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댄스팀 '므리야'

지난 6월 30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세계문화댄스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대회에는 각 나라에서 예선과 본선을 통과한 6개국 7개 팀이 최종 참가했고, 대상의 영예는 우크라이나 댄스팀 ‘므리야mriya’에게 돌아갔다. 그들이 대상을 받아드는 순간, 객석에서는 물론 함께 대회에 참가한 팀에서도 뜨거운 환호성이 터졌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축하해주고 있음을 느꼈다. 이어서 심사위원석에 있던 김병조 심사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므리야 팀은 환한 미소로 춤을 췄지만, 내면에는 비참한 조국에 대한 걱정과 다시 일어설 조국의 미래를 향한 소망이 공존했다. 폭격으로 부서진 비행기 므리야를 타고 다시 높이 날아오를 것이라는 스토리를 작품에 잘 녹여내 멋진 춤으로 표현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대회가 끝난 며칠 뒤, 부산 해운대에서 그들을 만났다. 대회 참가차 한국을 찾은 므리야 팀 중 네 명을 만나 어떻게 공연 준비를 했는지 물었다.

Q.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데 어떻게 댄스대회에 참가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빅토리아 : 저는 올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미래에 대한 계획으로 한창 들떠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모든 게 깨졌지만요. 전쟁을 피해 독일로 왔을 때,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이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 전혀 알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독일에서 지내는 중에 ‘므리야 프로젝트’를 알게 됐어요. 우크라이나 말로 므리야는 ‘꿈’을 뜻하는데, 우크라이나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긴급구호단체가 만든 것이 ‘므리야 프로젝트’입니다. 그 프로젝트의 첫 번째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문화댄스페스티벌에서 대상을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므리야 댄스팀 50명 중에 첫 지원자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5명이 모여서 춤 연습을 시작했어요. 거리에 나가 플래시몹을 하면서 대회에 나갈 친구들과 후원금을 모았어요. 그렇게 함께할 친구들이 늘어남에도 ‘이렇게 해도 한국에 갈 순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갈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았거든요. 피난민들은 가난하고, 삶이 불안정하고, 심지어 저는 댄스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지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우리를 응원하고 후원해주었고, 덕분에 지금 한국에 와 있습니다.

아냐 : 저는 헝가리로 피난을 갔는데요. 그곳에서 우크라이나 학생들을 만났고, 그중 한 명이 제게 ‘므리야 프로젝트’를 알려주었어요. 그 설명을 들으면서 ‘내 전공을 살려서 이 프로젝트를 도와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댄서가 아니라 안무가로서 ‘므리야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를 위해 독일로 갔는데, 많은 분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어요.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함이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새 온전히 이 프로젝트에 녹아들었더라고요. 이번에 댄스팀으로 한국에 와서 공연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글렙 : 저는 2019년도에 한국에서 열린 ‘세계문화댄스페스티벌’에 참가한 적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므리야 프로젝트’를 알게 됐어요. 하지만 저는 징집 대상이니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저 역시 나라를 위해 싸우고 싶었고요. 그런데 예전에 함께 대회에 나갔던 분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이 대회에 참가하는 데 필요한 제 서류들을 준비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우크라이나 문화부의 승인을 얻어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2019년도엔 그냥 춤을 좋아서 참가했다면,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상황과 평화의 소중함을 세상에 더 알리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제냐 : 저 역시 글렙처럼 ‘므리야 프로젝트’를 들었을 때, 어차피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못 가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추천해줄게.’ 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문화부에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고, 반신반의하며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문화부의 허가를 받아 국경을 넘으려고 하는데, 국경수비대가 우리를 통과시켜주지 않았어요. 몇 시간을 국경에서 기다렸고, 마침내 그들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꼭 1등 해서 돌아와야 한다. 안 그러면 다음엔 통과시켜 주지 않겠다.”면서요.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한국으로 온 것이 기적과 같습니다.

Q.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네요. 우크라이나를 떠나 피난 길에 오를 때만 해도 정말 앞이 캄캄했을 것 같아요.

빅토리아 : 처음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지형적으로는 유럽과 가까우니까요. 새벽에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이 소리가 그냥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였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뉴스에서는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렸고, 당장 나가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어떻게든 우크라이나에 남고 싶었는데, 2주 동안 집에 있으면서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겠다.’는 걸 알았습니다. 2주 내내 폭격이 끊이지 않았고 하늘은 마치 불타는 것 같았어요. 낮에도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죠.

