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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삼국지 최후의 생존자가 되었나?
김성훈 기자 | 승인 2022.09.28 11:44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서기 184~280년의 중국은 난세亂世 중의 난세였다. 한漢 황실이 쇠퇴한 틈을 타 전국 각지에서 구름처럼 일어난 영웅들이 저마다 야망을 이루고자 치열한 싸움을 되풀이했다. 삼국지가 갓 막을 올린 서기 190년, ‘황제를 농락하고 폭정을 펼치는 역적 동탁을 토벌하자’는 기치 아래 모인 이른바 ‘반동탁 연합’에 가담한 영웅은 모두 18명이었다. 이 외에도 줄잡아 수십 명이 목숨을 걸고 각축을 벌인 끝에 살아남은 최후의 3인이 바로 유비, 조조, 손권이었다. 따라서 이들 세 사람이 삶에서 일관되게 실천해 온 리더십과 가치관을 되짚어보는 일은, 삼국시대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며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다.

조조의 리더십,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으로 키운 사고력

먼저 조조를 살펴보자. 조조의 삶에서는 단연 ‘사고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영특했던 그는, 타고난 재능을 방대한 독서로 갈고닦았다. 전쟁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의 독서광이었던 조조는 병법서와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지휘관의 필독서였던 <손자병법>은 직접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해설을 달아 부하들에게 나눠줄 만큼 깊이 파고들었다. 역사책을 탐독한 것도 단순히 지식을 쌓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할 때 도움이 될 과거의 모범사례나 근거를 찾기 위함이었다. 역사 속 전쟁사례들 또한 승패의 과정과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이를 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했으니,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실용독서’를 한 셈이다.

독서를 통해 배양한 사고력은 조조의 일생을 관통하는 큰 힘이었다. 50대 중반에 중국 대륙의 절반 이상을 거머쥐기 전까지 조조는 거의 싸웠다 하면 이겼다. 그것도 삼국지 내 최고의 강적들을 상대로, 온갖 악조건을 안고서 말이다. 거병하기 전 조조는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여 현상수배범 신세가 되었고, 거병한 뒤로도 호걸 관우와 장비를 거느린 유비, 천하제일의 맹장 여포, 명문가의 후손 원술, 북방 오랑캐를 토벌한 공손찬 등을 혼자서 직간접적으로 상대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원소였다. 화북의 패권을 놓고 벌어진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조조는 4만 군사로 2배가 넘는 원소의 10만 대군과 맞서야 했다. 청주, 기주, 유주, 병주 등 4개 주州를 차지하고 있던 원소군은 물자도 풍부한 반면, 조조군은 고질적인 군량 부족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조조는 전쟁의 분수령마다 갈팡질팡한 원소와 달리, 신속정확한 판단력으로 상대의 계략을 역이용하고 허를 찌르는 기습을 펼쳐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조조가 실전에서 막힘없이 풍부한 전략전술을 펼친 밑거름은 평소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으로 단련한 사고력이었다.

1.조조는 한가할 때는 물론 전쟁터에서도 늘 책을 가까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벽에서 패해 귀환하면서 책을 읽는 조조의 모습.2.관도대전을 앞두고 열린 회의에서 조조를 독려하는 순욱. 그는 조조가 위기에 처할 때면 지혜를 발휘해 훌륭한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3.관도대전에서 조조는 적의 기세를 꺾고자 원소를 불러내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끌었다. 4.부하 장병들에게 돌격을 명하는 조조.출처: CCTV 드라마 <삼국>

손권의 리더십, 교류와 배움을 통해 제왕으로 거듭나다

손권은 조조보다 스물일곱 살, 유비보다는 스물한 살 어렸다. 조조와 유비에 비하면 한낱 어린애로 비칠 법한 그가 대륙의 강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핵심은 ‘교류’였다. 오나라의 군주가 되었을 당시, 손권의 나이는 열여덟에 불과했다. ‘강동江東의 호랑이’라 불렸던 아버지 손견은 전쟁터에서 적의 유인계에 빠져 화살을 맞고 바위에 깔려 숨을 거두었다. 뒤를 이은 형 손책은 강동 일대를 평정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자객들의 습격을 받아 스물다섯에 요절한다. 아버지와 형의 그늘에 묻혀 지내다 하루아침에 기업基業을 물려받은 손권은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로서는 오로지 형이 죽기 전 남긴 마지막 한마디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나라 안의 일은 장소張昭에게 묻고, 나라 밖의 일은 주유周瑜에게 물어라.”

