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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괜히 겁먹었다
박문택 | 승인 2022.08.08 11:16

어렸을 때, 동네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었지만, 해수욕은 할 때엔 좋아도 하고 나면 모래를 털어내고, 어딘 가에 가서 몸을 씻고 집까지 오는 것이 귀찮았다. 대신, 우리는 좁은 흙길을 걸어 올라가 개천에서 물놀이를 자주 했다. 거기에는 작은 둑이 있고 수심이 늘 일정해서 어른들이 안심하고 우리를 보낼 수 있었다. 가끔씩 건너편 양계장에서 흘러온 오물들이 떠다녔지만, 개천에 몸을 넣었다 나오면 샤워한 것으로 쳐서 다시 씻을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는 간편한 개천 물놀이를 더 좋아했다. 수영복이 따로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냥 반바지 차림으로 물에 들어갔다가 집까지 걸어가면 다 말라 있었다.

나도 개천에 가서 물놀이하는 걸 좋아했지만, 헤엄을 칠 줄 몰랐다. 친구들이 묘기를 부리면서 앞으로 뒤로 다이빙을 하거나 바위와 바위 사이를 헤엄쳐 다니는 동안 나는 혼자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며 놀았다. 이 속담은 ‘아주 쉽다’라는 뜻이지만, 나에게는 ‘물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의미했다. 물을 좋아하면서도 물에 몸을 맡기는 것이 두려웠다. 이유는 한 번도 그렇게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두려운 것이라면 한 번 해 보면 될 텐데,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어린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여름날 나는 개천 바닥에 앉아 머리를 물에 몇 번 담가 보았다. 생각만큼 무섭지 않았다. 한동안 이런 식으로 놀다가, 이번엔 내 주특기인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면서 머리를 물속에 넣어 보았다. 눈을 감고 있자니 앞이 안 보여 갑갑하긴 했으나 그것도 생각만큼 두렵지 않았다.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았는데 반대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용기를 좀 더 내서 이번엔 머리를 완전히 물에 넣고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양옆으로 펼쳐 보았다. 다리에 힘을 빼고 물이 시키는 대로 편안하게 뻗었다. 오, 세상에! 내 몸이 물에 뜨는 것이었다. 엄청난 기술이 있어야 물에 뜨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머리를 넣은 후 몸을 물에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나는 혼자서 벅찬 감격에 어쩔 줄 몰랐다.

ⓒpixabay

나이가 들고 삶의 규모가 커질수록 내가 만나는 문제들도 크고 많아졌다. 컨베이어 벨트에 차례대로 실려 오는 물건처럼 문제는 시차를 두고 하나씩 내 앞에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종합선물세트처럼 여러 개가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하나같이 심각하게 보이고, 피하거나 도망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물이 무서우면 안 가면 그만이었지만, 인생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가만히 두면 문제는 생각 속에서 더 크게 자라는 습성이 있어서, 겁이 나더라도 물속에 얼굴을 담그듯 문제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그러면 내 몸이 물에 뜨면서 물이 나를 삼키지 못하듯, 문제는 나를 잡아먹을 듯해 보이면서도 삼키지 못한다.

또, 문제에 달라붙은 군더더기를 떼 내면 문제는 생각보다 더 작고 단순할 때가 많았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면 내가 하고,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청한다. 만일 주변의 도움으로도 해결할 수 없거나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면, 나는 그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만 되지 않으면 무시한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 앞에 맞닥뜨린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두고 막연히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인다. 두렵다는 생각,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깝고, 나중에 후회가 될 것이다. “괜히 겁먹었다.”라고 하면서.

박문택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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