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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 마인드칼럼] 비를 피하듯 불행이나 슬픔에 젖지 않고
박옥수 | 승인 2022.08.13 19:24

“목사님, 저는 너무 불행해요. 많은 친구들이 학교에서 엄마 이야기를 자주 해요. 하지만 저는 지난 10년 동안 친구들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혼자서 ‘엄마’라고 수없이 불러보았어요. 그런데 대답해 줄 엄마가 없어요. 아홉 살 때부터 10년이 넘도록 말이에요. 나보다 공부를 못하고 나쁜 친구도 다 엄마가 있는데 나는 없어요. 친구 엄마는 속옷도 사주고 화장품도 사주고 백화점에 데려가 쇼핑도 하고 식당에도 같이 가요. 그런데 나는 왜 엄마가 없어야 하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 때가 너무 많아요. 혼자 방문을 잠그고 울어요. 아빠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 울 수는 없잖아요. 아빠는 엄마 이야기를 좋아하시지 않으니까요. 저는 지난 10년 동안 누구에게도 이런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어둡게 살았어요. 엄마는 아빠의 아내였지만 내게는 엄마잖아요. 그런데 아빠가 엄마를 싫어한다고 해서 나도 아빠처럼 멀리해야 하는 이유가 뭐지요?”

나와 가까이 지내는 어느 나라의 영사님이 있었다. 그분이 결혼해 예쁜 딸을 낳았고, 몇 년이 지난 후 한국으로 와서 근무했다. 그때 나와 알게 되어 서로 가깝게 지냈다. 낯선 서울이었지만 그분에게 좋고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영사님의 아내는 이유는 모르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남편과 생각이 달랐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꼭 서로 괴롭히기 위해서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작은 이야기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대화가 항상 다툼으로 끝났다. 자연히 서로의 마음에 불신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대화를 시작하면 “여보, 이제 그만하자.”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내곤 했다.

다투며 사는 것보다 잠시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영사님의 아내는 이해심이 많아 다른 사람들도 잘 따르고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부부는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았다. 매번 마음을 풀려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결과는 역시 다툼으로 끝나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작은 일에도 이야기가 이어지면 의견이 부딪혔다. 영사님은 ‘그래도 이혼만은 안 돼.’라고 생각하며 아내를 대했다. 하지만 점점 지쳐갔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투다가 아내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는 아니지만 헤어지고 싶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이렇게 다투며 사는 것보다 잠시 떨어져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가방에 입을 옷 몇 벌 넣어서 떠날게요. 그리고 마음이 달라지면 다시 돌아올게요. 제발 나를 놓아주세요.”

아내는 어린 딸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걸 꺼내면 다시 다툼이 이어질까봐 거기서 이야기를 끝냈다. 영사님은 이혼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떨어져 있으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서로 다투며 지내는 것보다 좋을 것 같아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바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가방에 옷가지를 넣고, 필요한 것들을 담았다. 그리고 말했다.

“여보, 미안해요.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돌아올게요.”

아내는 가방을 들고 어린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딸을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그리고 잠시 후 딸을 두고 집을 나왔다. 딸에게 뒷모습만 보인 채 문을 쿵 닫고 떠났다. 엄마가 사랑하는 딸의 곁을 떠난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거야

아홉 살 난 어린 딸은 엄마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아빠가 자상하게 대해주었지만, 아빠의 사랑이 아무리 커도 아빠는 아빠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집으로 돌아오면 혼자 지내야 했다. 딸은 자기 방에 들어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었다. 아빠가 보는 앞에서는 엄마를 그리워할 수 없으니까 집에 오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엄마를 생각하면서 울었다.

세월이 흘러 딸은 열아홉 살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동안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엄마가 선물을 잔뜩 들고 돌아오는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혼자 조용히 ‘엄마’ 하고 불러보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편지 한 장 보내지 않고,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미워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예쁘고 그리운 엄마를 마음에서 지울 수 없었다. ‘엄마는 나를 안은 채로 데려가지 왜 나를 두고 혼자 떠났을까?’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식 때에도, 대학교 입학식 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날 딸은 생각했다.

‘나는 지난 날들을 어느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보냈어. 행복은 나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앞으로도 행복한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아. 차라리 죽으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너무 슬펐다. 죽지 않으려고 생각하자 고통을 견디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딸은 마음에서 결정을 내렸다.

