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언?”

“무사 맨날 늦엄시니?”

얼마 전, 뜨거운 관심 속에 막을 내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오는 대사이다. 생생한 제주어의 말맛을 담은 이 드라마는 생소하고 낯선 제주 사투리를 우리와 가깝게 만들었다. 제주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해내는 배우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가 하면, 잘못된 표현에 대해선 아쉬워하는 등 열띤 토론을 나누는 풍경이 그려지기도 했다.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던 제주어가 최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언어에는 그 지역의 문화, 역사, 정신이 모두 담기는 법이다. 스크린 너머 제주어의 진면목眞面目이 궁금해, 수년간 공부한 제주어로 아름다운 시를 써온 현택훈 시인을 만났다.

일러스트 걷는사람 출판사
일러스트 걷는사람 출판사

Q. 제주어로 시를 쓰십니다. 그만큼 애정이 각별하신 것 같아요.

정확하게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저는 제주도 *부루기에서 태어났습니다. * 부루기: 제주시 화북동 부록마을을 뜻한다. 처음 이곳에 큰 사찰이 있어 ‘불전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불전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불우佛宇란 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제민일보)

감귤밭에 딸린 집에서 태어났죠.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이들은 대부분 큰 도시로 나가서 성공하는 걸 꿈꿨어요. 저 또한 도시로 나가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글을 쓰고 싶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요. 그즈음 서울의 한 동물원에 있던 남방큰돌고래가 제주 바다로 돌아온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그 순간 어릴 적 제주 바다에서 종종 보곤 했던 남방큰돌고래가 떠올랐고, 이 내용을 시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유네스코가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세대가 지나면 제주어가 정말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제주어 사전을 찾아가며 제주어 시를 썼어요. ‘100% 제주어로만 쓴 시를 내지 못해도 괜찮다. 제주어가 부분적으로 들어가더라도 일단 써보자.’라는 심정으로 한 편 두 편 쓰기 시작했지요.

Q. 작가님께서 최근에는 시집이 아닌 <제주어 마음 사전>이라는 책도 출간하셨지요.

제 삶의 추억이 담긴 제주어 서른한 개를 소개했어요. 저는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가 말하는 제주어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주어 사전을 살펴보니 반도 모르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사전을 들여다보고 또 봤어요. 신기하게도 제 기억에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나는 단어들이 있더라고요. 제주어를 떠올리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고향인 부루기로 자주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서의 추억을 제주어로 엮어보았는데 책이 되었어요.

제주에서는 고기국수가 유명한데요. 이곳에서는 얼큰하고 따듯한 국물을 마실 때 ‘베지근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 국수라 그런지 ‘베지근하다’라는 단어가 애정이 가더군요. 또, 제주에서는 쌀이나 볍쌀로 지은 흰밥을 ‘곤밥’이라 합니다. 보리밥이나 조밥을 주로 보다가 쌀밥을 보니 그 하얀 빛깔이 고와서 곤밥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는 쌀이 귀해서 쌀밥은 제삿날이나 명절에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삿날 음식을 먹기 위해 졸음이 밀려와도 꾹 참았던 기억도 납니다.

이 책에는 제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단어만 소개했는데요. 책에 넣지 않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예쁜 단어들도 많습니다. 작다는 뜻의 ‘호끌락’이라는 단어도 재미있고요. 얕은 바다를 뜻하는 ‘할망바당’이라는 단어도 좋아합니다. 이외에도 송당리, 웃가름, 쌍물통 등 제주의 마을 이름들도 다양한데요. 그래서 저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 제주 여행을 추천합니다. 버스 정류장 이름 속에 옛날 제주 마을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과거 기력이 쇠했을 때 약으로 먹었던 제주 병귤. 제주말로 ‘벤줄’ 이라 부른다.
과거 기력이 쇠했을 때 약으로 먹었던 제주 병귤. 제주말로 ‘벤줄’ 이라 부른다.

Q. 재미있는 단어들이 무척 많네요.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제주어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제주어가 감각적인 언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주도에서는 ‘춥다’는 표현을 ‘얼다’라고 하거든요. 생각해보면 ‘춥다’라는 말보다, ‘얼다’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으면서 추위를 더 느끼게 합니다. 즉, 제주어는 관념적이지 않고 삶의 체험이 묻어나는 언어입니다.

제주어 중에서 의성어나 의태어는 특히 더 감각적입니다. 그 소리나 모습을 적절히 나타내지요. 타글락타글락(터덜터덜), 벨롱벨롱(불빛이 멀리서 번쩍이는 모양), 비비둥둥(악기 울리는 소리), 빙삭빙삭(방긋방긋 웃는모양), 화륵화륵(당황하여 이리저리 바삐 헤매는 모양) 등이 있습니다. 언어가 감각적인 건 그 언어가 삶 가운데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제주어가 제주 방언이지만 중세 시대 즉 조선 사람들이 대부분 쓰던 언어였어요. 그런데 섬이라는 환경적 특수성으로 본의 아니게 그 언어들이 계속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국어를 연구하는 분들이 제주어를 연구하곤 합니다. ‘아래아ㆍ’같은 경우도 지금 제주도만 쓰지만, 사실은 훈민정음 창제 때부터 있었던 표기였죠.