아냐 : 2월 24일, 폭격 소리보다 더 먼저 비행기 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깼습니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기도 전에 방공 대피소로 달려갔고, 그때부터 폭탄이 터지는 소리, 사이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어요. 우리 가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상의했는데, 처음엔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했어요. 하지만 두 시간도 안 돼서 다시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조카를 지키기 위해서였죠. 우리 가족은 친척들이 사는 헝가리로 향했습니다. 피난길에도 계속해서 총격전이 있었고, 도착한 후에도 한동안 불안함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Q.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을텐데, 지금 이렇게 밝은 모습이라는 게 신기합니다.

빅토리아 : 맞아요. 저도 신기해요. 아마도 제 중심이 전쟁에서 므리야 프로젝트로 옮겨지면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어요. 우크라이나를 떠날 때만 해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고향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도 많이 되고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단순히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자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우크라이나를 알리고, 또 우리의 댄스를 볼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겠다고 생각하니 계속 힘이 나요. 

아냐 : 제가 이걸 하지 않았다면, 우리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나라를 도와주고, 함께 싸워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제가 받은 상처를 많이 잊었어요. 그리고 이 공연이 우크라이나 전통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데, 공연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소개할 수 있는 길이 생겨서 너무 기뻐요.

제냐 : 저 역시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감사해요. 진심으로 우리나라를 걱정해주는 게 느껴지거든요. 댄스 동작에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서 도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무대 아래에 있는 관객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저만큼이나 행복한 얼굴이었어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표정 아시죠? 그분들 덕분에 너무 행복하고, 더 용기를 얻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6분의 공연시간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8m가 넘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뒤에서 펼쳐지며 공연은 끝난다.
6분의 공연시간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8m가 넘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뒤에서 펼쳐지며 공연은 끝난다.

Q. 엄청난 호응을 받아 압도적인 공연을 했고, 대상도 거머쥐었습니다. 이제 다시 독일로 돌아가실 텐데, 어떠신가요?

빅토리아 : 사실 특별한 계획은 아직 없지만, 지금은 므리야 팀과 함께 계속 공연하고 싶어요. 제 인생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므리야팀과 함께 하면서 펼쳐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다시 오고 싶어요. 한국말을 더 배우고 싶거든요. (하하)

아냐 : 매일 새로운 일들이 제 삶에 펼쳐지고 있는데, 마치 제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 고민해봐요. ‘앞으로 이 팀과 함께 유럽투어도 같이 하게 될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하지만 확답은 할 수 없어요. 제가 제 미래를 계획하는 법을 까먹은 것 같네요. 요즘 계속 계획에 없던 일들만 일어나서요. 앞으로도 이 팀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우크라이나를 소개하고, 알릴 수 있게 되길 소망해봐요.

글렙 : 대부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전쟁만을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우크라이나는 아름다운 문화와 자연,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있는 나라예요. 비록 지금은 전쟁에 가려져 있지만, 앞으로 이런 부분들을 함께 알리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므리야와 함께, 더 많은 곳에서 공연하며 우크라이나를 알리고 싶어요. 

제냐 : 개인적으로는 계획이 없지만, ‘므리야 프로젝트’에는 계획이 있어요. 올해 온 유럽을 돌며 공연을 할 거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느낀 기쁨과 감동을 유럽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뜨거워요.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를 얻고 감사를 느꼈는데, 그 고마움을 또 표현하고 지내다 보면 어느새 전쟁이 끝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므리야 팀의 공연 ‘Fly again’은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운 경치와 사람들의 환한 미소가 담긴 영상으로 시작한다. 무대 위 역시 평화롭다. 그러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린다. 전쟁으로 얼룩진 우크라이나 모습과 폭파된 ‘므리야’ 여객기, 그리고 시름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에서 전쟁의 참상을 짧게나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도 잠시, 다시 평화를 찾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므리야 팀원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대상을 받은 므리야 팀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그냥 춤을 추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란 너무나 큰 슬픔을 앓고 있는 조국을 대표해 무대에 섭니다. 총성이 멎을 때까지 우리가 다시 날 수 있음을, 그리고 평화라는 우리의 꿈이 꼭 이루어질 거란 걸 표현해보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들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누구에게든지 전쟁은 상처를 남긴다. 평생 전쟁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하지만 므리야 팀 누구의 얼굴에도 시름은 담겨 있지 않았다. 인터뷰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힐 때도 있었지만, 그 슬픔이 오래가지 않았다. 슬픔보다는 소망을 품고,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는 그들을 보며,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그려졌다. 잠시 몸을 웅크렸을 뿐, 총성이 멎으면 다시 비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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