확인하고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학교로 갔다. 

소풍 때문에 들뜬 아이의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코로나로 소풍이 중단되어, 아이들이 흙냄새를 맡거나, 시큼해지려는 김밥을 먹거나,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있는 보물 쪽지를 찾는 짜릿함을 느낄 기회가 더는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 소풍을 간다니 참 다행이다. 막내 녀석이 어젯밤 자기 전에 김밥과 떡볶이를 꼭 싸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여, 아내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밥 한 솥을 옆에 두고 김밥을 말고 있었다. 이런 날은 나까지 하루 종일 김밥만 먹게 된다. 아침 김밥, 점심 김밥(사무실에 싸 가실래요? 아니), 저녁 김밥, 그리고 마지막 야식으로 계란에 묻혀 기름에 튀긴 김밥을 먹는다. 

아내가 만든 김밥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어렸을 때 어머니가 싸주셨던 게 떠오른다. 말 때 보면 괜찮았는데, 소풍 가서 열어보면 옆구리가 터진 김밥이 많았다. 어머니는 항상 다음에는 안 터지게 해준다고 하셨지만, 나가서 배고프지 말라고 얇은 김에 밥도, 야채도, 계란도 듬뿍듬뿍 넣고 싸려니 매번 김밥이 안 터질 수 없었다. 

소풍을 가면 보물찾기, 수건돌리기, 그리고 장기자랑이 빠지지 않았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보물찾기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보물을 찾기 쉽게, 찾을 만한 곳에 숨기셨는데, 나는 선생님이 나처럼 짓궂어서 아이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 꼭꼭 숨겨 놓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바위 밑을 애써 들추거나 쓰레기를 뒤지면서 보물을 찾아다녔다. 멀리서(내가 멀리 온 거였다) 하얀 쪽지를 두세 개씩 들고 환호하는 아이들이 보였고, 달려가 어디서 찾았냐고 물어보면 나뭇가지나 돌덩이 뒤에 있었다고 했다. ‘왜 보물을 그렇게 쉬운 데 숨겼지?’ 라고 의아해하며 뒤늦게야 후회하고 쉬운 곳을 찾아보면, 보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곳에 보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물. 우리가 생각하는 보물은 거의 비슷하다. 특별해야 하고, 인생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환경을 어느 정도 바꿀 만한 것이어야 한다. 큰 병에 걸리면 건강이 최고라고 하지만, 몸이 조금만 좋아져도 우리는 또다시 전에 생각했던 보물을 찾아 떠난다.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공부를 하고, 보물을 얻을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이젠 정말 확실하다면서 사업을 한다. 조금만 더 하면 보물에 손이 닿을 것 같은데, 보물도 내가 간 거리만큼 앞서 가버려 도무지 미치지 않는다.

소풍에서 진짜 보물은 무엇일까? 김밥을 싸준 엄마와 흐뭇한 표정으로 잘 다녀오라는 아빠가 보물이고, 또 그 김밥을 기쁘게 가져갔다가 돌아와서 잘 먹었다고 하는 아이가 보물이다. 줄지어 걸어가면서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는 아이들의 표정도 보물이고, 아이들을 챙기는 선생님의 눈길도 보물이다. 아이가 소풍을 간 하루 동안 나는 많은 보물을 얻었다. 저녁에 아이가 돌아왔다. 어딜 갔다 왔냐고 하니 양평 두물머리였다는데,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덧붙였다. “누가 그래?” 하니까 반에서 똑똑해 보이는 친구가 그렇게 말했단다. 

아마 선생님이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착각을 했구나 싶어 인터넷으로 지도를 검색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런 시간들 또한 보물이다. 진귀한 것을 알아볼 만한 눈이 없어서 그렇지, 우리는 이미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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