‘지난 10년이 고통스러웠는데 앞으로도 나에게 행복이 찾아올 것 같지 않아. 그렇다면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뭐지? 악마가 있다고 하는데, 악마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는 하루도 살기 싫다. 그래, 죽는 거야.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 날 거야.’

고통스런 삶이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더 생각할 것이 없었다.

아침을 먹고 아빠가 출근하는 것을 보며 ‘이제 아빠와도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와서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출근하던 아빠가 두고간 물건이 있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아빠는 자살을 시도한 딸을 보고 119에 전화했고, 딸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래서 죽으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나는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며칠 뒤 딸은 다시 자살을 시도했지만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행운인지 불행이지 알 수 없었다.

불행한 것만 쳐다보다가 마음의 방향을 바꾸면

어느 날 영사님이 내 사무실로 찾아와 딸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딸을 잃을 것 같아서 너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나는 영사님과 함께 딸을 만나기 위해 영사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영사님 딸과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 봐.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아야 하는 게 아니고 비를 피해야 하잖아. 건물로 들어가든지 우산을 쓰든지 해서 비를 피할 수 있잖아. 그것처럼 슬픔이나 절망도 그냥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어. 동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다른 풍경이 보이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불행한 것만 쳐다보다가 마음의 방향을 바꾸면 불행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냥 불행에만 끌려다닌다면 어리석은 거야. 친구들과 어울리며 얼마든지 즐거운 시간을 만들 수 있어. 엄마가 죽지 않았다면 언젠가 돌아올 수도 있고. 그리고 네가 나중에 멋진 남편을 만나서 사랑하며 앞날을 계획할 수도 있어. 남편과 다툴 수도 있겠지만 얼마든지 행복을 누릴 수 있어. 네가 불행한 쪽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거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영사님 딸에게 예수님 이야기도 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야기, 우리를 돕고 계시는 이야기를 했다.

“네가 예수님을 알면 마음에서 전에 없던 행복을, 기쁨을 얻고 삶을 새롭게 바꿀 수 있어.”

나는 여러 이야기를 했고, 영사님 딸은 묵묵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가 말했다.

“괜찮으면 내일 우리 집에 한번 와라. 내 아내는 한국 전통음식을 잘 만들어. 내가 점심 식사를 대접할게.”

다음날, 영사님이 딸과 함께 작은 선물을 사서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영사님 딸이 정말 즐거워하고 행복해했다.

“사모님, 이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주세요.”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마 영사님 딸은 한국에서 식사 초대를 처음 받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날 다른 바쁜 일이 있어서 식사를 마치고 일찍 자리를 떴지만, 영사님 딸은 내 아내와 늦게까지 이야기하며 놀다가 갔다고 했다.

제가 만든 음식을 목사님께 꼭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세월이 제법 흐른 어느 날, 영사님이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본국에서 훈령이 내려와 제가 다른 나라로 가야 합니다. 한국이 너무 좋아서 오래 있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내 버튼을 누르더니 나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여보세요.”

“목사님, 저예요.”

영사님 딸이었다.

“너, 지금 어디야?”

“먼 곳에 와 있어요. 캐나다 밴쿠버예요.”

“그래? 언제 갔니?”

“좀 되었어요.”

“거기서 뭘 해?”

“저 여기서 요리를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

“예, 그때 목사님 집에서 먹었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저도 요리사가 되려고요. 졸업하면 밴쿠버에서 작은 식당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제가 만든 음식을 목사님께 꼭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목사님, 밴쿠버에 한번 오세요.”

영사님 딸은 자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즐겁게 이야기했다. “엄마한테서 연락은 없지?”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가 정말 예쁘게 보였다. 우리는 한참 통화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나는 한번씩 영사님 딸을 생각해 본다. 지금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을 것 같고, 요리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며 즐겁게 살고 있을 것 같아 감사하다.

비가 오면 그냥 맞지 않고 피하는 것처럼, 불행이나 슬픔이 찾아올 때 그냥 그 속에 젖지 않고 벗어나서 밝은 삶을 살면 더 이상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영사님 딸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사는 그림을 내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글쓴이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 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개발자이다. 성경에 그려진 마음의 세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메커니즘을 찾아내, 이 내용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신기한 마음여행>, <마인드교육 원론> 등 자기계발 및 마인드교육 서적 15권, 신앙서적 64권을 출간하였다.

박옥수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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