손권에게는 오를 다스리려면 형과 아버지를 모셨던 선대 가신家臣들의 지지와 도움이 꼭 필요했다. 손권은 장소를 스승으로 삼고, 주유를 형으로 대하며 ‘가르침을 내려달라’고 읍소했다. 재미있는 건 장소는 손권의 아버지 손견과, 주유는 형 손책과 동갑이었다는 사실이다. 각각 아버지와 형뻘인 두 멘토의 헌신적인 지도 덕에 손권은 차츰 ‘애송이’ 티를 벗고 제왕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그 뒤로도 손권은 현인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모셔다 극진히 대접하며 자문諮問하는 등 사귐을 지속했는데, 오나라를 대표하는 책사인 노숙과 제갈근은 이렇게 발탁한 인재들이었다.

그러기를 8년, 조조가 백만 대군을 휘몰아쳐 침공해 오니, 이것이 적벽대전이다. 손권은 안으로는 문무 백관을 결집시키고, 밖으로는 유비와 연합군을 결성해 조조군을 물리치며 삼국지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유비와 조조에 비하면 후발주자였던 손권이 단기간에 리더로 성장한 비결은 교류와 연합이었다.

1.형 손책의 죽음으로 크게 상심한 손권.
2.손권이 형의 유언을 따라 신하들에게 자신을 잘 이끌어 줄 것을 부탁하자, 문무백관들은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다.
3.대도독으로 임명된 주유는 손권의 명을 받들어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을 크게 무찌른다. 출처: CCTV 드라마 <삼국>

유비의 리더십, 일어설 때와 굽힐 때를 아는 절제

유비는 조조처럼 번뜩이는 재능을 타고난 것도, 손권처럼 부형父兄에게 물려받은 번듯한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동탁 연합이 해산한 뒤, 변변한 근거지 하나 없던 유비는 동문수학한 선배 공손찬의 객장客將이 되었다. 이후 도겸으로부터 서주徐州를 물려받았지만, 자신이 도와준 여포의 배신으로 조조에게 귀순했다. 이후 원소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원소가 조조에게 패해 몰락하자 유표를 찾아가 휘하에 머물렀다. 삼고초려 끝에 얻은 제갈량의 도움으로 형주를 차지하고 촉나라를 얻기 전까지, 유비는 늘 도망자 신세였다. 그러나 거듭된 패배가 약이 된 것이었을까. 유비는 삼국지의 영웅들 중 누구보다도 자신을 굽히고 낮추며 비우는 데 익숙했다.

1.조조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유비는 집에서 채소를 키우며 자신의 포부를 철저히 감춘다.
2.조조와의 술자리에서 천둥번개가 치자, 유비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척 연기를 펼친다.
3.18년 뒤, 유비는 한중공방전에서 조조에게 대승을 거둠으로써 과거의 치욕을 씻었다. 출처: CCTV 드라마 <삼국>

유비의 절제와 인내심이 빛을 발한 일화를 두 가지 소개한다. 유비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이를 묵묵히 감내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한 황실의 후예로서 조상들이 세운 나라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포부와 기개였다. 내심 ‘천하에 나와 맞설 영웅은 유비뿐’이라고 여기던 조조는 유비가 자신의 식객으로 있는 동안 한시도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조조의 경계를 늦추기 위해 유비는 몸소 밭을 갈고 거름지게를 져나르며 농사를 지었다. 그 사실을 보고받은 조조는 직접 유비를 찾아갔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과 거름 냄새를 풍기는 유비의 모습은, 아무런 꿈도 없이 먹고사는 데만 관심을 둔 순박한 시골농부였다. 게다가 둘이 술을 마시던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자 유비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트리고 술상 밑에 기어들어가 벌벌 떨었다. 조조는 그제야 안심하고 경계를 풀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유비의 한바탕 멋진 연극이었다.