그런 점에서 제주어가 방언으로서의 가치도 있지만, 결국 잊힌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지켜야 하는 언어라는 생각을 하고요.

Q. 언어에는 그 지역의 문화, 역사,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하죠. 제주의 문화가 담긴 단어의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산북과 산남으로 나뉘는데요. 두 곳의 기후가 다릅니다. 산을 넘으면 바람이 달라지거든요. 날씨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맑은 날 제주시에서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서귀포에서 넘어온 사람일 수도 있죠. 그 때문인지 음식 문화도 차이가 있고, 같은 물건을 서로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 고둥을 산북에서는 ‘보말’이라고 부르는데, 산남에서는 ‘ᄀᆞ메기’라고 부르는 식입니다. 서귀포에서는 옥돔을 ‘솔라니’라고 부르는데요. 이는 심지어 동서남북 지역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솔래기, 오토미, 오톰셍선 등으로 부르지요.

그리고 ‘가메기 모른 식게’라는 말이 있어요. 까마귀도 모르게 숨어서 지내는 제사를 일컫는 말인데요. 이는 제주 4·3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는 4·3 희생자 추념일이 법정기념일로 지정이 되었는데요. 예전에는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누구의 제사를 지내는지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제사를 지낼 때 ‘가메기 모른 식게’라는 표현을 쓰곤 했습니다.

제가 볼 때 제주의 문화, 정신이 잘 담긴 단어는 ‘수눌음’이라 생각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제주 특유의 노동 관행을 뜻하는데요. 이는 육지의 ‘품앗이’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제주에서는 이 ‘수눌음’으로 공동체 정신이 무척 강했는데요.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이 경조사를 함께하고, 친척이 아니라도 주변의 어른들을(남녀 구분 없이) *삼춘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 1978년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이라는 작품이 출간되었다. 순이는 여자 이름인데, 뒤에 삼촌이라는 호칭이 붙으니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실제로 삼촌보다는 삼춘이 본디 제주어 표현이다.

서귀포에서는 옥돔을 ‘솔라니’ 라 부른다.
서귀포에서는 옥돔을 ‘솔라니’ 라 부른다.

Q. 작가님께서도 어린 시절 제주의 ‘수눌음’을 느끼셨는지요?

네, 어린 시절에 학교를 다녀오면, 마루 위에 신문지로 싼 고기나 부침개 같은 음식이 올려져 있곤 했어요. 그러면 마루에 올라가 그 음식을 먹으면서 ‘오늘 결혼식이 있었나 보다’ 생각했어요. 이를 ‘반 태우다’라고도 하는데요. 마을 어느 집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마을에 사는 누군가가 미처 가지 못했을 때 음식을 가져다주는 문화가 있었어요(웃음). 하지만 육지가 그렇듯 이곳도 그런 공동체 정서나 문화가 조금씩 사라졌어요. 80년대만 해도 같이 농사는 짓지 않더라도 같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곤 했는데, 요즘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죠. 대신 요즘에는 육지에서 제주로 온 사람들이 주민들에게 제주 음식을 배우려고 하거나, 해녀학교에 들어가 배운다든지 등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어요.

Q. 제주어와 그 속에 담긴 따듯한 마음도 오래오래 보존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제주어로 부탁드립니다.

‘오몽ᄒᆞ다’라는 단어가 떠오르네요. 오몽ᄒᆞ다란 움직이다라는 뜻이에요. 이 단어를 좀 더 넓게 생각하면 부지런하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오몽ᄒᆞ사 산다” 움직여야 산다,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꿈이 있다면, 움직이길 바랍니다. 저도 20대 때 시인이 되어야지 생각하고는 꿈만 꿨거든요. ‘언젠가 시인이 될 거야.’라는 생각만 하고 동경만 하지, 시 한 편 쓰지 않고 시간만 보냈습니다. 그러다 서른을 앞두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시작했어요. 그렇게 늦게 시작한 저도 이렇게 시인으로 살아갑니다. 혹 지금 오랫동안 품고 있던 꿈이 있다면 오몽ᄒᆞ사 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제주어 많이 사랑해주세요!

언어인류학자인 니컬러스 에번스Nicholas Evans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를 구사한 이들이 고수해온 전통과 지혜,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문화의 여러 장면들을 한꺼번에 잃는 것이다.”라고. 제주어에는 풍족하고 넉넉하게 살지 못하는 섬살이지만, 함께 나누고 도우며 살았던 수눌음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깊이 사고하며 살았던 선조들의 지혜가, 오랜 역사가 언어에 들어 있었고, 가깝게는 나와 대화하는 이웃의 생이 말 속에 녹아 있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도 현택훈 시인처럼 제주어를 알리고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서 제주어가 오래 보존되었으면 한다. 그 속에 담긴 값진 값어치들과 함께 말이다.

제주어 마음 사전
사람들은 제주도를 관광지로 생각한다. 그러나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싸우고 울고 웃던 땅이고 죽어 묻혀야 할 터전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사는 시인은 제주도와 제주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현택훈 시인이 제주어로 우리 모두가 누렸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현택훈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 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귤밭의 풍경, 그 아름다움이 작품의 원천이라 말하는 그는 제주어를 시의 언어로 쓰기 위해 고심하며 지내고 있다. 지금까지 시집<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가면>, 산문집<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제주어 마음 사전>, <제주 북쪽>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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