제갈량이 재주를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도 유비였다. 유비는 “내가 제갈량을 얻은 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라며 제갈량을 스승처럼 대했다. 졸지에 굴러온 돌에 밀려난 돌 신세가 된 의동생 관우와 장비는 기분이 언짢았다. 그 와중에 조조의 부하 하후돈이 10만 대군을 앞세워 쳐들어 왔다. 제갈량은 조조군을 섬멸할 계책을 세워놓았지만, 관우와 장비가 그의 지시를 따를 리 없었다. 급기야 제갈량은 유비에게 주군主君의 권위를 상징하는 칼과 도장을 요구했고, 유비는 이를 수락했다. 작전회의에서 제갈량은 “주공의 칼과 도장이 내게 있는 이상, 내 명령은 곧 주공의 명령”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게다가 유비마저 제갈량의 지시에 복종하며 싸우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아랫사람인 관우와 장비가 이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비가 발휘한 겸손과 비움의 리더십에 힘입어 제갈량은 데뷔전을 멋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위촉오 세 나라, 세 영웅의, 세 가지 공통점

지금까지 짚어본 것처럼 조조, 손권, 유비는 각각 ‘사고력’ ‘교류’ ‘절제’라는 저마다의 마인드를 리더십으로 승화시켰고, 이를 토대로 삼국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3인이 되었다.

물론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통점도 존재한다. 첫째, 인재를 중시했다. 특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지혜를 갖춘 멘토를 항상 가까이에 두고 수시로 조언을 구했다. 이를 가리켜 후세 사람들은 “조조에게는 순욱이 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으며, 손권에게는 주유가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인재를 중시했다는 말은 단순히 뛰어난 사람을 등용해 극진히 대우한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고, 누구 말을 듣지 말아야 할지 정확히 분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례로 마속馬謖은 어려서부터 병서에 두루 통달했고, 이따금 깜짝 놀랄 책략을 내놓아 제갈량이 중용했다. 하지만 유비는 죽기 직전 제갈량에게 “마속은 허풍이 심하니, 크게 쓰지 말고 눈여겨보라”고 당부했다. 과연 유비의 유언대로 마속은 훗날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제멋대로 작전을 펴다 패퇴의 빌미를 제공한 걸 보면, 사람 보는 눈만큼은 제갈량보다 유비가 한 수 위였던 듯하다.

둘째, 이들은 언제든 적과 맞서 싸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힘들고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싸움을 피해 적에게 굴복하거나 타협했다가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조조도 관도대전을 치를 때는 원소와의 전력 차가 워낙 컸던 탓에 ‘차라리 원소의 요구를 적당히 들어주고 화친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사 순욱이 보낸 편지에 힘입어 용기를 낸 조조는 다시금 전의를 가다듬고 싸움에 임해 마침내 승자가 되었다. 적벽대전을 앞둔 손권 또한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뉜 신하들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다 ‘조조와 화친하면 아랫사람들이야 자리를 보전하겠지만, 주공은 새장 속의 새 신세가 될 것’이라는 노숙의 진언을 받아들여 전쟁을 결심했고, 대승을 거뒀다. 유비도 늘상 남의 신세를 지긴 했지만, 마음까지 굴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셋째, 세 영웅은 절대군주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기 감정이나 마음을 따라 살지 않았다. 중대한 사안일수록 부하들의 의견을 조화롭게 경청한 다음 실행에 옮겼다. 때때로 적이나 반대파를 잔인하다 싶을 만큼 가차없이 처단한 조조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부하들의 조언을 따랐다. 그러나 ‘독단의 함정’에 빠진 순간, 셋은 나란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적벽대전에서 자신의 100만 대군을 과신한 조조는 더 이상 예전처럼 모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지 않았고, 결국 참패했다.

적벽에서의 패전 후, 조조는 예전의 날카롭던 기세가 완전히 꺾이며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유비는 오와 싸우다 전사한 관우의 복수를 한다는 명목으로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무리하게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적의 화계에 군사를 모조리 잃고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손권도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판단력이 흐려져 충신을 핍박하고 간신을 가까이하며 오나라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

조조, 유비, 손권은 결코 100% 완벽무결한 리더는 아니었다. 단점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장점들이 있어 그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여러분도 삼국지를 읽으며 작중 등장인물들의 위치에 현재의 ‘나’를 대입해보고, 내게 없는 그들의 장점을 찾아 삶에 적용해 본다면 또 다른 재미와 교훈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아닌가?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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